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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왜 즐겁냐고? 겨울별미가 기다리니까!

최병일 기자
등록일 2026-01-26 15:48 게재일 2026-01-2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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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는 차갑지만 식탁은 뜨겁다. 동해와 남해를 따라 내려가며 만나는 겨울 미식은 지역마다 표정이 다르다. 영덕은 붉고, 속초는 깊으며, 통영은 부드럽다. 세 도시를 잇는 겨울 미식여행은 결국 계절을 씹는 일이다. 겨울 미식여행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유행은 없고 제철만 있다. 겨울, 바다를 따라 먹는다는 건 결국 시간을 먹는 일이다. 음식을 즐기는 것은 추억을 남기는 것이다. 이 겨울 황홀한 맛을 따라 미식여행을 떠나보자. 

△ 속초 강원도 미식의 저력을 느낀다. 

다양한 맛이 공존하는 속초관광시장_한국관광공사 제공 

겨울의 속초는 조용하다. 여름의 파도 소리와 관광객의 발길이 빠져나간 자리엔, 대신 더 깊어진 바다의 맛이 남는다. 찬바람이 매서울수록 속초의 식탁은 뜨거워진다. 겨울은 이 도시가 가장 ‘맛있어지는’ 계절이다.

겨울 속초 미식의 출발점은 항구다. 대포항과 동명항 인근 식당에서 만나는 물곰탕(물메기탕)은 겨울 바다의 정직한 맛이다. 흐물거리는 생김새와 달리 국물은 담백하고 깊다. 무와 콩나물, 고추의 조합이 시린 몸을 단번에 풀어준다.

조금 더 강렬한 맛을 원한다면 도치알탕이 있다. 도치의 알에서 나오는 고소함과 얼큰한 국물은 겨울밤 속초에서 가장 확실한 온기다. 이 음식들은 ‘관광용’이 아니다. 바다에서 일하던 이들의 밥상이었고, 그래서 더 믿음직하다.

속초아바이순대 _한국관광공사 제공 
속초시장의 명물 속초닭강정_한국관광공사 제공 

속초 중앙시장은 겨울에 더 붐빈다. 찬 공기 속에서 뜨거운 냄새가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대표 메뉴는 단연 속초 아바이순대. 찹쌀 대신 채소와 선지를 채운 순대는 담백하고, 새콤한 명태회무침과 만나면 맛의 균형이 완성된다.

시장 골목에선 오징어순대, 씨앗호떡, 가자미식해가 겨울 미식의 리듬을 만든다. 포장마차 앞에 잠시 멈춰 서는 그 순간이, 속초 여행의 핵심 장면이다.

속초물회 푸짐한 회와 건더기가 일품이다_한국관광공사 제공 

겨울 속초는 바다만의 도시가 아니다. 설악산 자락으로 시선을 돌리면 황태해장국과 황태구이가 기다린다. 겨울 바람에 얼고 녹기를 반복한 황태는 이 계절이 아니면 완성되지 않는다. 국물은 맑고, 맛은 깊다.

산채비빔밥 역시 겨울에 제격이다. 냉장고가 아닌 산에서 온 나물들이 만들어내는 담백함은, 겨울 여행자에게 과하지 않은 포만감을 준다.

속초의 밤은 조용하지만 술상은 풍성하다. 동해안의 겨울 생선으로 만든 자연산 회, 그리고 지역 소주나 막걸리 한 잔이면 충분하다. 화려함보다 신선함, 설명보다 경험이 앞서는 자리다. 겨울 바다를 앞에 두고 마시는 술은 빠르게 취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기억에 남는다.

겨울 속초 미식여행의 매력은 ‘제철’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된다. 관광객을 위한 맛이 아니라, 계절을 버텨온 음식들. 바다가 차가울수록 국물은 뜨겁고, 시장은 살아 있다.

속초의 겨울은 말수가 적다. 대신 식탁 위에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 계절, 속초를 여행한다는 건 바다를 먹고, 시간을 씹는 일이다.

△ 영덕대게, 겨울 바다의 문장 

영덕대게로의 상징물 _한국관광공사 제공 

겨울이 오면 영덕은 말을 아낀다. 대신 식탁 위에 모든 것을 올려놓는다. 동해의 찬 물결을 버텨낸 재료들, 그리고 이 계절에만 허락되는 맛. 영덕의 겨울 미식은 ‘대게’로 시작해 ‘국물’로 완성된다.

영덕 겨울 미식의 중심에는 단연 영덕대게가 있다. 11월부터 5월까지, 그중에서도 살이 가장 차오르는 시기는 한겨울이다. 붉은 껍질을 열면 하얀 속살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과장 없는 단맛, 씹을수록 퍼지는 바다의 향이 영덕 대게의 정체성이다.

푸짐하게 차려낸 대게찜 세트 _한국관광공사 제공 

대게는 찌는 방식이 전부가 아니다.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마지막 장면까지가 하나의 코스다. 화려한 소스는 필요 없다. 소금 한 꼬집이면 충분하다.

게를 먹고 나면 반드시 국물이 따라온다. 대게탕은 남은 다리를 넣어 끓여내는 겨울의 해장이다. 무와 파, 고추만으로도 깊은 맛이 난다.

좀 더 일상적인 선택은 홍게라면이다. 항구 인근 포장마차나 작은 식당에서 만나는 이 메뉴는 영덕 겨울 밤의 온도다.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먼저 찾는 메뉴라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강구항과 축산항은 영덕 미식의 현장이다. 겨울 아침, 경매가 끝난 뒤 식당으로 바로 들어간 생선들이 식탁에 오른다. 물가자미조림, 도루묵찌개, 대구탕 같은 메뉴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계절을 정확히 담고 있다.

특히 도루묵은 겨울에만 허락되는 생선이다. 알이 꽉 찬 도루묵찌개 한 그릇이면, 바다의 시간을 그대로 삼키는 기분이 든다.

대게회_한국관광공사 제공 

영덕은 바다의 도시지만, 밥상은 소박하다. 항구 주변 백반집에서 만나는 가자미식해, 해초무침, 미역국 같은 반찬들이 영덕 식탁의 또 다른 얼굴이다. 꾸밈없는 맛,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구성. 겨울 여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다.

영덕의 밤은 조용하다. 대신 술자리는 길다. 대게를 먹고 난 뒤, 항구 근처에서 막걸리나 소주 한 잔을 곁들이는 풍경은 겨울 영덕의 일상이다. 바닷바람이 차가울수록 술은 천천히 비워진다.

영덕의 겨울 미식은 ‘제철’이라는 단어에 가장 충실하다. 대게가 있고, 국물이 있고, 항구가 있다. 화려한 미식 트렌드는 없지만, 대신 계절을 배반하지 않는 음식들이 있다.

겨울의 영덕은 묻지 않는다. 다만 한 상 차려낼 뿐이다. 그리고 그 상 위에는, 겨울 바다의 진짜 맛이 놓여 있다.

 △ 맛으로 기억되는 도시 통영 시락국에서 다찌까지 

통영의 활어회를 먹을 수 있는 강구안의 통영중앙전통시장 _한국관광공사 제공 

통영에서 아침 허기 를 채우려면 시락국(시래기국)이 제격이다. 이른 새벽 하얀 숨결을 달고 나타난 이들은 배보다 더 허기진 마음을 채우러 시락국을 먹는다

.통영의 새벽시장으로 알려진 서호시장 안에는 시락국을 파는 가게가 여러 곳 있다. 그중에서 흰살 생선으로 국물을 내는 가마솥시락국과 장어 국물로 맛을 낸 원조 시락국이 많이 알려졌다. 시락국집의 풍경도 음식만큼 이색적이다. 식탁 한가운데 고춧잎, 김치, 섞박지, 무채 등 다양한 반찬이 놓여 있다. 조금씩 음식을 덜어 먹으라는 취지다. 시락국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음식이다. 내 앞에 놓인 반찬을 낯모르는 이와 서로 나누는 정겨운 음식이다.

통영의 일품먹거리 충무김밥_한국관광공사 제공 

통영의 시장 음식 중에서 빼떼기죽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빼떼기죽은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서민들이 먹던 지역 음식이다. 겨울이면 고구마를 바짝 말려뒀다가 춘궁기가 오면 죽으로 끓여 먹었다. 말리는 과정에서 고구마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비틀어지는 모습을 보고 경상도 지역에서는 ‘빼떼기’라고 불렀다. 말린 고구마를 푹 삶은 다음 팥, 강낭콩, 찹쌀가루 등을 넣어 끓이고 설탕, 소금 간을 한다. 통영 사람들은 빼떼기죽을 추억을 환기시키는 맛이라고 부른다.

통영 음식 중 가장 이색적인 것은 우짜다. 우동과 짜장을 한 그릇에 넣어 내놓은 것. 중국식 음식과는 맛이 다르다. 짜장면 같기도 하고 우동 같기도 한 독특한 맛이다.

충무김밥도 빼놓을 수 없는 통영의 맛이다. 할매김밥 혹은 꼬치김밥이라고 불리는 충무김밥은 새벽에 바다 일 나가는 남편이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아지자 김밥을 싸서 남편 손에 쥐여줬지만 여름이면 금세 쉬어버려 못 먹게 됐다. 자른 김에 밥을 둘둘 말아 작게 만들고 반찬으로는 통영에서 흔히 잡히는 주꾸미와 홍합, 호래기, 꼴뚜기 등을 물기 없이 꼬들꼬들하게 무치고 삭힌 무김치를 같이 넣어 김밥을 만든 것이 충무김밥의 시초라고 한다. 통영항 주변에는 충무김밥집이 여러 곳 있다.

통영 음식의 진수가 모여 있는 다찌_한국관광공사 제공 

하지만 이 모든 음식이 통영의 다찌에는 미치지 못한다.

섬 전문가인 강제윤 시인은 “다찌는 통영 해산물 요리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한다. 통영의 맛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해산물 뷔페이기 때문이라는 것. 통영의 다찌집에서는 계절마다 제철 생선회와 해산물이 다 있다. 싱싱하고 감칠맛 나고 물기가 오른 생동감 넘치는 음식 재료가 풍성하게 올라온다. 경상도 음식이 맛없다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는 곳이 이곳이다. 다만 다찌집에서는 음식을 지정해서 먹을 자유는 없다. 주인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그날그날 시장에서 사온 식재료에 따라 메뉴가 바뀌기 때문에 다찌에 중독되면 약도 없다.

통영의 ‘다찌’는 ‘서서 마시는 일본 선술집을 뜻하는 다치노미(たちのみ)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통영 사람들은 모든 해산물이 ‘다 있지’라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통영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다양한 해산물 안주를 원하지만, 안주를 많이 먹지 않고 맛있는 안주를 고루고루 조금씩 먹는 미식가들이 모인 동네이기 때문이다. 전북 전주의 막걸리 골목처럼 다찌는 본래 술값만 받고 안주값은 안 받는 술집문화다. 원래 다찌집에서는 술을 한 병씩 시킬 때마다 안주가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형태로 운영했지만 타산이 맞지 않아 요즘은 1인당 3만원 정도를 받는다. 기본을 시키면 소주는 3병, 맥주는 5병 정도가 양동이에 담겨 나온다.

좋은 해산물로 거나하게 한잔했다면 다음날 해장 음식으로 물메기탕만한 것이 있을까. 물메기는 곰치다. 동해안에서는 물곰이라고도 부르는 해장 음식의 제왕이다. 시원하고 담백해 쓰린 속을 금세 아물게 하는 신묘한 물고기다. 물메기는 특히 겨울에 맛있다. 산란을 위해 살을 찌우기 때문이다. 무를 넣고 지리탕으로 맑게 끓이면 양파나 다른 채소를 넣지 않아도 달고 시원하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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