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규 한동대 명예교수, 15년 연구 결실 ‘입암28경과 창화시’ 펴내
경북 포항의 대표적인 명승지인 ‘입암(立巖)28경’을 노래한 한시 538수가 마침내 모두 번역돼 세상에 나왔다.
한동대학교 김윤규 명예교수(포항고전연구소 소장)는 지난 400년간 축적된 입암창화(立巖唱和) 한시를 집대성한 역저 ‘입암28경과 창화시’(학고방)를 출판했다고 밝혔다. 2011년 ‘입암시가산책’을 펴낸 이후 15년 동안 끈질기게 추가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해 온 결과다.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 위치한 입암28경은 조선 선조 시대의 대학자 여헌(旅軒) 장현광 선생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28곳의 명승에 이름을 붙인 것에서 시작됐다.
당시 여헌의 시에 화답해 노계 박인로, 창석 이준 등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이 시를 남겼으며, 그 전통은 1900년대까지 이어졌다. 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16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약 400년에 걸쳐 총 48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한 구역의 경물을 대상으로 이토록 집중적인 창작 활동이 이뤄진 것은 우리 한문학사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다.
이번 완역본에 수록된 작품들은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수준을 넘어, 깊이 있는 내면의 세계를 담아내고 있다.
먼저 이 시들은 여헌 장현광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자연 속에서 선한 의지를 기르고 학문적 성실함을 회복하고자 하는 자기 수양의 태도를 근간에 두고 있다. 이는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지러운 세상을 잠시 떠나 자연이라는 선경(仙境)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는 은둔의 미학으로 연결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 구성의 독특함이다. 입암의 28경을 하늘의 28수(宿) 별자리와 하나하나 대응시켰는데, ‘각항저방심미기’와 같은 별자리 이름을 시의 운자(韻字)로 직접 사용함으로써 자연과 우주가 하나로 맞물리는 장엄한 문학적 형상화를 이뤄냈다.
김 교수는 이번 출판을 통해 더 많은 시민이 직접 입암28경을 방문해 보기를 권했다. 그는 “현장에서 풍경과 번역된 시를 함께 읽으면 당시 선비들의 호연지기와 풍류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혼란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이 주는 사색에 참여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김 교수는 자료 수집 과정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거의 소실되거나 후손조차 모르는 작품이 많았다”며 아직 본문을 찾지 못한 일부 작품들을 위해 문중의 관심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포항이 남다른 서정성을 지닌 탁월한 문학의 고장이라는 점을 시민들이 깨닫고 자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윤규 교수는 경북대 문학박사 출신으로 현재 한동대 명예교수이자 포항고전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석주유고’, ‘제산일기’ 등 고전 문헌 국역과 ‘포항의 서원’ 등의 저술을 통해 지역 문화유산 발굴에 앞장서 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