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지지율이 폭락했다. 정치판에는 주식시장과 달리 서킷브레이커도 없다. 여기가 바닥이라고 자신할 수도 없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전주보다 15%포인트나 떨어진 21%였다.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4%포인트 오른 46%로, 국민의힘보다 두 배가 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불안하다. 대구·경북(TK)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모두 민주당 지지율이 높았다. 지금 이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구 시장과 경북지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당이 차지한다는 말이다.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완전한 ‘TK 자민련’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를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비교했을 때 국민의힘은 99석밖에 얻지 못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그
런데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거기서도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렸다.
TK에서도 크게 앞선 게 아니다. 국민의힘이 40%로 민주당 32%를 겨우 앞섰다.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60대(54%→25%)와 70대 이상(61%→30%)에서 한 주 만에 반토막 났다. 한국갤럽 조사만 그런 경향을 보인 것이 아니다. 4개 여론조사기관이 합동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민주당 45%, 국민의힘 23%로 갑절 차이를 보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 대통령 선거가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한 심판이라면, 이번 조사 결과는 선거 이후 국민의힘의 사후 처리에 대한 실망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를 찾아 반성하고, 고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파산하고 남은 부스러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모습에서 회생 가능성조차 찾을 수 없는 절망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렇지만 이러고도 국민의힘이 다음 선거를 치를 수 있을까.
선거 뒤 국민의힘이 한 일은 분란뿐이다. 선거 패배 책임을 서로 떠밀었다. 먹을 것이나 있는 것도 아니다. 행정부도, 국회도 민주당 정권에 다 넘겨줬다. 사법부까지 넘어갈 위기다. 다 팽개치고, 알량한 당권에 목을 맨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선거에서 이긴 정당처럼 행동하는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쪽박을 찼지만, 그 쪽박을 두고 싸우는 모양새다.
선거에 졌으니, 당을 정비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당권 경쟁에서 상대의 약점을 들추느라 정작 당이 해야 할 일을 잊어버렸다. 국민의힘은 정권을 빼앗겼다. 무장 강도에게 빼앗긴 게 아니다. 임기를 절반이나 남긴 정권을 스스로 갖다 바쳤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상계엄을 시도했다.
그래 놓고는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을 탓한다. 탄핵 이후에도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유지하겠다고 고집한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들, 저항하는 시민은 어떻게 막을 건가. 발포라도 해야 했다는 건가. 시민과 무장 군인이 대치할 때 실수로라도 발포할까, 폭력이 발생할까, 가슴을 졸였다. 비상계엄에 성공한들 몇 년을 끌고 갈 수 있을까. 그런 체제로 다시 집권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까. 그야말로 망상이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계속 탄핵 반대 활동을 해왔는데, 어떻게 당론을 무효화하느냐”라고 말한다. 이미 해온 일은 반성할 수도, 뒤집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선거도 계속 지겠다는 생각인가. 국민의힘이 “내가 잘못한 게 없다”라고 한다면, 선거는 왜 졌나.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국민더러 반성하고, 다르게 투표하라고 훈계하는 오만함과 다르지 않다.
좋건 싫건 선거는 국민의 심판이다. 그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을 물갈이할 수는 없다. 국민을 계몽해 투표 경향을 바꾸겠다는 건 독재자의 논리다. 왜 졌는지 냉철하게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방탄이 보수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정치인도 잘못할 수 있다. 다만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개구리도 움츠려야 높이 뛸 수 있다.
물론 의원들의 지역구에 따라 여론이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의원마다 자기 이익만 지키려 움직이면, 정권을 포기해야 한다. 여론이 추락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국의 자유당처럼 사라지느냐, 재건하느냐, 국민의힘이 기로에 서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