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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혁수 희움 관장 “기록과 공간을 지켜야 진실이 산다”

장은희 기자
등록일 2025-08-16 18:00 게재일 202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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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혁수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장은 13일 희움에서 피해자 할머니 한 명 한 명을 설명하며 기록 보존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속보= 광복 80주년을 맞아 특집 기사와 관련해<본지 14일자 3면 보도> 서혁수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장은 “기록과 공간을 지켜야 진실이 산다”며 “정확한 기록과 전달이야말로 할머니들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라고 말했다.

서 관장이 위안부 피해자 증언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한 신문 기사였다. 문옥주 할머니를 알린 그 기사를 읽은 뒤 “할머니의 기억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전쟁과 인권 침해의 역사적 증거”라며 시민모임 활동을 시작했다.

문 할머니의 삶을 기록한 사람은 일본인 모리카와 씨였다.

서 관장은 “모리카와 씨는 대구 봉덕동에 있는 문 할머니의 집을 18번 찾아와 증언을 채록했고, 비행기를 타지 않고 매번 배와 기차로 대구를 찾았다”며 “이후 문 할머니가 언급한 미얀마 위안소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1년간 현지에 거주하며 자료를 수집했고, 그 결과 일본 단체가 만든 위안소 지도와 현장 사진이 담긴 책을 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책은 최근 미국 예일대 교수들의 제안으로 영어로 번역됐으며, 번역 과정에서 학자들이 직접 현장을 답사해 기록의 신뢰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시민모임의 활동은 대구 중구 곽병원 뒤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됐다. 서 관장과 활동가들은 피해자들과 식사를 나누고 증언을 기록했으며, 지금까지 모신 피해 생존자는 모두 28명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할머니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생활 공간과 유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 관장은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던 할머니들은 돌아가시면 2주 안에 집을 비워야 한다. 그 안에는 생활의 흔적, 역사적 증거가 있었지만 모두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네덜란드 ‘안네 프랑크 하우스’를 예로 들며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집을 그대로 보존해 교육의 장으로 만든 사례처럼, 우리도 할머니들의 생활공간과 유품을 남겨야 한다"며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여전히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또 이용수 할머니의 옛 집을 언급하며 “가구, 소품, 사진 하나하나가 당시의 삶을 증언하지만, 이런 공간을 보존하는 데 공공의 지원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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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보고 있다.

현재 서울을 제외한 국내 위안부 역사관은 극히 드물고, 대구의 희움이 지방에서는 유일하다. 이 공간은 2009년 별세한 김순악 할머니의 유언에서 비롯됐다. 평생 모은 1억 원 중 절반은 소년소녀 가장 지원에, 나머지 절반은 역사관 운영에 써 달라는 것이었다.

서 관장은 “그 돈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기억을 지켜 달라’는 마지막 당부였다”고 말했다.

최근 여러 단체들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 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가 계속되고 있다.

서 관장은 “이럴 때일수록 일본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명확한 안을 제시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국제사회 중심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관장은 피해자 규모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당시 함께 끌려갔던 동료의 절반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살아남은 이들도 오랫동안 침묵했다.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까지는 평균 50년이 걸렸으며, 그마저도 일부만을 증언했다.

그는 “우리가 가진 증언은 전체 사건의 아주 작은 조각"이라며 "그런데도 이 작은 기록조차 사라지면 역사적 진실은 더욱 흐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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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전시된 이용수 할머니 편지.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대구 이용수 할머니와 포항 박필근 할머니를 포함해 6명뿐이며, 평균 연령은 95세를 넘는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고 건강이 악화된 상태다.

서 관장은 “경남에는 피해자가 많았지만 시기를 놓쳐 역사관을 세우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며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뒤에야 기록 작업을 시작한다면 이미 늦다”고 기록 보존의 시급성을 거듭 강조했다.

글·사진/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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