대구와 경북 일부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3월의 중반이 지나갔다. 우리를 조이던 긴장의 끈이 아직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한풀 꺾인 확진자 수에 잠시 안도하다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투명한 전망과 불안은 다시금 우리의 덜미를 잡아챈다. 우울이 과거에 대한 반추와 관련되어 있다면 불안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관련되어 있다. 우울이 부정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주의적 시각일 수 있다는 역설을 가진 것처럼, 불안은 오늘을 감내하면서 미래를 예측하며 대비하는 추동력을 준다. 이는 위기 속에서 생존해온 종으로서 우리가 얻은 획득 형질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안의 감정은 일상이 멈춘 이질감 속에서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혼란스러운 일상의 정보를 조직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탐색해 보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를 집이라는 물리적 테두리에 머물게 한다. 집안에 묶인 가족들은 온라인을 통해 생필품과 기호품을 구매하고, 변화된 일상의 하나는 문 앞에 놓일 배송물품을 그 어느 때보다 반갑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의 뉴스를 발견한다. 12일 새벽, 안산의 한 배송 노동자가 계단에 쓰러진 채 사망한 것이다. 40대의 그는 입사 4주차로 시간에 쫓겨 쉬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참아가며 승강기도 없는 건물에서 배송 업무를 하던 중 쓰러졌다. 쌀과 물 등의 무거운 생필품 주문이 늘어나면서 폭증한 물량을 아침 7시까지 로켓 배송하려다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문 앞에 놓인 물품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접고 들어와 집안을 살펴보자. 변화들이 보인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변화는 더욱 클 것이다. 어린이집도,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는 아이들.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늘 밖으로 나돌던 아이들의 동선이 집안으로 묶여진 것은 큰 변화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양육과 교육의 상당부분을 맡아오던 기관과 장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장시간 양육과 교육에 대한 책임이 고스란히 가정 내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에 가족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매우 현실적일 것일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 묶인 학부모들의 심리적, 물리적, 경제적 어려움.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관리하려는 교사들의 바쁜 움직임과 온라인 학습을 독려하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양육과 교육의 책임을 돌려받은 학부모들의 어려움은 적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맞벌이, 한 부모 가정을 비롯한 취약가정의 어려움은 클 수밖에 없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발생한 급식지원의 공백, 복지관과 지역아동센터의 휴관으로 인한 양육 공백과 식사를 제때 공급받기 어려워진 아동들의 현재 상황은 가족에게 재부과된 양육 기능의 기본적 작동에 난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우리는 그간 우리가 간과해온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먼저 폭주하는 배송물량에 쓰러진 그의 죽음은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예기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정규직, 노멀 비정규직, 라이트 비정규직, 플렉스와 프리맨에 이르기까지 고용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한 업무 구조는 그를 사람이 아닌 로켓 경쟁의 수단으로 보아왔고,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내에 90%가 그만둔다는 열악한 노동 조건은 그를 이미 오래 전부터 벼랑 끝으로 밀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또한, 전국 30만명을 넘는 결식위험아동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조금만 빗나가면 끼니를 챙길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그간 감내하며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셈이다.
뒤늦게나마 구멍 난 안전망을 메꾸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특별재난지역의 선포와 함께 실시되는 생계지원, 각종 감면 혜택, 그리고 전국의 취약가정을 대상으로 한 가족돌봄비용의 지급 등이 그것이다. 또한 배송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잔인한 새벽 배송을 비판하며 ‘늦게 배송 와도 괜찮다’는 소비자들의 반성과 위로. 결식아동들의 안타까운 사정 앞에 자발적으로 출근해서 아이들을 챙기는 지역아동센터의 직원들. 성금을 모으고 도시락을 전달하는 이웃들의 진심어린 노력은 안전망이 뚫린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우리의 잠재된 힘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의 일상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일부의 변화는 바로 사라지겠지만, 일부의 변화는 흔적을 혹은 장기적 변화를 남길 것이다. 가령, 이제 집 앞에 놓일 배송물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 사태가 안정된 후에도 온라인을 통한 구매의 증가와 배송경쟁의 심화는 지속될 것이고, 이윤을 앞세우는 경쟁논리는 인간다운 노동조건에 대한 요구를 다시금 묵살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소비자로서 물건을 빨리 받고 싶은 욕구와 로켓 배송경쟁에서 희생될 배송 노동자의 노동조건 사이에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다시금 선택을 내려야할 순간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염병에 의한 전 세계적 위기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경험은 장기적으로 원격학습의 확대를 가져올 것임에 분명하다. 이에 학습동기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온라인 학습 콘텐츠의 개발과 보급은 교육계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학습의 독려와 모니터링의 책임이 각 가정에게 맡겨지기에 돌봄이 가능한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간의 차이는 큰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고, 교육계는 이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적 변화보다 우려되는 흔적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봉쇄된 중국에서 가정폭력이 급증했던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인한 수입원의 감소, 그리고 집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가족 내 잠재적 갈등요인들은 폭력적 형태로 분출될 수 있다. 여기에 물리적, 사회적 약자인 아동·청소년은 무기력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국내 아동학대 신고는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이는 국내 아동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교와 상담현장에서 실제 아동학대 사례들은 많은 경우 신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피해자가 경험하는 심리적 부담감, 보복에 대한 두려움, 신고자에게 가해졌던 공공연한 위협, 아동보호시설의 부족 등이 신고의무자들의 신고율을 높이는데 걸림돌로 작용해 온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국내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율은 30%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수의 증가와 함께 아동학대 확인사례 건수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국내 아동학대실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한다.
격리된 집 안이 사적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양육과 교육의 책임이 가족 내로 되돌려진 오늘의 일상에서 가족 내 폭력은 신고 되지 못하고 다시 조용히 묻힐 수 있다. 그러나 가정 내 폭력과 학대의 경험은 학교와 교실에서 아이들의 우울, 잦은 자해와 자살시도, 혹은 학교폭력의 형태로 치환되어 드러난다. 사적 공간의 폭력이 공적 공간에서 보다 파괴적 형태로 파급력을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정부와 사회의 안전망 확보를 위한 지원과 가정 내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 흔적은 내일 우리에게 더욱 큰 비용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김은영 경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