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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맞춰가는 것…우린 천생연분”

장은희 기자
등록일 2025-05-22 16:03 게재일 2025-05-2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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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남편 장현진 씨, 장준호·장성호 군, 이유진 씨 가족이 한 자리에 앉아 화목한 가정에 대해 대화나누며 미소짓고 있다. /장은희기자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유진(43) 씨에게 남편 장현진(52) 씨와 ‘천생연분’인지 묻자, 두 사람은 웃음부터 지었다. 정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그 미소 속엔 함께 걸어온 시간과 신뢰가 담겨 있었다.

이유진 씨는 2007년 충북 청주에 있는 주성대(현 충북보건과학대학교) 금융마케팅과에 교환학생처럼 입학하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어는 거의 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이 씨는 “친구들이 참 잘 챙겨줬다. 문화도 비슷하고. 우즈베크에 있을 때 고려인 친구들이 많아 익숙한 것 같다”고 말했다.

5월 특별시리즈  다문화가정 ‘다름을 품은 사랑·행복한 동행’

①우즈베키스탄 성아린 씨 “시끌벅적한 글로벌 우리 가족”

②중국 정준 씨, 날마다 ‘하하호호’·심심할 틈이 없는 3대가 함께 사는 가정

③베트남 쩐티이엔피 씨, “내 삶의 이유는 우리 가족•베트남 돌아갈 이유 없어”

④중국 오리리 씨, “K문화 좋아서 한국 며느리 됐어요”

⑤우즈베키스탄 이유진 씨, “조금 달라보이나요? 달라서 더 소중한 우리 가족”

그의 첫 전공은 사실 영어였다. 우즈베키스탄 국립세계언어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전공을 살리기 위해 충북대 영문과 석사 과정에 진학했고, 이후 경산으로 시집을 오며 지역에 뿌리내렸다.

한국에 남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결혼’. 영화 같은 인연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친구가 입원한 병원에서 친구의 성실함에 감동한 어느 어르신이 “우리 아들도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를 소개해주고 싶다”며 친구에게 소개를 청했다. 그렇게 이 씨의 연락처가 지금의 시어머니 손에 들어갔고, 그 아들이 바로 지금의 남편이었다.

이 씨는 “처음 고백을 받고 바로 교제를 시작하진 않았다. 서로 아는 사이로 3년을 지냈고, 마음에 확신이 생긴 뒤에야 사귀기 시작했다“며 ”남편이 싫었던 게 아니라 3년 동안 과연 내가 이 문화에서 평생 살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 씨는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귀화도 결심했다. 2011년 결혼 후, 2015년 무렵 귀화를 완료했고 이름도 바꿨다. 그는 현재 중학교 1학년 장성호(13), 초등학교 5학년 장준호(11) 군의 엄마다. 

이 씨는 유창한 한국어는 물론 우즈베크어, 영어, 러시아어, 카자흐어까지 구사한다. 하지만 두 아들에게 한국어만 사용하며 키웠다. 이 씨는 “외모는 다르지만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며 “학교에서 우즈베키스탄이나 러시아를 주제로 발표도 하고, 자긍심 있게 표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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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장현진·이유진 씨 부부, 장성호·장준호 군, 이유진 씨 시어머니와 시누이. /이유진 씨 제공

그의 시어머니는 이 씨가 결혼 초기 낯선 문화에 적응하던 시절 큰 힘이 되어줬다. 반찬을 해주고, 집안일을 도맡아 도와주며 새 며느리를 따뜻하게 감쌌다. 이 씨는 아이들이 다 큰 지금도 매주 시댁을 찾아 시어머니를 뵙는다. 이 씨는 “어르신들하고 자란 아이들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공손하고, 부드럽다. 그 환경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엄마는 세상에 하나다. 남편을 낳아주신 분이니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친정 부모 역시 큰 버팀목이었다. 세 딸 모두 한국에 시집온 뒤, 이 씨의 어머니는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KTX를 타고 전국을 오갔다. 이 씨는 “친정어머니는 애들 때문에 한국어을 배우셨다. 손주랑 대화하고 싶어서다“며 ”한국에서 이동도 해야 하니까 교육원에서 한글도 배웠다. 어머니가 더 한국 사람 같다”고 미소 지었다.

이 씨는 현재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외국인 환자의 접수, 통역, 예약, 수납까지 전 과정에 관여한다. 5개 언어를 구사하는 그는 ‘만능 직원’으로 통한다. 그는 “사람들과 눈 마주치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도록 도와주니 뿌듯하다”며 "동료들이 저보고 처음에는 뼛속까지 한국사람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세포까지 한국사람이라고 한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다문화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씨는 “결혼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언어, 문화, 육아, 돈 관리 등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며 ”특히 여성이 이주하는 경우엔 책임감과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랑만으로도 결혼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노력 없이는 안 된다. 그냥은 행복할 수 없다. 계단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남편 장현진 씨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장 씨는 “갈등 없는 집이 어디 있나. 중요한 건 풀어나가는 방식"이라며 "그런 아내를 만나 전 천생연분이라 생각한다”며 지그시 아내를 바라봤다.

이 씨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100% 만족, 100% 행복은 없지만 서로 웃고,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게 천생연분이라면, 저흰 맞는 것 같다”며 남편을 향해 미소지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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