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성동서 17회 위령제···위령탑엔 학살당한 795위 영령의 이름이 유족들은 75년 지난 지금까지 억울하게 잃어버린 가족들 찾고 있는 중
최근 황성동 352-4번지 위령탑에선 위령제가 열렸다. 제17회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를 위한 경주지역 합동위령제였다. 위령탑엔 억울하게 학살당한 795위 영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같은 작은 숲을 두고 건너편에서는 축제 같은 마라톤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교통통제를 비롯해 도로가 불법주차 차량들로 식전 행사로 진행된 박소산 선생의 진혼무가 중반부에 들어섰을 무렵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을 포함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다. 후원인 경주시와 의회에서는 경주시장을 대신해 경주시청 김종대 국장이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했으며, 최병준 경북도의회 부의장, 그리고 의회 대표로 이경희 경주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이 참석했다. 유족들은 75년이 지난 지금까지 억울하게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진혼무가 끝나자 위령제가 올려졌다. 잠시 개일 듯하더니 날이 다시 흐려졌다. 흩날린 비에 위령비도 유족들의 발도 젖어 들었다.
김하종 경주유족회 회장은 내빈 소개와 인사말을 이어갔다. 김하종 회장은 아흔이 넘은 고령에도 국회특별법 개정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국회의사당에서 보내고 있다. 유족회에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는 진상규명, 명예회복, 배상 및 보상, 유해발굴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최일식 경주유족회 재무국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국회특별법추진위 사무국장인 조성규씨의 제2기 진실화해위 현황보고가 있었다. 그 중에는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적용배제가 포함되어 있다. 2기 진실화해위는 오는 11월 26일에 종료된다.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많은 미제사건들은 추후 3기 위원회의 몫으로 남겨졌다.
천년국악예술단 김소원씨의 추모곡을 끝으로 헌화가 이어졌다. 유족들은 헌화를 마친 후 뒤편으로 돌아가 가족의 이름을 찾았다. 검은 벽에 새겨진 이름을 찾아 손끝으로 빗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한동안 울음 섞인 그리움을 쏟아냈다. 행사가 끝난 후 위령제를 위해 마련된 책자를 받았다.
책자엔 희생자 명단을 시작으로 국회특별법 추진 및 활동일지가 날짜와 시간별로 담겨 있었다.
그 외 내용 중 책자 120페이지에는 둥글마을에서 있었던 참혹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1950년 8월 11일 아침 6시 즈음 내남지서 경찰 이홍렬과 이한우를 비롯한 민보단원 30명이 완전무장한 채 마을의 아홉 집에 들이닥쳤다.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포박해 끌고 갔다.
이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총살. 치매 노인은 물론 임산부, 젖먹이까지 예외 없이 50여 명이 피살당한 걸로 추정된다. 그날의 증인이 된 권상원씨의 사촌형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는데 친구집에 놀러갔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함께 죽임을 당했다. 그날 사망한 사람은 60세 이상 노인이 7명, 여성이 17명, 10살 이하 어린이가 17명이었다.
민보단에 협조하지 않았던 것이 이유로 추정되나 그들을 덮은 건 빨갱이란 누명이었다. 의병이자 애국지사 선조를 둔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억울하게 끝을 맞았다. 죽인 자는 묘가 있으나 억울하게 죽은 이들은 아직도 그 유골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말하던 정의는 어디에 있을까?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