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MR(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초도호기 유치전이 본격화되면서 각 지자체의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지역이 여전히 ‘어디에 지을 것인가’라는 부지 중심 논리에 머물러 있는 사이, 경주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떻게 운영하고 확장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경주의 전략은 단순하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부지가 아니라 ‘생태계’다. 연구·실증·제조·운영·해체까지 원전의 전 생애주기를 한 지역에서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이미 갖췄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문무대왕과학연구소,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중수로해체기술원, 그리고 SMR 국가산단까지 이어지는 연결망은 단순한 집적을 넘어 ‘실행 가능한 플랫폼’에 가깝다.
속도 역시 현실적이다. 월성원전 부지와 기존 전력 계통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계획이 아니라 즉시 착수 가능한 조건에 가깝다.
정부가 제시한 2030년대 초 상용화 목표를 감안하면, 이 ‘시간의 문제’는 생각보다 결정적이다. 기술보다 일정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산업적 확장성이다. 경주는 SMR을 발전 설비에 가두지 않는다.
인근 포항 철강 산업과 연계해 전기와 열로 청정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수소환원제철로 이어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발전에서 산업으로, 다시 도시 구조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SMR을 ‘짓는 것’이 아니라 ‘쓰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원전 문제에서 빠질 수 없는 변수는 주민 수용성이다. 경주는 이 지점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오랜 원전 운영 경험과 방폐장 유치 과정에서 축적된 사회적 합의 경험은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곧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i-SMR 초도호기는 단순한 발전소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향후 수출과 산업 생태계, 에너지 전환 모델까지 좌우할 ‘첫 단추’다. 그만큼 입지 선정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땅의 넓이나 조건이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그리고 확장 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경주의 접근은 분명한 시사점을 던진다. 부지를 내세우는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그 이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i-SMR은 어디에 세우느냐보다, 어디서 제대로 작동하느냐의 문제일지 모른다. 경주는 지금 그 답을 ‘시스템’에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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