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경북 영천 자천리 천연기념물 오리장숲
경북 영천시는 별의 고장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1.8m 반사 망원경과 태양 플레어 망원경 등 다수의 천체 관측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보현산천문대가 있다. 국내에서 발견한 소행성 13개 중 12개가 이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1.8m 반사 망원경의 이름은 도약이며, 1만 원권 지폐의 뒷면 도안에도 존재한다. 광활한 우주의 별들을 관측한다는 것은 마음 설레는 일이다. 대구와 포항 간 고속도로 영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청송과 보현산천문대로 가는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 보면 오리장 숲(五里長林)을 만나게 된다. 우주의 소행성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오리장 숲에서 신기한 연리목 노거수를 발견했다. 지난 청송군청에 근무할 때 대구를 오갈 때면 가끔 내려서 숲속의 연리근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를 만나 그 신비함을 체험하곤 했다.
아름드리 거목 울창한 ‘오리장 숲’… 수령 150∼300년 된 300여 그루 서식·천연기념물 제404호 지정
회화·느티나무 한 몸처럼 자라난 연리목, 사랑나무라 불리며 세 번 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아름드리 거목의 울창한 숲이다. 수령이 150년에서 300년, 줄기 둘레 3m, 키 10여m 이상의 노거수 300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도로와 하천을 따라 길게 조성된 숲은 왕버들, 말채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 굴참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오리장 숲은 1999년 4월 6일 천연기념물 제404호로 지정되어 나라에서 자연유산으로 보호 관리하고 있다. 예부터 마을 앞을 따라 오리(五里)에 걸쳐 뻗어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도로 확장과 개발로 본래의 숲이 많이 사라지고 군락지 몇 곳만 남았지만, 여전히 마을을 품에 안은 채 푸르름을 자랑하고 서 있다.
숲에 들어서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거대한 나무들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연리목(連理木)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이다. 다른 두 뿌리에서 돋아난 나무가 몸을 맞대고 한 생명을 이루듯 자라난 나무이다. 자천리 오리장 숲의 연리목은 나무 둘레만도 4m가 넘는다. 마치 회화나무가 느티나무를 양팔로 안은 모습이다. 예로부터 회화나무는 학자수(學者樹)라 하여 선비 나무라 하였다. 그리고 느티나무는 오지랖이 넓은 수형과 뭇 생명을 품는 여성목이라 했다. 그리고 보면 남자가 여자를 포근히 감싸 안은 형상의 모습이다. 주민들은 이를 보고 사랑 나무라 하여 나무 주위를 세 번 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귀하게 여기고 있다.
우리 인간 세상에서 사랑보다 더 큰 가치가 있을까. 사랑에 웃고 울며 목숨을 거는 인간 세상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연리목 앞에 서면, 이런 사랑에 대한 오래된 전설이 떠오른다. 옛날 중국에서는 하늘에는 비익조(比翼鳥)가 살고, 바다에는 비목어(比目魚)가 살고, 땅에는 연리지가 있다고 했다. 비익조는 암수가 각각 한쪽 날개와 한쪽 눈만 가지고 있어 서로가 합쳐져야만 날 수 있는 새이고, 비목어는 눈이 하나밖에 없어 좌우가 붙어야만 헤엄칠 수 있는 물고기다. 홀로는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함께해야만 완전해지는 생명체이다. 연리목 또한 그러하다.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로 뭉쳐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연리지는 원래 중국의 후한서 채옹 편에 나오는 말로써 효심의 상징으로 전해졌지만, 당나라 시인 백낙천의 장한가라는 시가 나온 후에는 사랑의 나무란 의미가 덧붙였다. 그의 대표작 장한가(長恨歌)는 중국 당나라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찬란하게 노래하면서도, 결국 파국으로 끝나는 역사적 비극을 노래했다. 궁의 온천에서 꽃처럼 피어난 사랑은 황제의 총애와 권세의 그늘 속에 더욱 농밀해졌으나, 그 뜨거운 사랑은 끝내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무겁고 치명적이었다. 권력과 사랑을 얻은 대가는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대가로 끝이 났다.
역사는 냉정했다. 안녹산의 반란, 즉 안사의 난이 일어나면서 당나라의 전성기는 무너졌다. 반란의 두목인 안녹산과 양귀비의 관계를 의심한 황제 호위병들은 피난길에 황제에게 양귀비의 목숨을 요구했다. 결국 황제의 피난길에서 양귀비는 군사들의 원망을 받아 마외역에서 목숨을 잃었다. 황제는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명령으로 사랑하는 양귀비의 죽음을 보게 되었다. 황제와 양귀비의 사랑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러나 시인 백낙천은 사랑을 오히려 죽음 너머에도 이어지는 영혼의 결합으로 승화하여 노래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 이 맹세는 천지가 무너져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영원을 증언한다. 그래서 장한가는 단순한 옛 황제와 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사랑의 가장 숭고하면서도 비극적인 진실을 보여주는 불멸의 서정시가 된 것이다.
오늘날 자천리 오리장 숲의 연리목은 그 시와 전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하다. 뿌리는 따로지만 줄기와 가지를 하나로 엮어 살아가는 나무는 인간의 삶과 사랑을 닮았다. 혼자서는 완전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가 서로를 의지하며 비로소 온전해지는 모습, 그것이 바로 인간의 진정한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아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하나로 연결되어 숭고함을 잇고 있다. 사랑이란 믿음이라는 세상에서 무성히 그리고 온전히 자라고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자천리 천연기념물 오리장 숲 연리목 앞에서 시인 백낙천의 장한가에서 그 의미를 찾아 되새겨본다.
별의 고장 영천, 보현산천문대에서 별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꿈, 오리장 숲에서 나무에 기대어 살아온 마을 사람들의 염원, 이곳을 찾아 연리목 앞에 선 나의 소망, 이 모두는 하나로 이어져 있는 듯하다. 별빛과 숲, 전설의 시가 한곳에 만나는 자천리 오리장 숲. 이곳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지를 말없이 가르쳐주는 역사책이다. 자연을 자세히 보고 명상하면 자연은 우리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스승과 같다. 연리목 아래서 바라본 하늘은 더없이 높고 깊고 푸르다. 언젠가 나 또한 이 땅에서 인연을 마무리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한 사랑이 연리목처럼 하나의 흔적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자천리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이 숲을 마을의 수호림으로 여겼다. 홍수와 바람을 막아내고, 제방을 지켜주며, 때로는 신령이 깃든 신목으로 모셔졌다.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사람들은 숲에서 제사를 올렸다. 숲이 푸르고 잎이 무성하면 그해 풍년이 들리라 믿었고, 나무의 기운이 약하면 흉년을 점쳤다. 숲의 생태는 곧 마을의 운명과 맞닿아 있었다. 근대화와 함께 제사의 전통은 끊어졌다. 그러다 2003년부터 마을 이장 협의회 주도로 다시 기원제가 부활했다. 노후화된 재단은 새로 정비되었고, 면민의 정성이 담긴 돌비석이 숲 한켠에 서 있다. 숲은 마을의 역사와 신앙, 삶의 기억을 간직한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백낙천(白樂天)의 장한가(長恨歌)는…
양귀비(楊貴妃)와 당나라 황제 현종(玄宗) 둘의 로맨스가 워낙 유명했으므로 시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것이 유명한 장한가이다. 생전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언약했다고 하는데,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이 당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장한가라는 장대한 서사시로 읊었다.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장한가의 끝 구절로 이렇게 노래했다. 현종은 안녹산의 난으로 꽃다운 나이에 비명에 간 양귀비를 잊지 못해 늘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우리의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선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선 연리지가 되자고 간곡히 언약한 말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하늘과 땅은 차라리 끝이 있을지라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님을 사모하는 이 마음의 한은 끝이 없으리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