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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 남자의 후회 없는 삶

‘꿈을 종이에 쓰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쓰기’만 하면 마법처럼 절로 꿈이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꿈을 써 보는 행위를 통해 내 삶의 방향을 볼 수 있고, 노력을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뜻이지요.당연히 꿈을 이룰 확률 또한 높아집니다.1944년 어느 비 내리는 오후, 열일곱 살 소년 존 고다드는 식탁에 앉아 노란색 종이 위에 ‘내 인생 목표’라는 제목을 쓰고 하나하나 써 내려가 모두 127가지를 적었습니다.‘탐험할 강’, ‘원시 문화 답사’, ‘등반할 산’, ‘배워야 할 것들’, ‘사진 촬영’, ‘바닷속 탐험’, ‘여행할 장소’, ‘수영해 볼 장소’, ‘해낼 일’ 등으로 그 꿈의 목록은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이후 존 고다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47세가 되던 1972년 ‘라이프’ 지에 그의 기사가 등장합니다.제목은 ‘한 남자의 후회 없는 삶’이었지요. 첫 꿈을 기록한 지 64년이 흐른 2008년에는 127가지의 목표 중 109가지를 이루었습니다.존 고다드가 그런 목표를 세운 계기가 있습니다.할머니와 숙모가 나누던 대화 중에 “이것을 내가 젊었을 때 했더라면…”이라는 푸념을 두 사람이 남발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나는 커서 무엇을 했더라면… 이라는 후회는 말아야지!” 소년 존 고다드는 결심했고 끝내 지켜냈습니다.존은 60세 되던 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고 싶지 않으며 끊임없이 나 자신의 한계에 대해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127개 항목을 모두 다 이루려고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그는 목표 세우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충고합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별을 품고 있습니다. 미루지 말고 즉각 목표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보세요.”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20-01-01

9와 0사이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우여곡절 끝에 9에서 0으로 넘어왔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세상을 놀라게 할 일이 끊이지 않았던 2019년! 누군가가 제대로 “아홉수”에 걸렸다고 했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아홉수”라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론을 보면 대한민국은 아홉수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 아홉수에서 아홉은 9를 의미한다. 그럼 9는 어떤 의미와 기운을 가졌기에 이 나라가 이다지도 어려울까? 9라는 숫자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지금의 시국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설명이 있어 인용한다.“숫자 9는 분열, 성장하게 하는 양수의 마지막 변화 단계를 뜻합니다. 따라서 달이 차면 기울듯이 성장의 끝에는 반드시 반대되는 기운이 올 차례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큰 충격이 생기게 되는데 현자들은 이 시점에 세상에 큰 변국이 닥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이 나라에는 큰 변국(變局)이 닥쳤다. 혼란스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기고만장의 정점에 있는 정치인들의 눈에 국민의 힘듦이 보일 리 만무하다. 그런 정치인들이 국민 운운(云云)하니 분통이 터진다.벌써부터 목 좋은 곳에는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려는 철새 정치인들의 대형 선거 홍보물이 내걸렸다. 여태까지 어디에서 무엇 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기인(棄人)도 아마 이런 기인(奇人)은 없을 것이다. 오로지 당선을 위해 네거리에서 기계처럼 손 흔들며 영혼 없는 인사를 할 그들의 역겨운 모습을 생각하니 새해 기분이 다 날아 가버렸다.분명 달력은 9에서 0으로 넘어 왔다. 그런데 어찌 이 나라는 아홉수 덫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 하고 있을까? 이런 걸 보면 역사는 발전한다는 논리는 오류임이 분명하다. 필자는 최근 들어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라는 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단언컨대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정(正)으로 나아간 만큼 딱 그만큼 반(反)으로 후퇴해 합(合)은 결국 제자리이다. 역사는 발전하는 게 아니라 반복될 뿐이다. (중략) 역사의 주체가 달라지지 않았으니 역사가 발전할 까닭이 없다.(….)”필자의 저 깊은 내면에는 위의 말을 부정하는 소리들이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라 돌아가는 상황이 내면의 절규를 덮어버렸다. 2019년의 사람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았는데 2020년의 나라 모습이 바뀔까? 역사가 반복된다면 우리의 2020년 모습은 어떨까? 언제나 그랬듯이 선거 이후에는 더 극심한 혼돈이 있었다. 희망을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픈 신년 벽두다.비록 구태의연한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아직 아홉수에 갇혀 있지만, 교육과 국민이 9를 밀어내고 0의 새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0은 시작점을 나타낸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국민들이 희망 안에서 희망의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더 큰 희망 만들어갈 그런 시작점이 될 2020년, 대한민국, 교육을 바란다.

2020-01-01

2020년 새로운 길에 오르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21세기 스무 번째 새해가 떠올랐다. 해마다 12월 31일이면 수많은 인파가 동해로 달려 나간다. 지체와 서행을 반복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맹렬 기사들이 거리에 차고 넘친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새해일출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길이 아무리 멀고 고단해도 그들의 바람을 꺾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만큼 절실한 소망과 꿈이 있다는 얘기다.싫든 좋든 2020년은 시작됐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길에 올랐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며, 길은 다시 다른 길과 이어지며 확장된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배우고, 드넓은 자연과 세상의 풍경에 깊이 감복한다. 우리나라가 좁다고들 하는데, 그들에게 매번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그대는 이 나라 산천을 얼마나 다녀보았는가. 자동차나 열차가 아니라 발품을 팔아서 걸어본 곳이 얼마나 되는가?!”걷는다는 것은 속도의 욕망을 극복하고 사유와 인식과 정서를 극대화하는 일이다. 빨리 달릴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못한다. 그저 달릴 뿐이다. 그것은 행선지를 향한 유일목표, 즉 도달에만 집중하는 행위다.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 질주의 행렬은 우울하거나 초라하다. 걷는다함은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며, 느림에서 비롯하는 새김질과 반성과 성찰이 덤으로 보태진다.얼마 전에 친구 하나는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것이 꿈이라 했다. 나는 즉시 다른 생각을 전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길을 함께 걸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도 다시 이동하여 순례길 초입까지 가야 한다. 아주 멀리 있는 타국의 길보다는 산천경개(山川景槪) 수려한 한반도 남단을 느긋하게 걸으며 상념에 젖거나 지난날을 추억하거나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요즘에는 지자체 곳곳에서 경쟁하듯 길을 제공하고 있기에 발품 파는 일도 어렵지 않다. 부담 없는 일정 짜서 걷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멈춘 곳에서 다시 출발하면 그만 아닌가. 특별한 목표를 정하지 않고, 이런 길 저런 길, 굽은 길 곧은 길, 언덕길과 산길, 오르막과 내리막, 바다와 강을 끼고 있는 길, 농촌과 산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운이 좋으면 ‘길’의 잠파노와 젤소미나처럼 아픈 사랑을 했던 동반자의 구수한 이야기도 함께할 것이다. 문제는 당장 실천하는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 그 어느 즐거운 날에 혹은 특정기념일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은 성사를 늦출 뿐이다. 현재의 수인이 되어 자기만의 성채에 둘러싸인 채 안주하지 않는다면, 2020년에 우리는 장정에 오를 수 있다.돌궐을 건국한 돈유곡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성을 쌓고 사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그가 살아남을 것이다!” 정주(定住)와 멈춤은 부패와 타락의 전주곡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길을 향한 장정을 시작할 때다.

2020-01-01

글로벌 浩然之氣

장규열 한동대 교수한국 사람은 탁월하다. 한국인의 우수함은 역설적으로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발견한다. 땅은 좁은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럴까, 나라 안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비슷한 기량을 가지고도 외국에서 뿌리를 내린 이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남들의 인정을 받는다. 시작은 물론 안에서 했겠지만, 밖에서 나래를 펼친 이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였다. 물이 좁아서 그럴까, 넓은 물을 겪게 하면 사람이 달라진다. 생각이 자유로와지고 시선이 더 먼 곳에 가 닿는다. 남들을 밟고 올라서기보다 나 자신을 갈고닦아 성숙하려 애쓰게 된다. 발을 딛고 선 곳만 바뀌면 사람이 달라지는 일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아들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다. 아빠를 따라 억지로 국내에서 보낸 5년 여 동안 학교는 그를 포기하였다. 아니 본인도 자신을 놓아버렸다.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었다. 선생님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매일 받았던 미국 학교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늘 틀렸고 항상 잘못했으며 지적만 한가득 받아오는 게 학교생활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들려주는 응원의 목소리마저 가짜처럼 들렸으니까. 힘들고 지치며 재미없고 외로웠지만 달리 방법도 보이지 않아 그냥 그렇게 견딘 몇 년이었다. 그러다 혼자라도 미국으로 돌아가 볼까 생각하였다. 한번 해보겠노라고 아빠엄마를 설득하여 아들은 돌아갔다. 아들이 달라졌다! 안 되는 게 없었다.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놀기만 좋아해서 그런 걸 즐긴다고 핀잔을 들었던 연극활동으로 뮤지컬 주연을 겹겹이 도맡았다. 무엇을 해도 칭찬으로 가득했으며, 좀 실수를 해도 금방 수정하면 오히려 상을 받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분에 넘치게 졸업식에서는 대표연설을 하였다. 제목은 ‘우리는 모두 다르다.’ 대학을 다니며 기숙사 방에서 차린 카페는 수많은 친구들의 수다방이 되었다. 학교는 오히려 문제의 소지를 없애주며 격려해 주었다. 꿈을 키우켜 학교를 대도시로 옮겼다. 처음 뉴욕에 도착하였을 적에 ‘디즈니 스토어’ 임시점원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디즈니 뉴욕’ 정직원으로 회사가 만드는 뮤지컬을 전국에 마케팅한다. 스스로도 ‘꿈 속을 걷고 있다’면서, 애써 지핀 이 불씨를 더 키워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던진단다. 아들의 긴 이야기를 짧게 적어 보았지만, 적어도 그가 겪은 미국과 한국은 참으로 다르다. 같은 사람 알렉스가 어쩌면 그렇게 다른 모습이었을까.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오늘 그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로부터 가능성을 찾고 내일을 보아야 한다. 그는 ‘오늘의 최선’이 아닌가. 거기서부터 쌓아 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학교가 있고 부모가 있으며 선생이 있다. 가능성의 가닥이 꼭 학과목이어야 할 까닭은 또 어디에 있는가. 공부만 잘 하여 문제만 일으키는 어른이 얼마나 많은가. 멀리 보게 하고 깊이 생각하게 하며 폭넓게 담게 하자. 호연지기, 2020년에는 ‘글로벌 호연지기’를 심기로 하자. 알렉스, 파이팅!

2020-01-01

13월의 월급

13월의 월급이란 연말정산시 매달 급여를 받을 때 소득에서 원천징수했던 세액을 연간 단위로 정산한 뒤 세금을 많이 냈다면 차액을 환급받고, 적게 냈으면 추가로 징수하는 금액을 일컫는 말이다. 이달 15일부터 시작되는 연말정산은 지난 해와 많이 달라졌다.우선 올해부터 산후조리원 비용이 200만원까지 의료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됐고, 급여 총액이 7천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지난해 7월 1일 이후 박물관·미술관 입장료를 신용카드로 결제했을 경우 30%를 소득 공제받게 된다.기부금액의 30%가 산출세액에서 공제되는 고액기부금 기준금액도 2천만원 초과에서 1천만원 초과로 낮아졌다. 또 집이 없거나 1개 주택만 보유한 세대주 근로자는 금융기관 등에 상환하는 주택저당차입금 이자를 소득공제 받는데, 올해부터 공제 대상 주택의 기준시가 요건이 4억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상향됐다.월세액 공제 혜택은 지난해까지 국민주택 규모의 집을 임차한 경우에만 적용됐으나, 올해는 집이 기준시가 3억원 이하면 공제받을 수 있다. 생산직 근로자 야간근로수당 비과세 기준도 월정액 급여 190만원 이하에서 210만원 이하로 확대됐다.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총급여의 25%를 초과해서 쓴 경우만 해당되고, 의료비는 급여의 3%를 초과해야 공제 대상이 된다. 신용카드 결제 시 추가공제와 중복공제가 가능하다.대중교통 요금, 전통시장 이용액, 도서·공연비 등을 카드로 결제할 경우 각각 1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또 의료비, 취학 전 아동 학원비, 교복 구입비는 중복으로 소득공제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13월의 월급’으로 불리지만 자칫하면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공제요건을 꼼꼼이 확인하고 준비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01

경북의 음식은 법도다

지난 1년간, 연재에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지면을 허락한 경북매일신문과 취재 과정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첫 칼럼에서 “왜 경북의 음식인가?”를 이야기했다. 경북은, 흔히, “음식이 없는 곳, 음식 맛이 없는 곳”으로 못 박는다. 그렇지는 않다. ‘맛’의 기준이 다르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다. 경북 음식은 맛으로 만나는 음식이 아니다. 출발부터 다르다. 경북의 음식은 맛이 아니라 ‘법도(法道)’다. ‘법도’에 맞는 음식’이다.첫 칼럼에서 인용한, 탁청정 김유(1481~1552년)의 ‘수운잡방(需雲雜方)’이 법도에 맞는 음식의 예다. 탁청정은 조선 초기의 문사(文士)다. 벼슬도 구하지 않고 전원생활을 추구했다. 일생을 손님맞이에 힘썼다. ‘수운잡방’은 여러 가지 음식 만드는 법을 기술한 책이다. 남성인 유학자가 왜 음식에 관한 책을 기술했을까? 음식이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주요 도구이기 때문이다. 탁청정은 손님맞이 음식과 그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 장(醬), 지(漬), 초(酢) 술[酒, 주]에 대해서 정리했다.유교적 관점이다. 음식은, 제사 모시고, 손님맞이에 필수적인 도구다. 남자인 유학자가 음식 관련 책을 기술한 이유다.오늘날 경북은 100년 전, 경상좌도와 대부분 겹친다. 갑오경장 이전에는 전국 팔도를 좌와 우로 나누었다. 한양에서 바로 보기에 낙동강 왼쪽은 경상좌도, 오른쪽은 경상우도다. 경북은 대부분 경상좌도 지역이었다.경상좌도는 유교의 중심지다. 고려를 마지막까지 지켰던 포은 정몽주(영일만, 영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삼봉 정도전(영주)은 좌도의 유학자였다. 포은과 삼봉의 스승 목은 이색(영덕), 야은 길재(구미 선산), 도은 이숭인(성주)도 좌도와 연관이 있는 유학자였다.성리학을 대표하는 퇴계 이황(안동)도 좌도의 유학자였다. 경상우도가 ‘남명 조식의 나라’라면, 경상좌도는 ‘퇴계의 나라’였다. 1670년 무렵, 정부인 장계향이 기술한 ‘음식디미방’이 나왔다. 장계향의 친정아버지 경당 장흥효(안동), 남편 석계 이시명(영해, 영덕), 아들 갈암 이현일(영해)은 퇴계의 학통을 이었다.조선 말기 상주에서 ‘시의전서’가 발견되었다.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시의전서’ 등 음식 관련 책이 모두 ‘음식 맛없는’ 경북에서 나왔다. ‘법도’를 지키는 ‘퇴계의 나라’였기 때문이다.경북은 ‘곰탕의 나라’다. 영천에 가면 ‘포항 할매곰탕’이 있고, 포항에는 ‘안동할매곰탕’과 ‘장기식당’이 유명하다. 경북의 웬만한 중소도시, 시골 골목에는 곰탕집이 있다. 시장통에는 30년, 50년을 넘긴 곰탕집이 흔하다. 설렁탕 집은 귀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귀한 곰탕집은 널리고 널렸다. 소머리곰탕이 있는가 하면, 경북 북부에는 사골곰탕도 흔하다.서울에는 설렁탕 집은 많으나 곰탕집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래된 설렁탕 노포도 마찬가지. 메뉴에서 ‘곰탕’을 찾기는 어렵다. 왜 곰탕이 경북 지방에만 흔할까? 곰탕이 ‘봉제사접빈객’의 으뜸 음식이기 때문이다. 곰탕은 대갱(大羹)이다. 대갱은 모든 음식의 기준이다. 대갱은 고기 곤 국물이다. 으뜸이고 기준이니 조미도 하지 않는다. “매실과 소금 양념도 하지 않은 국물”이 대갱이다.국물 음식이지만 굳이 국물로 가르지 않는다. 제사상에 밥과 국이 있는데 반드시 곰탕을 올리는 이유다. 양깃살(양짓살)에 다시마, 무를 넣고 푹 곤다. 그뿐이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華而不侈, 화이불치] 음식이다.민간에 고기가 흔할 리 없다. 소머리(소대가리)를 삶는다. 고기를 발라 넣고, 뼈 곤 국물에 밥을 만다. 소머리곰탕이다. 고기를 도축하고 나면 뼈가 남는다. 역시 곤다. 소, 돼지는 다리가 네 개다. 사골(四骨)이다. 사골을 곤 국물이 사골곰탕이다. 정육(精肉)이 귀하니 소 대가리와 다리뼈도 사용한다. 갈비뼈, 다른 잡뼈도 넣는다. 내용물은 설렁탕과 닮았으나 경북에서는 굳이 곰탕이다. 곧이 곧 대로의 곰탕은 아니되, 곰탕이다.경북 음식의 또 다른 키워드는 국수다. 곰탕집 못지않게 군데군데 국숫집이 있다. 큰길가, 동네 골목에도 있지만, 시장에서도 30년 이상의 국수 노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왜 국숫집이 많을까? 역시 국수가 ‘봉제사접빈객’의 주요 도구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안동에서는 “국수 없는 제사 없다”고 말한다.대구 시내 시장통에는 ‘합천할매집’이 있고, 칠곡의 국숫집에서는 안동식 건진국시, 제물국시를 내놓는다. 국수 중에도 칼국숫집이 유난히 많다. 경북 만의 국수도 있다. 반드시 콩가루를 ‘쪼매’ 넣는다. 경주 ‘웃장’의 칼국수 미는 사람이나 안동의 건진국시, 제물국시 맛집들도 ‘콩가루 쪼매’에 대해서는 각각 말이 다르다. 수십 번을 물어봐도 아무도 “몇 퍼센트 넣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쪼매’다.‘쪼매’는 한식의 특질이다. 오랜 경험과 연습으로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레시피대로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쪼매’는 딥러닝(Deep Running)을 거친 AI(Artificial Intelligence)도 따르기 힘들다. 그날의 온도, 습도, 불의 강도와 가족들의 시시각각 바뀌는 식성까지 헤아려야 한다. 우리의 ‘엄마’ ‘할매’들은 이런 어려운, ‘콩가루 쪼매 넣은 칼국수’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쉽게 만들었다. “콩가루를 얼마나 넣느냐?”는 질문에 대한 명답이 있다. “여름철에는 ‘쪼매’ 더 넣고, 겨울에는 ‘쪼매’ 덜 넣니더”.구룡포, 장기 일대에도 재미있는 국수가 있다. ‘깔때기’ 혹은 ‘깔때기 국수’다. 미역국에 밀가루 음식을 넣어 먹는다. 수제비를 넣어서 먹었다는 이도 있고, 같은 지역임에도 새알심을 넣었다는 이도 있다. 요즘은 굵직한 칼국수 형태의 밀가루를 넣는다. 바닷가의 흔한 미역과 밀가루가 만난 경우다. 지금도 경북에서는 “난 하루 세끼 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국수는 일상적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국수, 국수 맛을 기억하고 있다. ‘멸치 쪼매 부숴 넣고, 콩가루 쪼매 넣어서 해 먹었던 칼국수’는 경북 출신들의 ‘소울푸드’다.경북의 모든 음식이 봉제사접빈객의 음식은 아니다. 추어탕은 서민의 일상식이다. 추어탕은 중부식과 남부식으로 나눌 수 있다.중부식은 한양, 서울 방식이다. 국물을 별도로 마련한다. 국물은 소 내장이나 부속물을 우린 것이다. 고명, 육수 모두 화려하다.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사용한다. 붉고 맵다.경상도식 추어탕은 단순, 담백하다. 미꾸라지를 삶은 후, 곱게 간다. 곱게 간 미꾸라지 살로 추어탕을 끓인다. 된장 혹은 간장을 육수 대신 사용한다. 담백하다. 채소도 우거지, 시래기 등이다. 주로 배추 우거지를 곱게 쓴다. 여기에 산초가루를 더한다. 그뿐이다. 맑고 담백하다. 농경 지역 형태다. 청도 일대의 추어탕은 메기를 더했다. 추어탕에 메기를 넣는 이유는 간단하다. 맛이다. 상주, 예천, 문경 등에는 논, 개울에서 직접 미꾸라지를 잡아서 추어탕, 추어전골을 내놓는 집들도 있다.‘갱시기’는 퍽 재미있다. 갱식(羹食), 혹은 갱식(更食)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앞은 ‘국물 음식’이고, 뒤는 ‘다시 끓여 먹는다’는 뜻이다.“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시래기였다”고 떠들었다. 시래기와 갱시기. 나머지 2할은 갱시기였다. 소설가 성석제도 갱시기에 대해서 글을 썼다. 성석제는 고향이 상주 은척이다. ‘상업화’에는 실패했지만, 갱시기는 한식의 특질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한식은 ‘탕반(湯飯)음식’이다. 갱시기도 간편한 국물 음식이다. 멸치, 김칫국물에 식은 밥을 더한다. 콩나물, 두부 등을 넣어도 좋다. 남은 음식은 다시 끓여도 된다. 인스턴트 음식이다.한식의 특질은 삭힘이다. 유럽인들이 우유, 고기를 삭힌 유장(乳醬)을 자랑하지만, 좁고 얕다. 한식은 콩 등을 삭힌 두장(豆醬)과 생선을 삭힌 어장(魚醬)을 동시에 사용한다. 겨울이면 포항을 비롯, 동해안 전 지역에서는 ‘밥식해(食醢)’를 먹는다. 가자미, 명태, 횟대, 오징어, 꼴뚜기 등 생선도 가리지 않는다. 액젓 젓갈과 물기 없는 젓갈까지, 다양하다.갱시기의 주재료는 김치다. 그중에서도 김장김치다. 양력 3월이면, 김장김치가 푹 익어 곰삭은 쿰쿰한 맛을 낸다. 갱시기는 삭힌 음식을 조리한 것이다. 갱시기는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검이불루(儉而不陋)’의 음식이다.한식은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경북 음식은 법도에 맞는 음식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다. /황광해 맛칼럼니스트끝

2019-12-30

조선의 삼사(三司)와 공수처

강희룡 서예가빛나는 문화와 풍요로운 경제력을 자랑했던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백성을 위한 모범적인 정치를 위해 ‘언론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라는 유훈을 남겼다. 왕이 간신의 아첨에만 빠져 있으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으며 결국 망국으로 치닫는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게 되면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해 바른 말을 하겠는가.송 태조가 언로(言路)를 보호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조선의 건국 주체들의 생각엔 언로의 보장은 그들의 이상에 매우 적합한 제도였고 언관(言官)제도의 강화를 위해 왕명과 정책에 직접 간쟁을 담당하는 언론기관을 창설했으니 삼사(三司)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료들은 이 삼사에서 관직생활하는 것을 영예로 여겼으며 이들의 주요 임무는 잘못되는 정치 전반에 걸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직책이었다.따라서 이들의 힘이 강할 때는 왕권과 신권의 전제를 막았으나 이들의 힘이 약하거나 파벌에 의해 나눠질 때는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백관을 규찰하며 기강과 풍속을 바로잡고 억울한 일을 없애주는 일 등을 맡는 기관은 송나라나 고려에서 어사대가 그 역할을 하였는데 조선에서는 삼사 중 사헌부가 담당했다.이 사헌부는 고위직의 직무를 감찰하고 공직기강을 바로 잡는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먼저 본인들 부서 내부에서도 규율이 매우 엄격했으며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조정 신료들의 규율과 기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만큼 스스로의 행동과 위계질서가 일종의 타의 모범이 되는 행동으로 여겼다. 왕에게 직언하며 고위관료들을 탄핵하고 견제하는 만큼, 왕이 파직 명령을 내리는 등 따위의 지위의 위태로움도 안고 있었다.이런 위험 속에서도 잘못된 정치에는 목숨을 걸고 임금께 상소를 올리며 자신의 주관을 펼치는 청렴한 관료들이다 보니 그 위엄은 사뭇 대단했으며 정승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지금 국회는 본회의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한 여야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며 팽팽한 공방전을 초래했다. 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 비서실 정무직 공무원 등이다.결국 공수처는 입법 행정 사법을 초월하는 초헌법적 기구로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된다.더구나 대법원장, 공수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며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혐의를 인지단계에서부터 공수처에 통보토록 한 새 조항의 도입은 더 이상 견제할 기관도 없는 무소불위의 괴물로 만든 것이다.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틀을 깨부순 이 공수처의 입김에서 모든 기관들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사법부 역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사법권의 독립은 사라질 것이다. 헌법 1조 1항에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대한민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2019-12-30

학년말 학생부 쓰기 격무의 늪에 빠진 교사

조현명 시인학기와 학년이 마무리되면서 선생님들은 전에 없던 노동에 시달린다.그것은 학생부 작성이라는 가중된 업무이다. “원래 선생님들의 업무가 아니냐?” 라는 물음에 답을 하기 싫을 정도로 격무가 되었다.웬만하면 이것 때문에 담임을 맡기 싫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예전 손으로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도 나름 어려움은 있었다. 흑색 볼펜으로 써야하고 오기나 잘못쓰기라도 하면 수정이 어려워 아예 다시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자 수는 지금에 비하면 몇 자 적은 것도 아니다. 그것 때문에 고민되는 수준은 아니었다.그런데 지금은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도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의 특기사항에다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과 종합의견란으로 써야하는 항목이 늘어났다. 게다가 기록을 구체적으로 해야 대입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에 없는 글을 짜내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이런 변명을 하면 관리자나 교육청에서는 미리 관찰기록을 작성하고 누가기록을 바탕으로 쓰면 쉽지 않겠느냐며 반문한다. 그러나 누가기록을 놓고 보아도 막연할 때가 많다. 글쟁이인 내가 그런데 글쓰기에 능숙하지 못한 선생님들은 어떤 심정일까 생각이 든다. 올해부터는 또 거짓으로 꾸며 쓴 내용이 있으면 징계하겠다고 엄포까지 공문으로 전달받은 상태이다. 이러고 보니 진퇴양난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부탁과 성화에 좋은 글을 짜내어 없는 것도 좋게 꾸며내야 할 판인데 감사가 겁이 나서 함부로 거짓으로 꾸밀 수도 없고 적당히 에둘러 적다보면 구체적이기보다는 두루뭉수리하고 추상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다. 어떤 학생이든지 성실하고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고 훌륭하며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멋진 학생이다.복사하기 붙여넣기를 하다 보니 문장이 같아지는 학생이 많아지면 그것도 지적사항이 된다. 수업 장면에서 학생의 능력을 좋게 써주려고 하다 보니 교육과정을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지적사항이다.해마다 같은 내용을 하는 동아리의 기록을 달리해야 하다 보니 순서나 행사들을 나누어 적기도 한다. 그러다가 같은 문장이 3년 반복되어 지적되기도 한다. 오타나 말도 안 되는 문장, 길게 늘어져서 읽기가 거북한 문장, 자율 활동에도 나오고 진로 활동에도 나오고 종합의견에도 나오는 똑같은 문장 이런 것들이 수도 없이 지적된다. 그럼에도 이것을 가지고 대학입학사정관들은 점수를 매긴다. 대입의 당락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선생님의 글 솜씨에 의해 학생들의 당락이 좌우된다니 그냥 글쓰기가 아니다. 신경을 바짝 써야하는 어려운 글쓰기이다. 이런 격무는 대한민국에서나 있는 일이다.그래서 몇 해 전 해외토픽에도 오르기도 했다. 이후 교육부가 학생부의 공정성을 위해 글자 수를 줄이고 항목도 줄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학생부종합전형이 그대로 유지되는 이상 없어지지 않을 격무다.게다가 이것으로 학교 수업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삼겠다는 발상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대로 유지될 격무이다. “누가 여기서 좀 구해주시오”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격무의 늪에 빠진 교사들을 다 외면하고 지나쳐 갈뿐이다.

2019-12-30

관점을 바꾸는 일 (3)

서로 짝을 지어 친구가 친구에게 스승이 될 수 있도록 서로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이 방식을 ‘하브루타’라고 합니다. 상대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탈무드를 해석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도록 요구합니다.한 시간의 탈무드 공부를 위해 2∼3시간 동안 본문을 연구해 옵니다.그리고 둘이 끝장 토론하듯 상대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 거죠. 이런 방식의 질문과 토론을 매일 반복한다니 소름 돋습니다.왜 그들이 미국의 ‘법조계’를 장악하고 있는지, ‘언어’를 다루는 언론, 출판, 방송, 영화 등을 독점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소크라테스는 삶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훌륭한 삶을 누리기 위해 캐묻는 삶을 강조했고,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함께 도달하도록 상대를 다그쳤습니다. 100명의 사람을 찾아가면 오직 한 가지 ‘진리’에 도달하도록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지요. 즉 100대 1의 원리입니다.유대인들의 접근 방식은 소크라테스와 반대입니다. 한 가지 정답을 캐내고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100명이 모이면 100가지 다른 다양한 관점들을 꺼낼 수 있도록 자극하고 거세게 몰아붙이는 겁니다. 100대 100의 원리인 셈이지요. 유대인 랍비들이 제자들을 자극하는 가장 치욕적인 말이 있습니다. “마따호쉐프!” 번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얘야. 너는 왜 ‘네 생각’이 없느냐!”정현종 시인이 파블로 네루다 시집 ‘질문의 책’을 번역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며, 홀연히 ‘처음’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고, ‘끝없는 시작’ 속에 있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삶에 대한 다양한 질문으로 2019년을 마무리해 보는 건 어떨까요? 밝아오는 2020년을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30

백석 시를 맛보는 겨울밤

백석 시인언제든 시간이 지나도 반복되고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처음에는 분명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지만, 지금은 단순한 제도나 의무 같이 내게 주어져 그 이유를 물을 필요 없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남겨진 것들 말이다. 어릴 때, 이유도 모른 채 부모님들의 손에 끌려 참석했던 제사 의례가 그렇고, 온 가족이 모여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처럼, 한 해의 정해진 때에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예의 관념이 꼭 그런 것들이다.인간에게 있어 이렇게 반복되는 것들이 매번 다른 의미를 갖기 어려운 까닭은 반복되는 것들 사이에서 매번 의미를 챙기기보다는 그대로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순 반복되는 일들을 행하기에 적절한 존재가 아니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경우에는 하나하나의 일들에 의미를 담기보다는 기계화된 동작과 의식으로 반복되는 일들에 자기를 맞춰갈 수밖에 없다. 인간을 둘러싼 반복적인 의례들이 매번 새로운 의미를 갖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인간이 그러한 노동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당연하게 된 것일 터이다. 그러한 의례에 담긴 큰 뜻이나 취지를 다시 설명한다고 해서 사라진 마음이 다시 생기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반복되는 겉치레의 예의 속에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삶에 가끔씩 어떤 ‘마음’이 찾아오는 때가 있다. 어느 겨울밤, 누군가 밖에 온 것 같아 공연히 문을 열어보게 되는 것처럼. 혹은, 새벽녘 문득 울린 스마트폰 알림에 이제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떤 기억들이 찾아오는 것처럼. 연말 같은 시기가 되면 문득 찾아오는 그 마음은 이제는 관성화되어 버린 반복된 예의 관념의 근원을 깨닫게 한다. 그래, 그랬었지, 우리가 그것을 처음 행했던 것에는 바로 그런 ‘마음’이 있었다. 우리는 어떤 것이 먼저였고, 어떤 것이 나중이었는지 쉽게 잊어버린다.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겨울밤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백석을 떠올리고, 백석 시 몇 편을 읽곤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니, 의례나 의무 같은 것은 분명 아니다. 유독 겨울밤이 되면 찾아오는 그런 어렴풋한 ‘마음’을 백석만큼은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릇 시인이라면 자기 앞에 놓인 무표정한 반복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당연한 의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유독 백석은 낯선 얼굴 너머에 들어앉아 있는 어떤 ‘마음’의 기원을 찾아낸다.백석에게 있어 그 ‘마음’은 사방으로 눈이 내려 주변이 먹먹함으로 가득한 때, 온 가족들이 모여 보내는 명절날의 분위기로부터 온다. 그것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반복되어 찾아오는 것이니, ‘원형’적인 것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니, 매번 반복되는 명절날이나 가족들이 모임이 먼저가 아니다. ‘마음’이 먼저다. 내 앞에 가득 사리워 오는 한 그릇의 국수 속에도, 어떤 날을 떠올리도록 푹푹 내리는 눈 속에도, 눈같이 하얀 달이 빛나는 밤에도 그 마음이 담겨 찾아오는 것이다. 마치 이제는 어떤 정신도 죽어버렸다고 생각되던 고도 자본주의시대에도 보들레르가 언어 속에서 맡았던 고대의 향기처럼. 백석의 시 속에는 어떤 오래되었지만, 그리 오래된 것만도 아닌 어떤 ‘마음’을 동반한 맛이 존재한다.물론, 깊은 겨울 밤 따뜻한 방안에서 차갑고 시큼한 귤을 까먹으며, 백석 시를 맛보는 재미가 어디 그런 어렵고 복잡한 생각의 재미뿐이겠는가. 지금은 귀에 선 이북 사투리를 읽는 재미라든가, 마치 코끝이나 혀끝에서 맴돌 듯 느껴지는 감각도, 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를 읊으며, 데운 술을 한 잔 마시는 경험도 백석 시를 맛보는 겨울밤의 일부가 아닐 것인가./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12-30

자유를 위한 아름다운 고독… 성주 심원사(深源寺)

가야산 허리를 감으며 차는 심원사를 향해 달린다. 한적한 겨울 산사를 상상했는데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자 주차장에는 차들로 가득하다. 큰 행사가 끝난 듯 많은 사람들이 총총히 심원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인적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렸지만 공양간 앞에는 여전히 남은 사람들로 어수선하다.해인사의 말사인 심원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말 도은 이숭인이 심원사를 고사(古寺)라 칭한 시가 남아 있고 오랫동안 법등도 이어져 왔다고 전한다. 조선 중종 때 승려 지원이 중수하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어 폐사되었다. 새로 지은 전각들 사이로 삼층석탑과 부서진 석조 유물들이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생각보다 큰 절이다.북적이는 산사의 정경이 낯설다.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에 익숙해 오다 이토록 많은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스님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는 불자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처럼 어색하다. 술렁이는 인파를 피해 대웅전 법당으로 들어선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 나를 내려놓지만 마음은 아득한 허공처럼 잡히지를 않는다.대웅전을 나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종각 앞에 놓인 팥죽을 보고 뒤늦게 동지임을 알았다. 특별한 날의 기도는 무엇이 다르기에 이토록 사람이 모이는가. 눈앞에 펼쳐진 비슬산과 가야산의 빼어난 경관 앞에서도 마음은 여전히 신산하다. 스님과 차담을 나누기엔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것 같다.‘문 없는 문을 뚫는다’는 무문관(無門關)이 심원사에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장 달려왔는데 허탈하다. 깨우침의 길을 뜻하는 문 없는 문, 무문관 수행의 규범은 매우 엄격하여 일체 문밖을 나올 수 없으며 조그만 창구로 음식물이 들어간다. 심원사의 무문관도 바깥에 자물쇠가 있어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지만 하루 한번 문이 열린다고 한다.스스로 화두를 잡고 고행의 길을 선택한 스님들이 계시는 상왕선원(象王禪院), 청정한 눈빛들이 문풍지를 울리고 허기진 언어들은 바람에 업혀 달아날 것만 같다. 술렁이는 절 분위기와 상관없이 상왕선원은 섬처럼 고독하다. 마치 비어 있는 것처럼.이름을 남긴 대선사들의 면벽 수행과 깨달음의 이야기는 수없이 회자된다. 스님이라면 한번쯤 꿈꾸고 도전해 볼만한 유혹이 담긴 고행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꿈꾸기는 쉬워도 그 꿈을 현실로 이루기는 쉽지 않다. 안거 경력 40년이 넘은 선원장 스님에서부터 선방 생활을 오래한 구참 스님들에게만 허락된 고독이다.숭모전으로 향하는 높다란 계단 좌측편으로 상왕선원이 또렷이 보인다.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은 삭제된 일기장을 대하듯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대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단청 없는 소박한 전각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더없이 작고 평범한 나와 팥죽 같은 미소를 안고 총총히 사라지는 불자들, 상왕선원 앞에는 깊고 도도한 강물이 흐른다.의식주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하품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나 역시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발버둥쳐 보지만 언제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욕망과 번뇌, 나태와 게으름 앞에서 속수무책 넘어질 뿐이다.조낭희 수필가심원사를 다녀온 후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이란 다큐멘터리 영화가 또 나를 흔들었다. 일체의 외출도 허락되지 않는 봉쇄 수도원에서 평생을 살기로 약속한 수도사들의 눈빛은 지극히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엄격한 규율과 절제, 기도와 노동, 청빈함으로 살아가는 위대한 침묵 앞에서 내 안에 뜨거운 것이 일렁였다.구멍이 난 양말과 소품들, 가난을 통해 얻어지는 무소유의 즐거움, 육신의 노화와 질병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는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했다. 이웃과 인류를 향한 그들의 보이지 않는 고독이 면류관이 되어 내 안을 밝힌다. 평범한 사람들은 범접조차 할 수 없는 무문관 수행에 비해 수도사들의 삶은 좀 더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오랜 역사를 가진 가톨릭의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과 불교의 무문관, 종교는 달라도 영원의 진리를 좇는 목표는 닮았다. 신과 하나가 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오로지 고독과 싸우는 길을 택한 사람들. 참된 믿음은 교회나 절, 성서나 경전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절제와 고독을 좀 더 사랑할 수 있다면 나의 일상도 달라지리라.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아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 어느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연말이다. 오늘 하루의 평화도 누군가의 기도와 자비의 힘으로 내게 주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나는 삶을 헌신할 만한 간절한 목표가 없다. 하지만 불어터진 빵조각 같은 삶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넘어지고 방황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채찍을 가해야 할 시시포스의 운명을 죽는 날까지 사랑하리라. 그것이 하품인생의 어설픈 고독이라 할지라도.

2019-12-30

폰지 사기

폰지 사기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일컫는다. 1920년대 미국에서 찰스 폰지(Charles Ponzi)가 벌인 사기 행각에서 유래됐다.이탈리아 태생인 찰스 폰지(1882~1949)는 1903년 미국으로 건너와 허황한 꿈을 좇으며 도박과 낭비를 일삼다가 전과자가 됐다. 1919년 국제우편 요금을 지불하는 대체수단인 국제우편쿠폰이 제1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크게 변한 환율을 적용하지 않고 전쟁 전의 환율로 교환되는 점에 착안해 해외에서 대량으로 매입한 뒤 미국에서 유통시켜 차익을 얻는 사업을 구상했다. 폰지는 45일 후 원금의 50%, 90일 후 원금의 100%에 이르는 수익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투자자를 모집했으며, 투자자들은 약정된 수익금이 지급되자 자신의 지인을 2차 투자자로 모집하게 됐다.이 소문이 미국 전역에 퍼져 투자 총액이 몇 달 만에 막대한 규모로 불어났다. 폰지는 몇 개월 만에 무일푼에서 갑부가 됐다. 그러나 이 사업의 실상은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수익을 지급하는 금융피라미드였다. 여기에다 보스턴우체국에서 국제우편쿠폰을 환전하는 데는 폰지가 투자자들에게 약정한 기일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결국 1920년 8월 폰지는 결국 파산신고를 하고 사기혐의로 구속됐다.최근 국내 1위 사모펀드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미국 펀드업체가 폰지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있다.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아예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니 일확천금의 꿈은 세계 어디서나 끊기힘든 범죄를 부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30

아듀 2019! 새해에는 상생의 정치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2019년을 작별하는 마지막 날이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가 사생결단의 정쟁을 하다보니 벌써 한 해의 끝에 섰다. 통합과 협치를 약속했던 대통령은 어디로 갔는지 정치판은 쌈박질 뉴스뿐이다. 돌아보면 온 나라가 ‘내편 네편’으로 갈라져 원수처럼 싸운 적이 있었던가 싶다.조국 파문, 선거법 개정, 공수처 설치,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등이 제기될 때마다 정치권은 입에 담기 힘든 진흙탕싸움을 벌였다. 정부 내에서도 청와대와 검찰은 서로 정의를 강변하고 대립하면서 국정불안을 증폭시켰다. 정치권의 갈등은 국민에게 비화되고 진영싸움으로 확산됨으로써 온 나라가 두 동강 났다. 양 진영에서 동원한 ‘광장정치가 의회정치를 겁박’하는가 하면, 정치적 성향이 다른 언론과 유튜브 방송들도 각자의 진영논리를 대변하고 있다. 심각한 이념적 분열과 내로남불의 정치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이다.이러한 참담한 현실을 교수들은 ‘공명지조(共命之鳥)’에 비유하였다. 최근 교수신문이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선정한 올 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이다. 하나의 몸통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이 새는 공동운명체이다. 두 마음이 서로 질투하던 어느 날, 한 머리가 다른 머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독 있는 과일을 먹었고, 결국 독이 온 몸에 퍼져 둘 다 죽고 만다는 불교경전의 이야기다. 공명지조의 교훈은 ‘상생(相生)’, 즉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윈윈의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은 어디에 있는가?상생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의 올바른 정치의식이 중요하다. 정치권은 민주주의의 상생정신, 즉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라 ‘조금 더 많거나 작게(more or less)’라는 타협정신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독선과 편견을 버리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소통과 대화를 해야 한다.이 때 중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 자, 즉 집권여당이 먼저 야당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며, 서로가 ‘다른 의견’을 ‘틀린 의견’으로 매도하지 않고 그 격차를 좁혀나가야 한다. 또한 정치권의 상생정치를 위해서는 ‘국민이 공정한 심판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유권자가 권력게임의 어느 한 편에 가담하여 적대정치를 부추기는 한 상생의 정치는 뿌리내리기 어렵다. 물론 국민도 개인적 정치성향이 다를 수는 있지만, 정치게임에서 심판관 역할을 해야 할 유권자가 정치인처럼 플레이어(player)가 되어서는 안 된다.총선이 예정된 새해에는 정치권의 권력투쟁이 더욱 격화될 우려가 있다. 출마하는 후보들은 왜,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려는지, 정치인으로서 품격은 갖추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또한 국민은 민주주의 원칙에 투철함으로써 상생정치의 적임자를 찾아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한국정치가 ‘상극의 정치’로부터 ‘상생의 정치’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2019-12-30

성공한 ‘펭수’

특정한 인물을 상징하거나 동식물을 의인화해 소비자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가게 하는 상품을 캐릭터 상품이라 한다. 20세기에 등장한 캐릭터는 상상속의 인물이지만 소비 주체인 나와 접목되는 과정을 통해 마케팅의 도구로서 큰 인기를 모았다. 1930년대 디즈니사는 미키마우스를 필두로 도널드 덕, 구피와 같은 수많은 캐릭터를 만들고 캐릭터 시장을 오랫동안 독점한다. 디즈니 만화를 보지 않고 자란 아이가 얼마나 될까 상상해보면 캐릭터의 영향력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EBS 프로그램 ‘펭 TV’에 등장한 펭수의 인기가 절정이다. 방송 시작 7개월만에 유튜브 채녈의 구독자수가 100만명을 넘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출시되더니 상업광고에도 픽업됐다. 펭수 달력은 출시된 지 16시간만에 17만장 팔렸다. 펭수의 인기는 이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 한 조사에서 펭수는 K-POP 대표주자인 BTS를 제끼고 올해의 인물 1위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펭수는 펭귄의 펭과 빼어날 수(秀)가 합쳐진 이름이다. 원래 어린이 방송용으로 제작한 캐릭터지만 지금은 팬클럽이 만들어지고 어른까지 열광한다. 성인의 뽀통령(뽀로로 대통령), 직통령(직장인 대통령) 등의 애칭이 그의 인기를 대변한다.펭수의 인기 비결은 비록 인형의 탈을 썼지만 자기감정을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한 데서 비롯된다. “내가 내일 때 제일 좋은거다” 는 그의 말은 오롯이 나이길 바라는 젊은이의 감성을 건드리기에 충분하다. EBS 연습생 신분에도 사장 이름을 거침없이 불러댄다. 많은 직장인은 이를 보고 통쾌감을 느끼며 펭수가 마치 나인 것처럼 착각도 한다. 캐릭터가 이제는 마케팅 도구를 넘어 문화의 영역에 왔음을 보여준 사례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29

타락한 ‘다수결’

안재휘 논설위원‘왜 사람들은 다수에 복종하는가? 더 많은 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더 많은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의 ‘팡세’에 나오는 이 말은 민주주의가 채택하고 있는 ‘다수결(多數決)’ 의사결정 방식의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다수결은 어디까지나 결정이 시급한 안건에 대해 만장일치 처리가 어려울 때 선택하는 ‘차선’의 방안임을 우리 정치권은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다사다난했던 2019년을 마무리하면서 대한민국 국회는 낯설고 해괴한 장면을 잇달아 연출하고 있다. 사상 최초로 게임의 룰인 선거법까지 여야 합의가 아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우격다짐으로 올린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교섭단체’중심 국회운영 전통을 깨고, ‘4+1’이라는 얄궂은 짬짜미 ‘바꿔먹기’식 협잡 꼼수를 서슴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필리버스터에 부득부득 뛰어든 여당 의원들의 한심한 저질 코미디는 또 뭔가. 결과론적이지만 호남의 분열정치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는 역설이 호남정치에 정확하게 먹혀들고 있다. 물론 보수정당이 전혀 대안이 못 되는 호남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호남에서는 민주당 싫으면 민주평화당 찍으면 되고, 그도 싫으면 대안신당 찍으면 된다. 그런데 영남에서는 한국당 싫은 사람은 민주당 찍는다. 그러니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앞으로도 영남 보수정치는 성공할 개연성이 높지 않다.이래저래 영남의 보수정치는 퇴락해가고 있다. 민심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헤아리는 일에 무디기 짝이 없는 자유한국당이 문제다. 오랜 세월 기득권층이 되어 누리기만 한 탓에 돌발변수에 대응하는 능력마저 퇴화했다. 스스로 변화하는 일에도 서툴기 짝이 없다. 서푼 어치도 안 되는 패잔권력 부여잡고 연장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이 모습대로라면 앞으로도 영 가망이 없을 조짐이다.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정치인들의 결사체라고 자부해온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모습은 가슴이 아프다. 그들은 소수 야당 시절 그토록 눈물 콧물 흘리며 아니라고 외쳤던 꼴통 보수 독재세력의 횡포를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 아니, 긴 세월 서럽게 당하는 동안 배운 기법까지 총동원한 그들의 다수 독재는 훨씬 더 교묘하고 악랄하다.누더기를 넘어서 걸레가 된 선거법이 파생할 혼란에, ‘검찰 개혁’이라는 포퓰리즘으로 거짓 포장된 무소불위의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이 빚어낼 파열음이 또 얼마나 많은 국론분열과 패싸움 난장을 펼쳐낼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타락한 다수결’의 몸쓸 관성이 ‘양보와 타협’의 덕목을 모조리 망가뜨리면서 이 나라 정치를 얼마나 더 피폐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파스칼의 말을 의역하면, 다수는 그저 ‘힘이 있다’는 뜻이지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부디 ‘우리는 옳다’고 말하지는 마시라. 멀쩡한 정신으로 국민노릇하기 참으로 힘든 세모(歲暮) 풍경이다.

2019-12-29

어느 신부님의 성탄 메시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있었으랴만 올해는 유달리 복잡다단한 한 해였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던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여야의 정치적 갈등은 극한적 대립으로 증폭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성장을 멈춘듯하여 불안하기 그지없다. 보편적인 복지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자살자는 증가하고, 얼마 전 우유를 훔치다 잡힌 한국형 장발장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세상의 평화를 선도해야할 어느 목사는 광화문에서 정치적 갈등을 부추긴다. 크리스마스는 다시 찾아왔고 우리는 또다시 새해에 희망을 건다.크리스마스 전 어느 신부님의 강론은 듣는 이에게 경종을 울렸다. 고위 성직자도 아닌 우리 곁의 한 사제의 강론이 우리의 마음을 울렸다. 그의 강론 제목은 ‘성탄과 가난’이었다. 예수는 베들레헴의 마구간 구유 위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탄생하셨다(루, 2.7). 성자이신 예수는 방 한 칸 구하지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아기 예수 곁에는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만 있었고 목동들이 주위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세상은 아직도 크리스마스를 흥청거리는 날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라는 신부님의 성탄 메시지는 새롭게 다가왔다.신부님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16.23)를 통해 부자들의 삶의 각성을 촉구했다. 성서 상 라자로는 병들고 배고픈 비천한 인간이다. 그는 부자의 식탁 아래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로 살아가고 있다. 식탁 밑의 개는 라자로의 종기를 핥아 먹는다. 훗날 지옥에 간 부자는 천국에 있는 라자로에게 물 한 줌 달라고 호소한다. 결국 강론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지 않았던 부자의 비극적 최후를 설파하였다. 며칠 전 언론에는 우리나라에서 집을 100채 이상 가진 사람이 259명, 최고 집 부자는 594채를 가졌다고 보도하였다. 신부님의 강론은 오늘날 가진 자들의 위선을 비판하고 자선만이 구원의 길임을 되새겨 주었다.신부님은 마지막으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신앙은 결국 실천임을 강조하였다. 여행길에 강도당한 사람(루,10.30)을 사제와 레위인들도 모른척하고 떠나 버렸다. 유태인들이 그렇게 천시하는 사마리아인이 이 사람을 여관으로 데려가 보호해준다. 우리 주변에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지만 바쁜 세상 핑계로 모두가 외면해 버린다. 물질적 풍요가 더할수록 인정과 인심은 더욱 메마르다. 교회마저 세속이 들어와 가진 자와 높은 자들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신부님의 강론은 교회의 참된 책임을 일깨워 주었다.이 신부님은 젊은 시절 가톨릭정의구현사제단에서 활동하셨던 분이다. 세상이 온통 뒤범벅이고 정치가 탈선했을 시 정의 사회를 외쳤던 분이다. 오늘날 일부 개신 교회는 상속권 문제로 시끄럽고, 가톨릭에도 세속이 범람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마침 로마 교황은 바티칸의 성직자들이 역동적인 시대정신을 알아차리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모든 크리스천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극히 겸손한 보통 신부님의 비범성이 돋보이는 강론이었다.

2019-12-29

시울림이 있는 학교

김현욱 시인요즘 학생들이 가장 자주 접하는 매체는 책보다는 스마트폰 동영상과 모바일 게임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 틱톡과 같은 동영상 전문 앱과 범람하는 수많은 모바일 역할수행게임(RPG)들이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 시대에 우리 학생들은 무분별한 동영상과 현란하고 잔인한 게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밖에도 영화, 텔레비전, 광고와 같은 휘황찬란한 동영상 매체가 우리 학생들의 삶과 영혼을 사로잡고 있다. 이로 인한 폐해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긴 글을 읽지 못하고, 짧은 글이라도 맥락을 알지 못하며, 평소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고, 교묘하고 영악한 방법으로 친구를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은따, SNS를 이용해 비방하고 험담하는 카따까지 우리 학생들의 영혼은 심각한 수준으로 병들고 있다.유년시절부터 청소년시절에 이르기까지 우리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혼을 고양시키는 재미있고 아름다운 시와의 만남이다. 시를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시의 아름다움을 통해 언어의 고귀함을 느끼며, 따뜻한 인성과 상상력,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 무엇보다 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인류 문화의 정수다.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선행되고 바탕이 되어야 할 교육은 코딩이나 정보통신, 5G같은 기술이 아니다. 우리 학생들이 시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고 내면에 숨어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다. 신헌재 교수는 “시를 감상하는 것은 낱말, 소리, 그리고 독특한 방식의 리듬, 창조적 언어 사용 방법들을 발견하게 하여 학생들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고 하였다. 시는 늘 우리 삶을 노래한다. 시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통찰하며 경험을 확장시킨다. 시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 낭송(암송)과 시 쓰기이다. 윤여탁 교수는 “시는 시다워야 하며, 시는 읽혀야 한다. 또 시를 설명하면, 시는 다친다”고 하였다. 학생들은 대부분 시를 재미없고 지루해한다. 잘못된 시 교육 때문이다. 신비평과 구조주의에 바탕을 둔 시 교육은 시의 비유, 상징, 운율, 함축된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고, 학생들에게 그것을 찾아내게 한다. 학생들이 시로부터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시는 분석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자전거처럼 타고 달리는 것이다. 자전거를 칠판에 걸어놓고 분석하고 설명하고 문제풀이까지 하면 자전거를 좋아할 학생들은 단 한 명도 없다. 활동 중심의 시 낭송(암송) 활동을 통해 시에 흥미와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는 그 자체로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즐거운 시 낭송(암송)과 삶을 가꾸는 시 쓰기를 ‘시울림’이라고 한다. 시를 낭송하면 몸이 떨린다. 시를 외면 영혼이 떨린다. 시를 쓰면 삶이 떨린다. 그리하여 떨림은 울림이 된다. 임종식 경상북도교육감이 ‘시울림 학교’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2019-12-29

관점을 바꾸는 일 (2)

일본의 석학 다치바나 다카시는 ‘사색기행’이라는 책에서 유대인 성공 비결을 관점의 탁월함으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0.2% 밖에 안 되는 유대인들이 세계 경제의 70%를 좌우하고 노벨상의 22%를 독점하며 미국의 언론과 영화계, 예술계, 법조계를 지배하는가, 어떻게 전 세계 초우량 기업은 대부분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만,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그들은 보이지 않는 유일신을 섬기고 있다. 그 유일신은 자신의 형상을 어떤 형태로도 만들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율이다.”유대인들이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신입니다. 그리스나 동양 종교만 해도 신의 형상을 온갖 형태로 만들어 사당이나 신전을 만들어 장식하고, 눈에 보이는 신(神)으로 숭배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온통 지배하는 신의 모습을 오로지 ‘상상력’에 의지해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자리 잡도록 했습니다. 이런 관습이 유대 민족 전체의 상상하는 힘을 자연스럽게 길러주었다는 거죠.“둘째 거의 2천년에 걸친 핍박으로 유대인들은 항상 방랑할 수밖에 없었다. 방랑은 말 그대로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고 이는 숱한 이동 즉 여행을 수반한다.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움직이는 삶은 자연스럽게 ‘관점’을 다양하게 가질 수 있는 유연함을 길러준다.”끊임없이 상상하는 일, 익숙한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신을 움직여 유연한 관점을 갖도록 하는 것. 이 두가지 능력은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호기심은 결국 ‘질문하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유대인들은 핍박을 많이 받아서, 다음 세대를 가르칠 교사들이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온 교육 방식이 있습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29

2020년을 지역발전과 시민행복·복지증진의 해로

장욱현 영주시장2020년은 영주의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새로운 지역 현안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한 해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영주시는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 중부권 동서내륙철도 건설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해 지역발전을 극대화하는 것이 첫째다. 시민복지를 증진하는데에도 시정을 집중할 방침이다. 올해 대내외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투자 등 국가베어링 산업 육성정책을 발판삼아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최종 승인에 한 발 더 다가선 것은 큰 성과다.이와 함께 중앙선 복선전철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중부권 동서횡단철도가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되도록 힘쓰는 등 철도 기반의 물류중심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기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제 46회 LA한인축제에서 영주의 우수 농특산물이 전량 매진되는 성과를 거두며 풍기인삼농협은 50만 달러 수출협약을 체결했고, 울타리USA사와 5년간 300만 달러 수출 협약을 맺는 등 지역 농·특산물의 해외시장 개척 가능성도 재확인했다.문화관광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달성했다. 지난해 부석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데 이어 올해 소수서원이 등재되면서 영주시는 2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한 도시가 됐다. 세계인성포럼 개최, 선비대상 시상 등 선비도시 영주의 정체성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이밖에 2019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에서 3년 연속 최우수상 수상의 영예를 안는 등 지역 공공건축의 성공모델로 주목받고 있다.영주시는 올해 성과를 발판삼아 2020년에는 일자리가 있는 경제도시, 혁신적 농업정책, 힐링관광도시, 사람 중심의 도시, 아동과 청소년이 바르게 자라는 도시, 시민이 편안한 도시 등 시정운영 방침을 토대로 지속가능한 영주발전을 실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첨단베어링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영주의 국가산업단지 최종승인이라는 결과로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힘쓰겠다. 베어링아트 3천억원 유치에 힘입어 농공단지 확장 사업을 신속히 추진해 첨단산업의 중심지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를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시키고 중앙선 복선전철 사업을 조기에 완공해 물류거점도시, 철도 중심도시로 다시 도약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국립산림치유원, 국립 산림약용자원연구소,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산양산삼·산약초 홍보교육관 등을 연계해 백두대간 산림과학벨트를 구축하고 힐링산업진흥원 유치, 백두대간 산림ICT융합센터 구축 등 자연자원에서 새로운 경제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워 나가게 된다.지역 경제의 또 다른 축인 농업정책에도 변화가 생긴다. 영주의 지역브랜드 가치를 높일 새로운 기회가 될 2021풍기세계인삼 EXPO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지역 농산물의 생산·유통·소비를 통합 관리하는 푸드플랜 종합계획 마련, 국제콩연구소 유치, 해외 농특산물 전시판매장 등 혁신적 농업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이다.복지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의 정주여건 조성, 공공의료 서비스 지원 확대, 아이돌봄 서비스와 저출생 정책 추진 등 복지 서비스도 강화한다. 노인종합복지관, 장애인복지관, 치매안심센터 등 사회적 약자도 차별없이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복지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 치매전담형 노인요양시설, 주간보호센터 구축 등 생활밀착형 복지정책을 실현할 계획이다. 특히, 기업·학회 회의, 인센티브 관광, 국제회의, 전시회를 유치해 머무르는 문화·관광 도시를 조성한다.영주댐 정비사업과 복합 어드벤처 공간조성, 선비세상, 전통사상체험관, 전통문화체험단지 등 지역의 특징을 살린 차별화된 관광지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이밖에 세계인성포럼 개최, 국립인성교육 진흥원 유치를 추진하는 등 선비도시 자리매김할수 있는 정책도 계속해서 적극 추진한다.내년 예산은 일자리 창출과 복지강화, 농업·문화관광·지역개발 등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올해보다 11.7% 늘어난 7천926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예산이 지역의 발전과 시민의 행복을 위해 소중히 쓰일 수 있도록 공정하고 올바르게 시정을 추진해 2020년은 영주시가 더 높이 뛰어오르도록 하겠다.

2019-12-29

새해 결심을 이루려면

박근영 공무원예년과 다른 새해를 맞이하려는 의욕이 충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가 불 보듯 뻔한 탓에 새해 각오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도 그저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지난 2018년 말, 실로 오랜만에 ‘새해 결심’이라는 것을 써 보았다. 리스트에는 일회성도 있고 꾸준히 습관을 만들어 삶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중대 결심도 있었다. 이대로 실천하면 삶은 충만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려대로 연초 다짐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일상의 반복만 거듭하며 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그때 작성한 새해 결심을 펴보지도 않다가 1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열어본다. 무려 스물다섯 가지나 적혀 있다. 한 줄 한 줄마다 포부가 엿보인다.첫 번째 목표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 올라가 오케스트라 공연 관람하기로 적혀 있다. 못 갔다. 대신 2월에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빈 첼로 앙상블 공연을 보고 왔다. 공연, 콘서트, 전시회 같은 유희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기에 이런 활동은 내 정신적 제약을 뛰어넘는 행동이다. 보통 사람은 고민 없이 실행하는 이런 간단한 일도 내게는 거창한 이유가 달린다. 어쨌거나 첫 번째 목표는 달성으로 친다. 두 번째 목록에는 문장 중간에 ‘꾸준히’라는 낱말이 있다. 신문에서 유용한 자료를 골라 스크랩을 한단다. 꾸준히. 이미 내 습성을 간파하고 나름 굳은 결심으로 꾹꾹 눌러쓴 결심이었을 거다. 몇 번 실천했는데 과연 이를 목표 달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 번째부터는 차마 적지도 못하겠다.새해가 되면 빠지지 않는 외국어 공부에 관한 것도 몇 개나 적혀 있다. 이건 몇 번 했고, 저건 절반쯤 했고, 아예 손 안 댄 것도 있다. 목록을 넘기다 보니 마지막에 파주 출판단지에서 북캉스 체험하기가 있다. 이 항목에선 슬며시 웃음이 났다. 참여 중인 생각학교 여름 컨퍼런스가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당일치기 일정이었지만 나는 지혜의 숲에서 따로 하루를 더 묵으며 책이 뿜어내는 지향(紙香)을 맘껏 쐬었다. 그 행사 아니었으면 북캉스도 틀림없이 미뤘을 게 뻔하다. 습관을 형성하기 위한 항목은 하나를 빼고 대부분 미완성이라 결국 2020년 새해 결심으로 옮길 판이다. ‘작심삼일’로 씁쓸하게 마무리한 수많은 목록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백발의 미국 안무가 트와일라 사프(Twyla Tharp)는 새벽 5시 30분이면 침대에서 일어나 바로 택시를 불러 헬스장으로 간다. 눈뜨자마자 택시를 타는 행동 사이에 불필요한 동작은 없다. 이 작은 습관은 나이 70이 넘기까지 현역 무용가로 활동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이 일화는 리추얼(ritual) 즉 의식(儀式)이 단단한 습관을 구축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사례로 종종 인용한다. 그녀는 기상과 운동 사이에 ‘택시 타기’라는 의식을 연결 고리로 넣었다.내가 올 한 해 습관 형성에 성공한 그 하나는 새벽 4시 기상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새벽 시간을 선택했다. 알람을 끄고 다시 곯아떨어지거나 겨우 일어나 졸다가 우왕좌왕 출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포기하고 다시 시도하기를 무수히 반복하며 수면의 질만 나빠지던 차에 나만의 리추얼을 찾았다. ‘샤워하기’였다. 침대에서 알람을 끄고 일어나서 곧장 욕실로 간다. 잡생각은 금물이다. 10분 가량 샤워를 마치면 책상에 앉아 조는 일 없이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기상과 독서 사이에 샤워라는 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새해 결심은 대부분 이렇게 작은 고리가 없어 습관으로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유레카!2020년 하얀 쥐의 해를 바라보면서 내가 도달하고 싶은 곳의 모습을 리스트로 정리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는 무엇을 연결 고리 삼을지도 생각한다. 이루지 못한 것들, 하다가 만 것들을 다시 손질해서 내년엔 쥐처럼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 있길 기원하며 새 다이어리에 조심스럽게 옮겨 적는다. 연초, 가슴을 뛰게 했던 수많은 계획이 지금 초라하게 구겨져 있다면 실행을 어렵게 했던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분명 둘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자! 겁내지 말고 새해 결심을 작성해 보자.

2019-12-29

옥상옥 권력기관, 공수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공수처는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공소유지권을 공수처에 넘겨 검찰의 정치권력화를 막고, 독립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취지다.공수처가 설립 취지대로만 운영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무슨 이견이 있으랴. 보수야당의 반대는 더할 나위없이 거세다. 야당으로선 검찰로도 충분히 공직사회 기강을 잡을 수 있는 데, 새로 공수처를 세우는 것은 옥상옥이자 야당정치인을 탄압하고, 영구집권을 위한 방편이 아니냐며 반대해왔다.더구나 지금껏 공수처 설치를 묵인하는 듯 했던 검찰이 공개적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듯 하다. 검찰은 여야‘4+1’협의체가 합의한 공수처 설치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당초 법안에 없던 독소조항이 협의과정에서 슬며시 추가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조항은‘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수사처에 통보하여야 한다’는 제24조 제2항 규정이다.설령 공수처의 필요성을 백번 인정한다해도 압수수색 전 단계인 수사착수부터 검경이 공수처에 사전보고하도록 규정한 것은 사실 지나친 처사다. 공수처가 검경으로부터 입맛에 맞는 사건을 이첩해 과잉수사를 하거나, 반대로 사건을 가로채 뭉개거나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통상 검찰은 수사착수 단계에서는 법무부나 청와대에도 사전보고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에 사건의 수사착수 통보 의무화 규정은 수사검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에 근거가 없는 공수처가 헌법기관인 검찰에 대해 상위기관으로서 지휘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위헌성이 짙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더 큰 문제는 공수처와 검찰간 갈등이 수사를 통해 표면화할 경우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검찰이 공수처 검사를 직권남용 등 혐의로, 반대로 공수처가 해당검사를 비리혐의로 수사하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나아가 공수처법이 현실이 되면 현재 검찰에서 진행하고 있는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등 정권을 겨냥한 수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수사와 재판 경력 없이 ‘조사업무 실무’ 5년 이상 경력으로 가능한 공수처 수사관 자격조항도 의심스럽다는 반응이다. 이는 세월호특조위 등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변호사들을 합류시키기 위한 규정이라는 비판이 많다.야당이 검찰을 권력의 주구로 만들기 위헤 공수처를 만들려고 한다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야당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듯한 독소조항을 슬쩍 끼워넣은 여당의 처사는 한마디로 안하무인격이다. 여당은 이합집산을 통해 국회운영을 독재적으로 끌고가선 안된다. 공수처법을 두고 벌어진, 민심을 두려워않는 여당의 행태는 국민적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2019-12-26

시민의 날

도시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그 도시마다 가진 역사성과 상징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를 기념하는 날이 바로 시민의 날이다. 시민의 날은 그 도시민이 자랑하는 역사며 문화며 자긍심이다. 그래서 시민의 날 제정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서울시는 조선이 건국되고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날인 10월 28일을 시민의 날로 정했다. 1394년(태조 3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지 600년이 되던 해인 1994년에 제정했다. 서울시로서는 한 나라의 수도로 정해져 600년을 이어 왔으니 이날만큼은 감개무량한 날이다.부산시는 이순신 장관이 왜군의 대전단을 대파한 부산포해전 승전일인 10월 5일을 시민의 날로 정했다. 부산시민은 지금도 임진왜란 항전과 6·25 당시 임시수도를 지킨 도시의 자긍심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광주시는 직할시 승격에 맞춰 시민의 날을 운영하다 5·18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바꾼다. 5·18 당시 시민이 힘을 모아 계엄군을 철수시키고 자율적 자치를 회복한 5월 21일을 시민의 날로 정했다.대구시가 시민의 날을 내년부터 국채보상 기념일이자 대구시민 주간의 첫날인 2월 21일로 바꾼다고 한다. 대구시는 그동안 직할시로 승격된 날로부터 100일째 되는 날을 시민의 날로 정해 왔다. 그러나 직할시 승격이라는 단순 방식보다는 대구의 상징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의미 있는 날로 정하자는 여론에 따라 바꾸기로 한 것이다. 대구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또 4·19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된 2·28 민주화 운동도 일어난 곳이다. 이제 새롭게 시작할 대구 시민의 날을 계기로 대구시민의 애국·애향정신도 더 빛을 발하도록 노력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26

전철 속 휴대폰 풍경

후배가 2년 뒤로 하나 있어 어제는 베트남 가기 전에 한번 만나기로 했다. 요즘 베트남 특수라고 거기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대학생 시절 이후 그와 나는 오래 못 만났다. 말수 적기는 옛날 그대로, 그때는 ‘노선’이 달라 같이 얘기하기도 힘들었건만 지금은 옛날 정이 새로 돋는 듯하다. 한번은 일 삼아 나를 만나러 학교에 오기도 했다.ㅡ학교 올라가느라 마을버스 탔는데 왜 그렇게 조용한지 정나미가 떨어지드만요.정 많은 사람은 버스도 시골 할머니들 왁자지껄버스가 맘에 드는 격이다. 둘러보니 모두들 핸드폰에 코를 박고들 있었다 한다.ㅡ어디 마을버스뿐? 전철 안에서도 다들 그렇지.후배한테는 이 휴대폰 ‘열정’이 차가운 인정세태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ㅡ그렇게 사회성이 없어서야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후배는 아직도 먼 후배들의 차가운 인정세태가 못 미더운 듯하다. 80년대에 대학 다닌 사람들에게는 사회성 콤플렉스가 있다.우리 사이에는 막걸리가 있어 견해 차이는 필요없다. 나는 속으로 이 휴대폰 몰입 풍경을 생각한다.혹시 그건 사적인 삶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 보려는 안간힘 같은 것은 아닐까.요즘 세상은 ‘자기만의 방’이 없다. 집은 아파트, 모든 문이 거실을 향해 ‘열려 있다’. 직장에 가면 파티션만 쳐졌을 뿐 숨소리조차 골라야 할 ‘사회적’ 공간이다. 버스도, 전철도 모두 타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자기만의 공간’은 없는 세상이다.ㅡ베트남은 인구가 얼마나 되나? 한 8천만 되나?ㅡ근 1억이죠. 한국어 배우려는 사람은 3백만쯤 되고. 앞으로 1천만은 되잖을까요?나는 후배의 ‘장밋빛’ 전망을 들으며 한국에서는 나날이 사람 숫자가 줄어들 것을 생각한다.전철 안은 출퇴근 시간이면 발 디딜 틈도 없다. 한낮에 전철을 타면 마음대로 발을 뻗을 수 있어 좋건만.비엔나에 갔더니 그곳 사람들은 서 있는 사람들 잔뜩 있어도 혼자 두 자리씩 차지하고 다리를 쭉 뻗고들 앉는다.배려심들 없는 건가? 아니, 앉은 김에 어디 맘껏 앉으라고, 서 있는 사람들이 앉은 사람들 배려해 주는 중이다.서울에서는 어림도 없다. 공간의 민주주의가 어찌나 드센지 조금이라도‘일인분’을 넘어서면 가차없다. 그러니 모두들 자기한테 몰두하고들 싶다. 이어폰 끼고 화면만 보고 있으면 일인분 세상을 충만히 즐기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2-26

송구영신(送舊迎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태엽을 감는 벽시계가 하나 있다. 누가 버리는 걸 가져와서 내 방에 걸어놓은 것이다.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멈출 때마다 태엽을 감아주면 다시 살아나서 잘 돌아가곤 한다. 시계가 빨리 가면 나사를 풀어 추를 좀 늦추어 주고 늦으면 반대로 추 밑의 나사를 좀 죄어주면 빨리 간다.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인데 적어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고장이 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가서 좋다.시계추가 좌우로 흔들리면서 똑딱똑딱 소리를 내는 데 평소에는 거의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다른 소음이 없는 고요한 시간에도 일부러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월도 그렇게 의식을 못하다가 연말이 되어서야 한 해가 언제 다 지나가버렸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세월 가는 줄 모르게 바쁜 사람들도 가끔씩은 세월의 흐름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연말이면 송구영신이란 말을 많이 한다. 묵은 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으라는 말이니 분명 덕담이 될 것이다. 일부러 보내고 맞지 않아도 저절로 가고 오는 것이 세월일진대 굳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지난 것에는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빈 마음으로 새 날을 맞으라는 뜻일 것이다. 말은 쉽고 지당하지만 사실 이것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세상의 온갖 불화와 분쟁의 대다수가 바로 구습과 편견과 고정관념 따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식의 꽉 막힌 옹고집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극이 벌어지는가.새것을 맞는다는 것은 새로운 문물이나 유행을 쫓는다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 성서에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세월이 흐른다고 자연현상의 원리가 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리 고목이라도 살아있는 한 봄이면 새 잎을 내듯이 산다는 건 시시각각 송구영신 하는 것이다. 그런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 바로 건강한 삶일 것이다. 자연은 저절로 그러한데 사람들은 탐진치(貪嗔痴)에 찌들고 막혀서 그게 잘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새것을 맞으려면 먼저 묵은 것을 보내야 한다. 재물이든 권세든 명예든 이념이든 기왕의 것을 다 버릴 수는 없을지라도 집착은 말아야 한다. 놓아야 할 것을 놓지 않고 보내야 할 것을 보내지 못해 아득바득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는 자에겐 미래가 없고 이미 가진 것에 집착을 하면 새로움이 없다. 새롭지 않은 것에는 생명이 없으니, 송구영신을 잘 해야 하는 이유다.해가 다 가도록 꽉 막힌 정국은 뚫릴 줄을 모른다. 이 정권이 출발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적어도 막히고 닫히고 고착된 정권은 아니겠지,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지금까지의 어느 정권보다도 지독한 편견과 아집과 과거에 집착하는 고집불통의 행태를 드러내었다. 눈과 귀를 틀어막은 것도 모자라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말 그대로 전대미문이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참으로 송구영신이 절실한 시국이다.

2019-12-26

관점을 바꾸는 일 (1)

뉴욕의 중심가에 시각 장애인이 처량한 모습으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계단에 주저앉아 행인들이 적선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가 종이에 써 들고 있는 문구입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I’m blind please help!)”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는 한 여성이 물끄러미 이 광경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바삐 계단을 오르내릴 뿐, 이 시각 장애인에게 동전 한 닢 던져 주지를 않습니다. 한참 지켜보던 그녀는 시각 장애인에게 다가갑니다. 한 푼 적선을 요청하는 낡은 하드보드지를 뒤집어 무어라 끼적입니다. 새로운 문구를 완성한 여인은 깡통에 지폐 한 장을 넣어 주고는 총총 떠나지요.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무심코 맹인 앞을 지나치던 행인들이 하나씩 둘씩 멈추어 섭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 깡통에 동전을 넣기도 하고 지폐를 두고 가기도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깡통은 사랑의 손길로 가득해지지요. 대체 그 여인은 어떤 마법을 부렸던 것일까요?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날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 광경을 볼 수 없답니다. (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보드에 쓴 단어가 4개에서 8개로 늘어났고 알파벳 철자가 몇 개 바뀌었을 뿐입니다. 도움을 호소하는 말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지 행인들이 시각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살짝 바꿔주었을 뿐이지요.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어냅니다.언어는 이처럼 강력한 것이지요. 언어 배후에 있는 생각, 즉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 삶의 질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관점을 바꾸는 일. 틀에 박힌 낡은 고정관념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으로 신선하게 상황과 사건과 사물을 바라보는 힘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26

엉터리 여론조사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젊은이의 거리 홍익대 앞에서 여론조사를 한다고 하자.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느냐고 묻고 다수가 진바지를 좋아한다고 하면 우리 국민들은 진바지를 좋아한다고 여론조사 결론을 내리면 될까? 조사대상 표본의 오류이다. 65세 시니어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증가한다는 보도를 종종 접한다. 시니어의 절대 숫자가 늘고 있다면 당연히 시니어의 교통사고가 느는건 인구 고령화 시대에 당연한 것 아닌가? 한걸음 나아가 전체 교통사고에 시니어 운전자의 비율이 매년 높아진다고 대서특필하는 언론도 있다. 인구 중 65세 시니어 비율이 늘고 있고 그 늘어가는 비율과 시니어 운전자의 비율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분석의 오류가 있다.질문 방식도 문제가 있다. 최근 한 기관의 여론조사는 공수처 찬성이 반대보다 더 많다라고 발표했다. ‘고위 공직자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 설치 법안’의 찬반을 물은 결과다. ‘고위 공직자 범죄’를 수사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사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공수처를 만드는 건 권력 강화책에 불과하다는 야당의 반론이 질문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조사방식의 오류이다.표본의 오류, 분석의 오류, 조사방식의 오류가 ‘엉터리 여론조사’를 이끌고 있다. 정치적 이해집단들은 아전인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여 자기네가 우세하다고 여론을 오도한다.특히 정치적인 여론조사는 샘플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여 엉터리 여론 조사를 부추긴다. 가령 1만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자. 그 중 1천명과 통화가 되었고 100명이 답을 했다고 하자. 그래서 51명이 여당의 후보나 여당을 지지하고 49명이 야당의 후보나 야당을 지지했다면 여당후보와 여당이 더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인가? 오차 범위라는 부칙을 단다고 해도 여전히 여론을 오도할 개연성이 충분하다.위의 전화 여론조사가 신빙성을 가지려면 다음 두가지의 통계분석이 따라야 한다. 첫째 전화를 잘 받는 사람과 잘 안받는 사람의 성향분석, 둘째 전화응답을 거부하는 사람과 거부하지 않는 사람의 성향분석이 필요한 것이다.완전 무작위라는 것이 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모의분석 예측에서 가장 중요한 가정이다. 위의 예에서 전화를 안받는 사람들과 응답을 거부한 사람들의 집단이 완전무작위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여론조사의 결과는 신뢰를 갖는다. 그러나 무작위가 아니라면 여론조사는 오도되는 것이다. 더구나 정치적인 조사에는 ‘역선택’논란도 있다. 야당 후보 중 누가 제일 좋은가라고 물으면 여당 지지자들은 야당후보를 약화시키기 가장 약한 후보를 지지 한다고 역선택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오류로 인한 엉터리 여론조사는 이제 손을 볼 때가 된 것 같다.여론조사는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하나의 정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종 오류로 점철된 여론 조사가 횡행한다면 그것도 공정성을 중요시하는 민주사회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제 엉터리 여론조사는 끝을 내자.

2019-12-26

2020년도의 (학)부모는?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끝은 때로는 뭔가를 강요한다. 그 강도는 끝으로 갈수록 더 세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지 않고는 안 될 불가항력의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끝을 얼마두지 않은 12월, 그것도 2010년대의 마지막 12월이 만든 절대 강요가 있다.그것은 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관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말이 있을까? 사람들은 관계를 위해 태어났고, 또 평생 관계를 맺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살다가, 관계 속에서 죽는다.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안타까운 것은 관계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그 지식을 삶의 지혜로 이끌어낼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뉴스다. 뉴스는 관계에 실패한 사람들의 백과사전이다.2019년도의 뉴스를 책으로 엮는다면 그 규모는 역대 최고일 것이다. 정치, 경제, 교육 등 어느 하나 희망적인 것이 없다.국가 혼란의 중심에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국민과의 관계를 저버리고 당리당락과 사리사욕에 빠졌다는 것이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에게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국민을 농락하던 그들이 파렴치하게 또 표를 달라고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뽑아야 한다.그런데 정치인이야 다시 뽑으면 되지만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 그 이상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이 교육계이다. 물론 그 이유도 관계 실패이다. 교육계의 관계 선(線)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복잡하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학부모와 학부모, (학)부모와 학생, 학교와 지역, 학교와 시대 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계 선으로 이루진 것이 교육이다.그런데 우리 교육계에서는 그 선들이 다 엉켜버렸다. 어떤 선은 복구가 불가능하게 끊겨버렸다. 그 이유는 불신(不信) 때문이다.지금과 같은 교육계의 모습으로는 우리는 그 어떤 희망도 이야기할 수 없다. 희망은커녕 조만간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절망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그 방법을 필자는 관계에서 찾았다. 기초가 허술한 모래성은 곧 무너진다. 우리 교육계가 무너진 이유는 불신으로 교육 요소들 간의 관계 선이 끊어졌거나 엉켰기 때문이다.그래서 필자는 관계의 가장 기본인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필자는 어떤 부모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2020년에는 덜 미안한 부모가 되기 위해, 또 교육 불신의 중심축이 된 끊겨버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선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글을 등대처럼 밝힌다.“부모에게는 세 가지 겸손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겸손,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겸손이지요. (중략) 부모가 겸손할 때 아이는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서천석, 『하루 십 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2019-12-25

2019 기해년을 보내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어허! 하는 소리가 내면에서 울려 퍼진다. 한 해가 잠깐이었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게 되는 연말이다. 황금돼지띠라 해서 요란스레 시작된 기해년이 시나브로 저물어가는 시점.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커다란 바람과 꿈을 가지고 맞이한 대망의 2019년이 작별을 고하고 있다. 자기 나이만큼의 속도로 세월을 체감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겠다.1월 달력부터 돌아보니 신년벽두부터 분망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부친기일과 중고차 매매, 근대문화동아리와 설날일정까지 달력에 빼곡하다.그렇게 문을 연 기해년 1년을 광주에서 보내고 어느덧 대구로 귀환할 날짜가 임박해 있다. 조금은 낯설고 설레던 광주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익히느라 발품 팔았던 기억이 훈훈하다. 5월 17일에는 망월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구 전남도청과 금남로를 누비고 다녔다.돌이켜보면 지난 5월 3일 오후 5시 무렵 시간대가 기억에 삼삼하다. 전남대 인문대학 1호관에서 ‘김남주 기념홀’ 개관식이 있었다.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그날, 시인의 짧았지만 강렬한 삶의 자취를 돌아보았다. 한쪽 손에 담배를 든 채 환하게 웃는 흑백사진 속의 김남주 시인. 그날 모여든 사람들과 주고받은 시인을 향한 추모의 마음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시인과 문사(文士)를 추모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나라와 민족과 역사를 성찰하고 미래를 기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정주를 별로 내켜하지 않는 까닭은 그가 지닌 얄팍한 자존심과 턱없이 부족한 역사의식 때문이다. “나는 일제가 4-500년은 갈 줄 알았어!” 어째서 친일시를 썼느냐는 질문에 그가 답한 내용이다.시 잘 쓰는 기술자이자 장인이기는 했으되, 되돌아선 예언자이자 사가(史家)의 구실을 담당하지 못한 자의 어눌한 변명이니.김남주는 1960년대 김수영과 70년대 김지하와 더불어 한국 현대시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행동하는 전사(戰士)이자 지식인으로 평생을 살았던 김남주. 그를 영면하게 하는 일은 소박한 가족주의와 부박한 정파주의, 날카로운 이해관계와 권력을 향한 추악한 열망을 내려놓는 일이다. 작은 범주의 나와 우리에서 벗어나 대동의 한마당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라 믿는다. ‘동이불화’와 ‘화이부동’의 선연한 차이를 새기는 일이 긴요한 시점이다. “남의 작은 허물을 마음에 두지 말고, 내가 가진 작은 지혜라도 나누는” 자세를 강조한 수운 최제우 선생의 가르침이 새삼스럽다. 21세기 각박한 현실주의의 수인(囚人)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은 타자의 작은 허물에는 눈이 밝지만, 자신의 큰 잘못에는 아주 관대하다. 다들 ‘내로남불’의 방책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기에 하루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철저한 자세를 가진다면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될지도 모르겠다.올해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막힌 셈이다. 그러니 잠시 쉬면서 돌아온 길 살피고, 2020년에 밟을 새로운 길, 생각해봄이 어떠한가?! 독자 여러분의 건승과 행운을 기원한다.

2019-12-25

한 여인이 책을 쓴 이야기 (3)

사장은 트렁크에 눈길 한번 던지고 메모와 전보를 번갈아 쳐다봤을 뿐, 이내 관심을 꺼버립니다.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차장이 다시 똑같은 내용이 담긴 새로운 한 통의 전보를 가져옵니다. 사장은 잠시 놀라지만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세 번째 정차 역에서 또 한통 전보를 받자, 그녀의 끈질김에 레이슨 사장은 트렁크 뚜껑을 엽니다. 트렁크 안에 가득한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보고 사장은 기가 막힙니다.무료했던 여행길에 생각 없이 집어든 원고의 첫 페이지를 읽는 사장의 눈동자가 점점 커집니다.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원고를 끝까지 다 읽습니다. 감동한 사장은 손님들이 모두 하차했음에도 원고를 붙든 채 내릴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사장은 즉시 출판을 지시했고 10년 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던 원고는 미국 전역을 뒤집어 놓습니다. 마가렛 미첼 여사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출간에 얽힌 이야기입니다.이 소설은 곧 27개 언어로 번역,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약 3천만 이상 팔렸습니다.지금도 해마다 25만 부가 계속 팔려나가고 있는 중이지요. 오늘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읽고 있는 그대 안에 잠든 ‘작가 본능’을 깨워 보는 것은 어떨까요?책을 읽고 감동하며 영감을 받는 일도 필요한 일이지만, 세상에는 그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지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그도 하고 그녀도 하는데 나라고 왜?)” 내 안에 이미 싹트고 영글어 가는 멋진 컨텐츠를 글로 꺼내 세상과 나누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부름이자 요청입니다.한 권의 책을 쓰는 일은 가장 멋진 배움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마가렛 미첼의 스토리가 그대와 나의 이야기로 흘러들기를 바라며 2020년을 준비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25

사라진 크리스마스캐럴

크리스마스 캐럴은 14세기 영국에서 종교 가곡의 한 형식으로 시작됐으나, 나중에는 성탄절을 축하하는 노래를 가리키게 됐다.연말 성탄절 분위기를 한껏 돋워온 크리스마스 캐럴이 길거리에서 사라진 이유는 저작권법상 막대한 음악 공연보상금을 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과거 한 백화점이 2년간 디지털 음원을 전송받아 스트리밍 방식으로 매장에 틀었다가 한국음반산업협회 등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끝에 백화점은 2억3500만원을 배상해야 했다. 이로 인해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캐럴송을 틀면 공연보상금 폭탄을 맞는다”는 소문이 확산했고, 이후 크리스마스에 길거리에서 캐럴을 들을 수 없게 됐다.현행 저작권법은 원칙적으로 청중에게 돈을 받지 않고 상업용 음반을 공공연하게 트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단서조항을 통해 커피 전문점이나 생맥주 전문점, 전문체육시설과 골프장, 무도학원 및 무도장, 스키장, 에어로빅장 등의 업종은 2018년 8월부터 매장에서 음악을 재생하려면 공연권료를 내야한다. 그렇다해도 영업허가면적이 50㎡(약 15평)를 넘지 않는 영세자영업자들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소규모 옷집, 밥집, 제과점, 생활용품점 등도 저작권법 시행령에 포함돼 있지 않기에 공연권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홍보 부족으로 소상공인들은 저작권료 폭탄을 걱정해 캐럴을 틀지 않고 있다.‘소음진동·관리법’에 따른 생활소음 규제로 가게 밖에 스피커를 설치할 수 없게 된 것이나, 지난 2014년부터 시행된 ‘문 열고 난방’하는 것을 금지한 에너지 규제 정책도 길거리 캐럴을 사라지게 만든 원인이다. 연말연시의 밤거리가 애꿎은 저작권료 오해로 허전하고 썰렁하기만 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