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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첫 단추는 ‘같은 편 되기’

등록일 2025-07-21 19:19 게재일 2025-07-2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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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Ra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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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탑병원 신경외과 방우석 전문의(신경외과 센터장)

“통증의 사연을 들어주는 의사”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톨스토이의 대표작 ‘안나 카레니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실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명문장이다.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특히 척추 통증을 호소하는 다양한 환자들을 진료하는 필자에게 이 문장은 이렇게 들리기도 한다.

“건강한 사람은 서로 비슷하지만, 통증을 겪는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필자는 척추와 관련된 모든 통증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는 의사다. 하지만 통증의 해결이란 것이 고등학교 시절 밤을 새워가며 수학의 정석을 풀어내던 방식처럼 명확하고 일직선의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환자를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절실히 깨닫게 된다.

외래에서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자신의 통증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본다. 통증이 시작된 시점은 언제였는지, 어느 부위가 얼마나 아픈지, 일상생활에 어떤 불편을 겪는지, 때로는 본인의 해석까지 덧붙여가며 말한다. 이것을 ‘통증의 사연’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단순한 의학적 설명이 아니라, 삶의 언저리에서 나온 절절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처음 진료를 시작했을 때는 이런 ‘사연’의 중요성을 놓쳤다. 그때는 유능한 의사란 알고 있는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빠르게 증상을 파악하고 치료법을 제시해 환자를 설득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진단’이 아니라 ‘예단’이었고, ‘설명’이 아니라 ‘주입’에 가까웠다.

척추 통증은 단순히 구조적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특히 척추전방전위증, 척추관협착증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질환은 심리적인 요소와도 밀접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 고통을 겪은 환자일수록 자신의 고통을 단순한 증상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렇기에 의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공감받고 싶어한다.

이러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눈빛으로 들으려 노력한다. 병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와 ‘같은 편’이 되기 위해서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라포르가 잘 형성되면 치료 방법에 상관없이 환자의 통증이 더 잘 호전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라포르란 심리학에서 ‘상호 간의 신뢰와 유대감’을 의마하는 단어다. 의료계에는 ‘환자와의 라포르가 진료의 절반을 좌우한다’는 격언이 있다. 특히 환자의 몸에 직접적인 시술이나 수술을 해야하는 외과의사에게는 더욱 절실한 진리다. 라포르만 잘 형성돼도 치료의 반은 이미 이룬 셈이라는 선배들의 말이 이제는 가슴 깊이 와닿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도 통증으로 병원 방문을 고민 중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병원에 오시면 그 ‘통증의 사연’을 들려주라는 것. 이야기를 경청하는 그 과정이, 더 나은 치료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척탑병원 신경외과 방우석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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