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의 황금빛 햇살을 뒤로하고 나는 안데스의 심장, 쿠스코(Cusco)로 향했다. 비행기로 불과 한 시간 반 거리였지만, 그 짧은 비행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고대 문명 속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통로와 같았다. 해발 3,400미터, 공기마저 얇아 숨쉬기조차 힘든 곳, 생명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고원 도시였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균형이 흔들렸지만, 잉카 제국의 옛 수도에서 풍겨 나오는 역사와 전설의 향기는 그 모든 불편을 잊게 할 만큼 강렬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돌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마다 수천 년 전 잉카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쿠스코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새벽녘, 드디어 마추픽추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버스로 두 시간, 기차로 두 시간, 길지만 설레는 대장정이었다. 희뿌연 안개가 골짜기를 가득 채운 새벽, 나는 고요히 버스 정류장으로 걸었다. 전날 유적지를 오르내린 피로와 완전히 가시지 않은 고산병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지만, 잃어버린 도시를 향한 열망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지만, 진정한 깨어남은 아직 오지 않았다.
버스는 고대 잉카의 요새 마을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에 도착했다. 그곳은 잉카 레일이 출발하는 환승지이자, 잉카의 건축 정신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역 앞에는 전통 복장을 한 현지인들이 나와 그들의 본래 언어인 케추아어로 노래를 부르며 여행객을 맞이했다. 그들의 맑은 눈빛에는 오랜 세월을 건너온 잉카의 영혼이 어려 있었다. 짧았지만 따뜻한 그 미소는 낯선 여행자에게 묘한 위안을 주었다.
잉카 레일은 안데스의 험준한 산맥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차창 밖 풍경은 마치 신이 붓을 들고 그린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깊은 계곡 아래로는 우루밤바 강이 은빛 실처럼 구불구불 흐르고, 절벽 위에는 구름이 피어올랐다가 이내 흩어졌다. 산과 강, 구름과 빛이 끊임없이 어우러지며 살아 숨 쉬는 듯한 풍경을 자아냈다. 그 장엄한 풍경은 곧 마주하게 될 마추픽추의 신비로움을 예고하는 서곡이었다.
기차가 오전 8시 무렵 마추픽추 마을에 도착했을 때, 거리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활기로 넘쳐났다. 맑은 강물이 흐르고, 거대한 산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안았다. 하지만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시청 앞 광장에서 예비 입장권을 받고 지정된 시간에 돌아와 정식 입장권을 사야 했다. 복잡한 절차 속에서도 마음은 오히려 설렘으로 차올랐다. 11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 800킬로미터를 완주하며 품었던 꿈, ‘언젠가 마추픽추에 서리라.’ 그 약속이 마침내 이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이른 새벽,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천천히 올랐다. 창문 밖으로 흰 구름이 손 닿을 듯 흘러가고, 계곡의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현지 가이드 Walter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 길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길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이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산등성이를 돌고 돌아 마침내 도착한 마추픽추는 처음엔 짙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수백 명의 여행자들이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안개가 천천히 걷히며 회색빛 화강암의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햇살에 반짝이는 성벽, 산허리를 따라 흐르는 정교한 수로, 계단식 밭의 초록빛이 눈부셨다. 세상은 잠시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경외감, 그것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감정이었다.
마추픽추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인간의 기술이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예술이자 생존의 철학이 담긴 도시였다. 잉카인들은 철제 도구도, 바퀴도, 시멘트도 없이 돌을 맞추어 쌓았다. 면도날조차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그 정밀함 덕분에 지진이 잦은 안데스에서도 수백 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은 건축이라기보다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도시를 빚어낸 것이었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계단식 밭 역시 잉카의 지혜를 말해준다. 그들은 자연을 정복하지 않았다. 태양의 각도, 바람의 방향, 물의 흐름을 계산하며 자연 안에서 조화를 이루었다. 그들의 삶은 문명이라기보다는 자연 속의 예술과 같았다.
나는 천천히 신전의 계단을 올랐다. 햇살은 돌기둥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저 멀리 우루밤바 강은 은빛으로 반짝였다.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는 구름은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은 왜 이토록 웅장한 자연 앞에서 숙연해지는가. 답은 하나였다. 경외심이었다. 자연은 우리보다 먼저 있었고, 우리가 떠난 뒤에도 남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추픽추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누가, 언제, 왜 이 도시를 세우고 버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그 미지의 여백이야말로 이곳의 진정한 매력일 것이다.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더 깊이 상상하고, 이해할 수 없기에 더 진심으로 성찰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인종도, 언어도, 국적도 아무 의미가 없다. 세상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하나의 인간으로 서 있을 뿐이다. 그 자체가 잉카 문명이 우리에게 전하는 조용한 메시지였다.
잉카인들의 사회는 아이유(Ayllu)라는 혈연 중심의 공동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사람의 땅이 아니라, 모두의 땅이었다. 농사를 지을 때는 함께 일했고, 수확한 곡식은 공동으로 나누었다. 누군가 병들면 이웃이 도왔고, 늙거나 혼자 사는 사람은 마을이 함께 보살폈다. 그들에게 삶이란 경쟁이 아니라 나눔이었다.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다’라는 믿음이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었다.
하산길에 뒤돌아보니 마추픽추는 다시 구름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엔 여전히 그 빛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삶의 완성은 소유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자연처럼 흐르고, 구름처럼 비워내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거대한 산은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구름처럼, 물처럼 살아라.”
/글·사진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