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외국을 가릴 것 없다. 고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파렴치한이나, 무시로 뇌물을 받아온 권력자의 집에서 수 억, 많게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현금 뭉치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서민들은 아연실색한다.
‘대체 얼마나 돈이 많으면 저렇듯 엄청난 현금을 집에 두는 걸까?’라는 생각에서다. 고액권이나 달러 등 외화를 숨겨 놓은 곳도 기상천외하다. 방처럼 거대한 금고는 물론이고, 드물게는 천장 위나 김치냉장고 속에 5만원권 지폐나 100달러짜리 지폐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이른바 부정한 ‘검은 돈’이 아닌 당당한 자기 재산이라면 숨길 이유가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처럼 은행에 예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일부가 “금융기관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은 19세기에나 통할 변명처럼 들린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현금을 집이나 자신 소유의 공장 등 생활공간에 숨겨두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안방 장판 밑에 놓아둔 거액의 현금이 뜨거운 열에 손상돼 그걸 부랴부랴 은행에 가져가 교환했다는 소식, 신문지에 싸서 창고에 보관하던 지폐가 습기 탓에 원형을 잃어 낭패를 봤다는 뉴스가 최근 있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은 ‘2025년 손상 화폐 폐기 규모’를 공개했다. 발표에 의하면 손상돼 폐기된 금액은 모두 2조8404억원. 지폐 3억6401만장의 엄청난 양이다. 이걸 한 장, 한 장 이어 붙이면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다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을 만들려면 돈이 든다. 해마다 소요되는 지폐와 동전 제작비가 만만찮다. 그러니, 돈을 깨끗하게 사용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도 작은 애국이 아닐지.
/홍성식(기획특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