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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집중호우의 시대, 포항과 경북은 안전한가

등록일 2026-06-17 18:24 게재일 2026-06-1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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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6월 중순이지만 한낮의 햇볕은 이미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밤에도 기온은 쉽게 내려가지 않고, 올해도 역대급 폭염과 열대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상청 역시 국지성 집중호우와 태풍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폭염과 집중호우는 ‘이상기후’로 불렸다. 그러나 이제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산업, 생활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는 현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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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힌남노 태풍 때 포항 냉천이 범람하여 대송면 들판에 물난리가 난 모습. /포항환경연대 제공

특히 포항과 경북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지역이다. 철강과 제조업이 밀집한 산업도시, 농촌과 산림, 해안과 산업단지가 공존하는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과 태풍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 대표적인 기후 취약지역이기도 하다.
 

먼저 폭염을 보자. 폭염은 단순히 더운 날씨가 아니다. 사람의 건강과 노동, 에너지와 경제를 동시에 압박하는 사회적 재난이다. 고령층과 만성질환자,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은 온열질환 위험에 더욱 쉽게 노출된다. 건설 현장과 물류 현장, 농업과 제조업 노동자들은 뜨거운 환경 속에서 일해야 한다.
 

포항의 산업 현장은 특히 폭염에 취약하다. 철강과 제조업은 상당수 공정이 고온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 극한 폭염이 더해지면 노동자의 안전은 물론 생산성과 산업 경쟁력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경북의 사과와 복숭아, 포도 등 주요 과수는 기온 변화에 민감하다. 폭염과 가뭄이 반복되면서 수확량과 품질 저하가 나타나고 있으며, 사과 재배 적지는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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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를 형상화한 AI를 활용해서 만든 그림. /포항환경연대 제공

폭염은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냉방이 잘되는 공간에서 여름을 보내지만, 누군가는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에어컨 사용을 망설인다. 누군가는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누군가는 뜨거운 야외와 작업장에서 일해야 한다. 더위는 모두에게 오지만,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폭염은 에너지 문제와도 직결된다. 기온이 상승하면 냉방 수요가 급증하고 가정과 상가, 산업시설,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동시에 증가한다. 특정 시간대에 전력 사용이 집중되면 전력망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포항은 철강산업, 이차전지, 수소산업 등 대규모 전력 수요가 예상되는 산업 전환기에 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산업 경쟁력 역시 흔들릴 수 있다.
앞으로의 에너지 정책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전기를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분산형 전원과 에너지저장장치(ESS), 고효율 건축물과 수요관리 정책이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시 구조 역시 폭염을 키우고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낮 동안 열을 저장했다가 밤에 다시 방출한다. 녹지는 줄어들고 나무 그늘은 부족하다. 자동차와 냉방기기는 더 많은 열을 배출한다. 도시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다시 더 많은 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악순환이 도시를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위협은 폭염에만 그치지 않는다. 집중호우 역시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오랫동안 오지 않다가,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진다.
 

문제는 강수량 자체보다 집중도와 속도에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면 도시는 대응할 시간을 잃는다. 배수시설의 용량을 넘어서는 순간 도로와 저지대, 지하공간은 순식간에 침수되고, 교통은 마비되며 주택과 상가, 산업시설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포항 시민들은 이미 이러한 기후재난을 몸으로 경험했다. 태풍 힌남노는 포항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지하주차장 침수로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주택과 상가, 산업시설도 큰 피해를 입었다. 힌남노는 포항이 결코 기후재난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 사건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재난이 더 이상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백 년에 한 번 발생할 것이라 생각했던 재난이 앞으로는 훨씬 더 자주 나타날 수 있다. 과거의 경험과 통계만으로는 미래의 기후재난을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설마’라는 가정이 가장 위험하다. 도시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준비해야 한다. 배수시설과 하천, 저류시설은 극한호우를 견딜 수 있도록 재설계되어야 하고, 지하공간과 저지대, 노후 주거지역과 산업단지에 대한 재난 대응 체계도 새롭게 구축되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후 적응 도시’라는 새로운 관점이다. 도시는 더 이상 개발 효율과 경제 성장만을 기준으로 설계될 수 없다. 폭염과 집중호우, 태풍과 가뭄 속에서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회복력을 갖추어야 한다. 녹지와 바람길을 확보하고 물순환 체계를 복원해야 한다. 공공 냉방 공간과 에너지 복지 체계를 강화하고, 분산형 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 마이크로그리드와 같은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도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특히 포항이 추진하고 있는 수소환원제철과 저탄소철강특구, 수소·분산에너지 특구는 단순한 산업정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산업과 에너지, 도시를 함께 전환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발전 모델로 발전시켜야 한다. 폭염과 집중호우는 서로 다른 재난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포항과 경북은 과연 기후위기의 새로운 현실에 준비되어 있는가. 아직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부서만의 과제가 아니다. 도시계획과 에너지정책, 산업정책과 복지정책, 재난대응체계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새로운 국가 과제다.
 

기후위기는 미래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포항과 경북 시민의 안전 문제이며, 노동자의 생명 문제이고, 지역 산업의 지속가능성 문제다. 폭염과 집중호우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대책이 아니다. 도시와 에너지, 산업과 복지를 함께 바꾸는 종합적인 기후 적응 전략이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준비이며, 사후 복구가 아니라 사전 적응이다. 포항과 경북이 이 현실을 가장 먼저 인정하고 행동할 때, 기후위기 시대 대한민국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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