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경제에디터의 관점
코스피가 9000선을 넘었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숫자다. 4000선을 돌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5000, 6000, 그리고 9000까지 치솟았다. 증시 주변에서는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투자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말 역시 “이번에는 다르다”였다.
최근 코스피 그래프를 보면서 자꾸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닛케이 지수다. 일본 닛케이는 플라자합의 이후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폭등했다. 1985년 말 1만3000선이던 지수는 1989년 말 3만8915엔까지 치솟았다. 불과 4년 만에 세 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당시 일본에도 상승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많았다. 일본 제조업은 세계 최강이었다. 엔화 강세는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일 것처럼 보였다. 기술혁신도 이어졌다. 부동산 가격은 영원히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퍼졌다.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1990년 버블은 붕괴했고 일본 경제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잃어버린 시대’를 겪었다.
물론 지금 한국이 곧바로 일본의 전철을 밟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본은 부동산과 주식이 동시에 폭등했고 은행권 대출이 버블을 증폭시켰다. 반면 한국 증시는 AI 반도체와 첨단기술주 중심의 상승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불안한 지점은 존재한다. 실물경제는 그만큼 뜨겁지 않다. 중동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글로벌 교역을 위협하고 있다. 수출 증가세는 둔화 조짐을 보이고 내수는 여전히 취약하다. 경제성장률 전망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그런데 주가는 경제가 마주한 현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주식시장은 미래를 선반영한다. 그러나 미래를 선반영하는 것과 미래를 과도하게 상상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특히 최근 시장에서는 기업의 현재 실적과 현금흐름보다 유동성과 기대감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듯한 모습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개인투자자의 신용거래 규모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늘어나는 것도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점점 낙관 일색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증권사들은 앞다퉈 목표주가와 지수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물론 기업 가치와 산업 전망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단기간에 급등할수록 투자전문가들에게는 낙관론보다 냉정한 검증이 더욱 요구된다.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주가가 어디까지 오를 수 있는지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내재가치와 장기 성장 가능성을 점검하는 데 있다. 시장의 열기가 뜨거울수록 목표가를 높이는 일보다 적정가치를 냉정하게 따지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개인투자자들의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부동산 시장으로 몰렸던 자금이 이제는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부동산 가격이 영원히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했던 것처럼 지금은 AI와 반도체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자산도 영원히 오르지는 않는다. 상승장에서는 위험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위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장이 방향을 바꾸는 순간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언제나 상승의 끝에서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이었다.
버블은 언제나 가장 합리적으로 보일 때 시작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블이 터진 뒤에야 그것이 버블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코스피 9000은 분명 한국 자본시장의 새로운 역사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체력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미래 기대가 만들어낸 착시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환호보다 냉정함이다. 시장은 언제나 상승보다 하락의 이유를 나중에 설명한다. 그래서 지금 코스피 9000은 축배의 숫자라기보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숫자일지 모른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