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회원들과 세계기록유산인 직지(直指)를 만나러 갔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직지를 본다는 건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 것 이상으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직지를 전시한 청주고인쇄박물관 입구에는 두 개 대학교 사학과 학생들이 수업차 방문해 조교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보아하니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고인쇄박물관 관람이 필수코스인 것처럼 보였다.
고인쇄라면 내게는 목판인쇄본인 팔만대장경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평소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였다. 궁금해하면서 서둘러 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해설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이 지긋한 나태주 시인의 인상을 하고 계신 해설사의 손에는 직지의 복사본이 자랑스레 들려있다. 먼저 직지는 ‘책’이라는 걸 강조하며 눈빛마저 반짝였다. 직지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알려줄 태세다.
전시관이 시작되는 입구에서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직지를 복원해 놓았다. 펼쳐진 책은 우리에게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임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 흥덕사지에서 인쇄된 직지는 원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줄여서 직지심체요절이나 그냥 편하게 직지라고 부른다. 직지는 상권과 하권이 있는데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건 복사본이다. 순간 우리의 문화유산이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게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우리가 직지를 알게 된 건 민제 박병선 박사의 노력에 의해서다. 전시관 한쪽에는 박병선 박사의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와 사진, 정부에서 받은 훈장 등이 놓여있다. 박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동양서고에서 직지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노력 덕분에 직지는 2001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04년에는 직지상까지 제정하게 되었다. 외규장각 ‘의궤’도 마찬가지였다. ‘의궤’는 환수되어 영구대여 형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지만 직지는 그렇지 못해 아쉽다. 박병선 박사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우리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로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해설사는 직지의 내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고승들의 가르침과 참선에 대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으로 팔만대장경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설명을 들으니 그 내용에 대해서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역사를 학교 시험 문제로만 보고 무작정 외우기만 한 탓이 크다.
박물관에서는 직지의 이야기를 지나 목판인쇄와 금속활자에 대한 한국 인쇄문화발달 과정도 볼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한글의 보급으로 인쇄가 활발해 다양한 책들이 만들어졌고 일상생활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1800년대 말에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쏟아지는 정보를 감당하기 위해 근대인쇄술을 도입했다. 그때 ‘한성순보’라는 첫 신문을 탄생했고 민간에서도 인쇄소가 생겨났다.
늘 활자와 가까이하고 있지만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인쇄의 역사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관람을 마친 우리는 “아이들 어릴 때는 의무감으로 봤다. 오늘 다시 와서 보니 새롭다. 이런 체험학습이 살아있는 교육이다”라고 비슷한 소감을 말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3시간 무료 주차에 관람료도 무료다.
/허명화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