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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축복이다

손경호(수필가)
등록일 2011-04-12 21:29 게재일 2011-04-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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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가리켜 `망각(忘却)의 존재`라 한다. 좋은 기억력은 놀랍지만 망각하는 능력은 더욱 위대하다. 때로는 아는 일도 잊어버리는 게 좋다는 말도 있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면 그 좋던 기억도 잘 잊게 되므로 나쁜 것 같지만 좋은 경우도 있어 세월이 약이고 시간은 위대한 의사란 것이다. 시인 바이런이 말하기를 “지나간 기쁨은 지금의 고뇌를 깊게 하고 슬픔은 후회와 뒤엉킨다. 후회도 그리움도 다 같이 보람이 없다면 내가 바라는 것은-다만 망각뿐”이라고 했다. 1970년대 엘리트 여성의 지성인으로 불리웠던 성균관대 교수 전혜린씨는 그녀의 저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결별은 쉬운 일, 그러나 그 다음이 항상 문제다. 사고(思考)는 항상 사실적인 힘임을 믿고 있다. 끊겠다는 의지가 끊은 행위와 같은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한 미소나 한 눈동자, 한 목소리를 기억의 표면에서 말살해 버리는 것은 많은 극기와 시간의 풍화작용의 도움이 필요하다. 잊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아직 완전치 못하다. 관념이 긍정한 행위를 우리의 감성일 받아들이기에는 또 하나의 훈련이 필요한 것”이라 했다. `레테`강(江)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현실의 강이 아니라 신화 속의 강이다. 누구나 이 강을 건너게 되면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는 망각의 강, 슬프고 외롭고 억울하고 그래도 조금은 기쁘고 조금은 행복했던 인간 만사의 모든 사연들을 백지로 화하게 하는 강, 결국 레테강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철학자 쇼펜하워는 정신발작증이 심했다. 그는 자기의 저서를 읽다가 “이건 굉장한 영감으로 쓴 책이야! 대관절 이런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이건 참 천재인데….” 그는 자기 자신이 작자인 것을 잊어버리고 좋아서 날뛰었다는 것이다. 망각이 남은 에피소드다. 은혜와 원한도 다 때가 지나면 잊게 된다. 독일 격언에 “오래 망각했던 일만큼 새로운 것은 없다”했다.

/손경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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