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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베일 벗은 달성토성⋯“삼국시대 축성기술, 현장에서 드러나다”

황인무 기자
등록일 2026-04-20 18:13 게재일 2026-04-2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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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대구 중구 달성공원  ‘달성토성’ 남측 성벽의 정밀발굴 현장 공개설명회 모습

대구시 사적 ‘대구 달성(達城)’이 1500여년 만에 웅장한 실체를 드러냈다. 

20일 오후 대구 중구 달성공원  ‘달성토성’ 남측 성벽의 정밀발굴 현장 공개설명회가 열렸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5월부터 국가유산청의 지원을 받아(재)대동문화유산연구원이 진행해왔다. 이날 설명회에는 일반 시민과 취재진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최재현 대동문화유산연구원 자료관리부장은 “달성토성에서 진행된 첫 공식 정밀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기존에는 제한적인 수습 발굴만 이뤄졌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성벽 구조를 체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가장 중요한 성과는 달성토성의 축조 방식”이라며 “단순한 흙 성벽이 아니라 내부에 대량의 활석을 적심석으로 사용하고, 그 위에 석재를 쌓은 뒤 외부를 약 1m 두께의 흙으로 다시 덮는 복합 구조임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 “성벽 규모는 상당히 큰 편으로, 신라 왕궁이 있었던 경주 월성의 성벽과 유사한 수준”이라며 “이는 당시 대구 지역 세력이 단순한 지방 세력을 넘어 상당한 정치·군사적 위상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라고 덧붙였다.

달성토성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 261년(신라 첨해이사금 15년)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대구 지역을 다스리던 치소성으로 기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남측 성벽은 하부 너비 약 35m, 외벽 높이 약 17m, 내벽 높이 약 9m 규모로 대규모 방어 성곽의 위용을 보여준다. 축조 시기는 성벽 기저부에서 출토된 토기와 축성 기법 분석을 통해 5세기 중엽 전후로 추정됐다.

조사 결과, 달성토성은 흙과 돌을 함께 쌓는 토석혼축 방식과 석축 기법이 혼용된 구조로 확인됐다. 암반을 정지한 뒤 흙과 돌을 층층이 다지고, 외벽에는 납작한 돌을 경사지게 쌓은 후 점토층으로 마감하는 고도의 공법이 적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하중 분산과 구조 안정성을 고려한 정밀 토목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또 성벽에서는 약 2~2.5m 간격으로 구획이 나뉜 흔적이 확인돼, 작업 집단별로 역할을 분담해 축성한 ‘구획 축조 방식’이 적용된 것으로 분석됐다. 

문헌에 기록된 고려·조선시대 개·보수 흔적도 실제 유적으로 확인됐다. ‘경상도속찬지리지’와 ‘여지도서’에 기록된 석축 보강 내용과 일치하는 상부 석축이 발견되면서, 달성토성이 장기간 지역 중심 방어시설로 활용됐음을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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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공개된 대구 중구 달성공원  ‘달성토성’ 남측 성벽의 정밀발굴 현장 모습.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석사과정 김경중 씨는 “이번 현장 답사를 통해 달성 지역 성곽의 형성과 축조 과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며 “관계자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역사적 맥락을 명확히 파악했고, 향후 전공 연구와도 연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달성토성이 체계적으로 정비된다면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이 될 수 있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대구시 관계자는 “이번 발굴은 달성의 축성 시기와 구조를 고고학적으로 규명한 중요한 성과”라며 “대구의 역사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보존·활용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구시는 올해 북측 성벽 조사에 이어 내년 성 내부 발굴을 추진할 계획이다. 오는 11월에는 학술발표회를 열어 조사 성과를 종합 정리하고, 달성토성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정립할 방침이다.

글·사진/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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