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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무사 백동수’를 통해 본 조선시대 무반의 실체

한상갑 기자
등록일 2026-01-17 09:56 게재일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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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劍)은 있으나 자리는 좁았다… 곳곳에 사회적 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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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조선시대를 떠올리면 흔히 ‘문과의 나라’를 떠올린다. 이는 단순한 인상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이었다. 학계의 통설을 종합하면 조선 전기부터 말기까지 무과 급제자는 약 1만7000명~1만9000명으로, 문과 급제자 약 1만5000명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았다.

숫자만 놓고 보면 무과는 결코 주변부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그들의 처우였다.

무과 급제자들의 진로는 대체로 정해져 있었다. 중앙에서는 훈련원·오위도총부·내금위(內禁衛) 등 군사 실무 부서, 지방에서는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첨사·만호(萬戶) 등 군직이 전부였다.

정승이나 판서 같은 최고위 관직으로의 진출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병조판서조차 문과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무과 급제가 곧 정치 엘리트의 길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봉록과 경제적 처우도 넉넉하지 않았다. 초임 품계는 낮았고, 전쟁이나 뚜렷한 군공(軍功)이 없으면 승진은 더뎠다. 특히 비교적 평화가 길었던 조선 중·후기에는 무인은 “할 일이 없는 존재”로 인식되기 일쑤였다.

무관 급제에는 시간과 경제력도 많이 소요되었다. 선산 출신 무관 급제자 노상추(盧尙樞, 1746-1829년)는 그의 일기(盧尙樞日記)에서 ‘24세에 무과에 뜻을 두었고 34세에 이르러서야 급제의 꿈을 이루었다’고 적고 있다.

유명 무인 가문으로는 △연안 이씨: 이순신 가문 (무인의 상징) △덕수 이씨: 이여송·이성계 계열 무반 △광주 안씨: 조선 후기 무과 다수 배출 △청주 한씨:(문·무 병존, 무반 인맥 강함) 등이 있다. 이들 가문 공통점은 전시(戰時)에 존재감이 커졌다가 평화기에는 상대적으로 가문의 세(勢)가 위축 된다는 점.

무과 급제자들은 법적으로 분명 양반이었다. 그러나 체감되는 사회적 위상은 문과 양반과 달랐다. 혼인(婚姻) 시장에서 불리했고, 가문을 대대로 유지할 힘도 약했다. 문과 진출에 실패한 무반 가문은 점차 향촌에서 군반(軍班)이나 하위 양반으로 인식되며 주변화되었다.

역관(譯官)·의관(醫官)처럼 중인층을 형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활에서 느끼는 위상은 중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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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이런 구조 속에서 경주(慶州)백씨는 대표적인 무반 가문으로 자리 잡았다. 문과 명문이 아닌, 대대로 무과와 군직을 중심으로 가문을 이어온 집안이다. 변방과 해안 방어, 전시의 실무에 강점을 가진 ‘군사 전문 가문’이었다. 이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이 바로 야뇌(野餒) 백동수(白東脩)다.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서 백동수의 무예를 보고 ‘인재(靭齋:백동수의 호)는 홀로 다른 세상에서 노니는 듯 했다’고 적고 있다.

백동수는 무과 급제자였고, 정치 엘리트는 아니었다. 그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신분이 아니라 시대적 만남이었다. 정조는 조선에서 드물게 문과 무의 균형을 고민한 군주였다. 친위 군사 장용영(壯勇營)을 강화하고, 실전 무예의 체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백동수는 ‘무예도보통지’ 편찬을 주도하며 조선 무예의 표준을 세운 인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 변화가 아니라 예외였다. 정조 사후 장용영(壯勇營)은 약화됐고, 무예와 무반에 대한 경시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백동수 개인은 빛났지만, 무과 전체의 위상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의 인생 후반도 초라했다. 말년엔 정조의 승하 이후 노론으로부터 벼슬에서 축출되어 유배당함으로써 기록도 많이 남아있지 않다.

검(劍)은 있으나 자리는 좁았다,

조선의 무과는 숫자로는 결코 소수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은 좁았다. 백동수는 무인의 신분 상승을 증명한 사례라기보다, 구조 속에서 잠시 허용된 예외였다. 그 예외가 오히려 조선 사회가 얼마나 단단한 문과(文科) 중심 구조였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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