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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슈] 쿠팡 고객정보 털릴 때 알리·테무는 웃는다

한상갑 기자
등록일 2025-12-03 18:01 게재일 2025-12-0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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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알리익스프레스 코리아 셀러 포럼’에서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코리아 대표가 사업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쿠팡은 흔들리고,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은 조용히 웃는다. 한 시대의 유통 패권이 바뀔 때는 늘 작은 틈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그 틈이 가장 넓게 벌어지고 있다.

쿠팡 고객명부가 중국에 넘어갔다고 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데이터 유출을 넘어 한·중 경제에서 ‘유통과 물류’라는 전략적 축의 이동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이른바 지난날 조선 말기 청(淸)의 강요에 의해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에 빗댄 해석도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 청나라 상인에게 조선 내지(內地) 통상을 허용한 그 협정처럼, 이제는 디지털이라는 이름의 ‘데이터와 유통망’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현실을 보자. 최근 Temu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물류센터를 세운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기·인천 등 수도권 물류 허브 구축 움직임이다.

이 센터는 제품 저장은 물론, 배송 처리까지 감안해 설계된 대형 시설로, 한국 내 소비자들이 저렴한 중국 제품을 주문하면 하루 이틀 내에 받아볼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과거 조선이 “청상인의 내지 통상 허용”을 통해 시장에 경제적 침투를 허용했던 것처럼, 지금은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한국 소비자의 구매 패턴, 기호, 소비 데이터, 물류 흐름을 통째로 가져가려 하고 있다.

만약 쿠팡의 국내 고객 명부와 소비자 행동 데이터가 실제로 중국 측으로 넘어갔다면, 그 가치는 단순한 개인정보의 유출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국 유통 시장 전체의 설계도가 넘어 마케팅 전략과 물류 기획의 핵심 정보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 정보를 쥔 쪽은 가격 경쟁력에서부터 판촉 전략, 재고 배치, 물류 동선, 지역별 소비 패턴까지 면밀히 설계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가 중국 기업의 손에 들어간다는 건 단순한 시장 침투가 아니라, 한국 유통 체계의 전략적 재편이 될 수 있다. 과거의 통상 허용이 “누가 시장에 진입하느냐”를 다뤘다면, 지금은 “누가 데이터를 갖고 시장을 재설계하느냐”가 핵심이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한 새벽배송, 당일배송, 저가·다량 판매, 지역별 맞춤 마케팅, 모두 한국 소비자들이 익숙하게 여겨온 유통 패러다임을 중국 측 주도로 변화시킬 수 있다.

더욱이 최근 국내 패션 유통망의 일대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때 아시아 패션 유통의 주요 거점이었던 국내 물류센터가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이랜드 물류센터 화재 소식은, 단지 한 기업의 불행이 아니라 유통의 축이 재편될 수 있는 기회를 알리는 신호였다. 기존 유통망이 흔들릴 때, 중국 기업이 새롭게 채워 넣을 틈이 생긴 것이다.

1995년 고베 지진 이후 일본 항만과 환적(換積) 시스템이 붕괴되자, 아시아 물류의 축이 부산으로 이동했던 것처럼 한국 유통의 중심축이 중국에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알리바바, Temu 같은 중국 기반 플랫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글로벌 데이터와 유통망을 설계해왔다. 만약 이들이 한국 내 소비자 데이터와 물류 인프라를 장악한다면, 향후 가격 결정, 배송 속도, 소비자 취향 맞춤형 추천, 재고 관리, 물류 동선, 모든 것이 중국 측 주도로 재편될 수 있다.

물론, 데이터 유출이나 고객 정보 이전이 사실인지, 어떤 경로로 이뤄졌는지는 명확히 검증돼야 한다. 그러나 설혹 일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상징성은 충분하다. 단 한 번의 정보 유출과 물류센터 설립이, 한국 유통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위한 단초가 될 수 있다. 과거 조선이 외세에 통상 문을 열면서 시장 구조가 흔들렸던 것처럼, 지금은 데이터와 물류를 통째로 넘기며 유통의 지형이 뒤집히는 변곡점에 서 있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가격이 싼 중국산’이 유입되는 시대가 아니다. 중국 기업이 한국 소비자의 생활 패턴, 소비 취향, 유통 동선, 심지어 유통의 시간을 좌우하는 시대다. 만약 이 흐름을 그냥 흘려보낸다면, 우리는 유통의 주도권을 잃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번 사건은 단순한 데이터 유출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 유통 체계의 전략적 전환을 예고하는 경고다. 한국의 소비자와 유통 산업이 이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과거 조선이 내지 통상을 허용하면서 겪었던 시장 침탈의 역사가 반복될지도 모른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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