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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AI의 현주소···진단 보조부터 신약 개발까지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4-05 16:37 게재일 2026-04-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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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지난 12주 동안 우리는 AI가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함께 들여다봤다. 기계가 패턴을 학습하는 원리부터, 트랜스포머 구조, 환각 현상, RAG, 파인튜닝, 멀티모달, 오픈소스 전쟁, 그리고 벤치마크의 진실까지. 열두 개의 퍼즐 조각이 완성됐다. 사실, 조금은 어렵고 재미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지식을 들고 현장으로 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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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닛 인사이트 유방암 발견 사진.

2분기의 주제는 ‘산업별 AI 혁신’이다. AI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생각한다는 강의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의료진과 함께 진료 행위에 참여하고, 공장의 생산 라인에 일하고, 법정 공방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 현장의 AI를 확인하러 갈 것이다. 그 첫 번째 현장은 의료다. AI가 가장 뜨겁게, 그리고 가장 조심스럽게 도입되고 있는 바로 그 공간이다.

의사 옆에 앉은 AI
병원에서 AI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은 영상의학과다. CT, MRI, X선 사진을 판독하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하루에 수백 장의 영상을 검토하는 전문의의 눈은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피로해진다. AI는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국내 의료 AI 기업 루닛(Lunit)이 개발한 유방촬영 판독 보조 소프트웨어 ‘루닛 인사이트 MMG’는 국내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약 60%에 해당하는 28곳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96~99%의 정확도로 유방암을 검출한다. 이 수치는 단순한 기술 자랑이 아니다. 유방암 검진 워크플로우에서 AI를 분류 도구로 도입했을 때 의료진 업무량을 약 69.5% 줄이면서도 진단 정확도는 약 30.5% 향상 시켰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의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더 중요한 판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잡무를 덜어주는 구조다.
영상 AI의 활약은 유방암에 그치지 않는다. 폐암 조기 발견을 위한 흉부 X선 판독 AI는 이미 다수 병원에서 운영 중이며, 안저 사진으로 당뇨병성 망막병증을 스크리닝하는 AI는 안과 전문의가 없는 1차 의료기관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
응급 상황에서 AI의 가치는 더욱 극명하다. 뇌졸중 AI 진단 보조 솔루션을 개발한 제이엘케이의 경우, 전문가들이 평균 45분이 넘게 걸린 판독을 AI는 평균 12분 4초 만에 처리했고, 예측 성률은 전문가 평균(50%)을 크게 앞선 72%를 기록했다. 뇌졸중은 1분 1초가 생사를 가르는 질환이다. 그 시간을 30분 이상 단축한다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생명이다.
서울대병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국내 의료법과 진료 가이드라인, 의료 언어 체계를 반영해 의료진이 직접 개발에 참여한 의료 특화 대형언어모델 ‘KMed.ai’는 2025년도 의사 국가고시 벤치마크 평가에서 평균 96.4점을 기록했다. 의사 국가고시를 거의 만점에 가깝게 통과하는 AI라니, 상상이 가는가. 물론 이 AI가 당장 진료실에 앉는 것은 아니다. 진료 기록 작성, 진단 보조, 의사결정 지원 같은 역할을 맡아 의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도구로서 단계적으로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손목 위의 심장 전문의도 등장했다. 메디컬에이아이와 삼성전자가 공동 개발한 기술은 스마트워치로 좌심실수축기능부전(심부전)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식약처 인허가를 획득했다. 10초짜리 심전도 측정만으로 심부전 가능성을 감지한다. 이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매일 손목이 심장을 감시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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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폴드의 단백질 구조 예측 이미지.


노벨상을 받은 AI, 신약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진단만이 아니다. AI는 신약 개발의 판도 자체를 바꾸고 있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평균 10~15년 간의 시간과 3조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 고난도 작업이었다. 수많은 후보 물질 중 실제 시판에 성공하는 것은 극소수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고 불러왔다.

이 구조를 뒤흔든 것이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다. 신약 개발의 핵심은 단백질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백질이 어떤 모양으로 접히느냐에 따라 어떤 약이 그것과 결합해 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문제는 이 구조를 실험으로 밝히는 데 수년이 걸렸다는 점이다. 25년 전에는 박사 과정 학생이 단 하나의 단백질 구조를 파악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알파폴드는 아미노산 서열을 입력하면 그 구조를 즉시 알려준다.
알파폴드2는 현재까지 2억 4천만 개 이상의 단백질에 대한 구조 예측을 완성했으며, 이는 인간이 생성한 약 1만 8천 개의 단백질 구조 데이터베이스를 수백만 배 넘어선 규모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수십억 년이 걸렸을 작업을 AI가 해낸 것이다. 이 공로로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와 존점퍼 연구원은 2024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는데, AI 연구자가 노벨 화학상을 받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국내에서도 신테카바이오와 파로스아이바이오 등 AI 신약 개발 전문 스타트업들이 이 흐름에 합류했다. 이들은 AI로 발굴한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후보 물질들을 임상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전통적인 신약 탐색 기간을 수년에서 수개월로 압축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들도 그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AI 기반 데이터 레이크 구축과 디지털 트윈 기반 자동화 생산 환경을 추진 중이며, SK바이오팜은 AI를 활용해 차세대 신약 파이프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AI 신약 개발이 더 이상 연구소 이야기가 아니라, 국내 대기업의 핵심 전략이 된 것이다.

조심해야 할 것들 - 기대와 현실 사이
그러나 의료 AI에는 냉정하게 직면해야 할 현실도 있다. 국내에서 400개가 넘는 AI 기반 의료기기가 시장에 출시됐지만, 성능이 아무리 높아도 의료진의 업무를 오히려 가중 시키면 상용화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이 좋아도 현장에 녹아들지 못하면 그것은 반쪽짜리 혁신인 것이다.
신약 개발에서도 마찬가지다. AI 신약 개발은 후보 물질 발굴과 임상 1·2상에서 성공률을 높였지만, 최종 관문인 3상의 유효성과 안전성 평가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시각이 여전히 크다. AI가 설계한 약이 실제 환자에게 효과적이고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긴 여정은 아직 진행 중이다. 
데이터 편향 문제도 짚어야 한다. 특정 인종이나 성별에 편중된 의료 데이터로 훈련된 AI는 다른 집단의 환자에게 부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여기에 민감한 환자 개인정보 보호와 사이버 보안 문제까지 더하면, 의료 AI가 넘어야 할 과제는 기술 너머의 영역까지 이어진다.
의료 AI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하나다. 현행 의료법상 AI는 의료 보조도구에 해당하며, 최종 진단 권한과 책임은 의사에게 있다. AI가 발견한 이상 징후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어야 한다. 속도와 정확도는 AI에게, 책임과 판단은 의사에게. 이 역할 분담이 흔들리는 순간, 의료 AI는 혁신이 아닌 위험이 된다.
지역 의료 현장을 생각해 보자. 전문의가 부족한 지방 중소 병원에서 AI 영상 판독 보조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서울 대형 병원 수준의 진단 보조가 가능해진다. 포항을 비롯한 경북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응급 의료 취약 지역 주민들의 골든 타임을 지켜줄 현실적 대안으로 AI 기반 원격 판독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의료 격차를 좁히는 데 AI가 기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시나리오인 것이다. 기술이 지방을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의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의사가 달라지는 것이다
AI 의사가 진료실에 앉는 날은 아직 멀었다. 그러나 AI가 영상을 먼저 보고, 위험 신호를 알리고, 신약 후보를 추려내는 작업을 하는 동안 의사는 더 깊은 곳에서 더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의사의 전문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문성이 향할 곳이 달라지고 있다. 노벨상을 받은 AI가 신약의 지도를 그리고, 손목 위의 센서가 심장을 지키고, 새벽 응급실에서 AI가 뇌졸중 여부를 12분 만에 판별하는 세상. 그 세상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펼쳐지고 있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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