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연기가 하늘을 가렸다. 불덩이는 강한 바람을 타고 시뻘건 혀를 내밀며 마을로 번졌다. 26일 의성 ‘괴물 산불’로 영덕군 내륙·해안 마을이 전쟁터로 변한 건 한순간이었다. 마을 입구 나무들은 불의 파도에 휩싸였고, 검게 그을린 잎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깨진 창문과 무너진 벽, 불폭풍이 휩쓴 골목은 새까만 재만 남은 폐허로 변했다.
소방대원들은 연기 속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헬기가 머리 위를 선회하며 물을 뿌려도, 불의 괴물은 다시 살아났다. 얼굴이며 옷이 잿가루로 덮인 대원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호스를 붙잡았다. “물이 부족하다!” 외침이 들렸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마을 한쪽, 대피소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불타는 마을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 무너진 집을 떠올리며 흐느끼는 노인들. “우리 집, 다 타버렸어요….” 허공에 퍼진 탄식은 참담했다.
붉은 재앙이 남긴 것은 재와 잔해뿐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숯덩이가 된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희망은 남아 있었다. 서로를 부축하며 폐허 속을 걷는 사람들, 다시 세우겠다는 다짐. 불지옥은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영덕 사람들의 의지까지 태우지는 못했다.
/글=임창희기자·사진= 이용선기자
의성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확산하면서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 지역과 영덕 등 동해안 지역에서 큰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26일 오후 화마가 지나간 영덕군 영덕읍 해변마을인 석리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6일 오후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언덕의 주택과 팬션 건물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6일 오전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해변마을의 주택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타버렸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6일 오후 영덕군 영덕읍 화수리 차량정비 공장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