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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기자의 존재 이유

홍성식 기자
등록일 2025-06-18 18:13 게재일 2025-06-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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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각기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기자란 ‘묻는 사람’이다. 

 

배우는 연기를 함으로써,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경찰은 도둑을 잡아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럼 기자는? 질문하는 것이 기자의 존재증명 방식이다. 그게 무시무시한 권력자건 파렴치한 범죄자건 취재 대상 앞에서 묻는 걸 멈춘다면 그는 더 이상 기자일 수 없다. 

 

20세기를 통틀어 핵심적인 내용을 가장 잘 묻고, 상대로부터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끌어냈던 여성 기자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오리아나 팔라치(1929~2006).

 

이란의 호메이니, 인도의 간디, 중국의 등소평, 리비아의 카다피, 미국의 헨리 키신저 등이 그녀의 질문 앞에서 쩔쩔맸던 사람들. 한 명 예외 없이 세계적 거물임에도 팔라치의 질문엔 거침이 없었다. 

 

‘내가 이런 걸 물으면 혹시 그들이 화내지 않을까’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없었다면 팔라치가 세기를 뛰어넘어 아직도 ‘기자의 한 전범(典範)’으로 기억될 까닭이 없다.

 

새롭게 들어선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민석 의원의 과거와 관련된 껄끄러운 질문을 한 기자가 김민석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넷 공간에선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힘든 인신공격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 기자는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기자란 묻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니. 대장장이가 칼을 만든다고 “그 칼에 의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칼을 만드냐”고 질타하는 건 얼마나 무지한 짓인가. 기자에게 “왜 묻느냐”고 난리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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