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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찬가

등록일 2025-02-20 19:48 게재일 2025-02-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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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철수필가
노병철수필가

다리 떨리는 나이엔 여행을 가고 싶어도 못 가니 가슴 떨릴 때 길을 나서라는 말이 있다. ‘죽어서 명당 찾지 말고 살아서 좋은 곳을 다녀라.’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집사람이 먼저 집을 비우기 시작한다. 젊었을 땐 허락을 받는 척이라도 하더니 지금은 현지에서 문자 한 통으로 끝낸다. 어디 있으니 그리 알아라. 언제 들어갈지는 모른다는 내용이다. 집구석 엉망으로 돌아간다고 욕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난 이게 더 좋다. 나도 언제든지 여행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피차 서로 구속하면서 살 나이는 지났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중국과 수교도 되기 전에 여행을 갔다. 북경반점을 보고 짜장면집이 되게 크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반점이 호텔이라는 사실을 알고 귀국해서 중국을 다 아는 체했다. 총무를 비서장이라고 하고 사장을 총경리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곁들여서 말이다. 그 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중국 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중국 여자들이 겨드랑이털을 깎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밥 먹기 위해 반찬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반찬부터 먹고 밥 먹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된 것도 여행을 통해서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의 크기를 말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사는 우물이란 공간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기에 베이징에서 톈진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본 끝없는 평야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여름벌레에게는 얼음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하루살이에게 내일이란 것을 설명할 수 없듯이 말이다. 글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한다. 경험이 부족하면 사고가 틀에 매이게 되고 연산하는 폭이 극도로 좁아진 상태라 했던 말만 계속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수필 작가이자 교수이고 외국물도 먹은 박사로 평생 교단에서 존경받고 살다가 퇴직 후 나름 자신의 지식을 통한 수준 있는 작품을 내놓으려 하다 식겁하고 자중하는 분이 있다. 그분의 이야기는 설득력 있는 글, 읽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자꾸 전문 지식이 그것을 막는다고 한다. 장자 추수 편에 보면 시골 훈장에게는 진정한 도를 설명할 수 없다고 나온다. 자신이 배운 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습성이 있다고 했던가. 평생 한 우물을 팠다고 전문가 소리는 들을 지은 정 밖으로 나가면 개구리라는 소리를 피하지 못하게 되는 원리렷다. 여행을 통한 폭 넓은 경험만이 좋은 글을 내어놓을 수 있다고 스스로 체득한 것을 알려준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마사지라는 것을 거의 강제로 받는다. 그리고 장사치 앞에 앉아 물건 사기를 강요받는다. 싸게 여행 가려면 패키지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손해 보는 장사는 누구도 하지 않는다. 옵션을 걸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돈을 각출해 낸다. 이런 것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기 싫다는 사람을 봤다. 먹는 것이 입에 맞지 않고 향신료 때문이라면 어찌 말은 된다고 하지만, 가기 싫다는 핑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외국 여행이 싫으면 국내 여행도 괜찮지 않은가. 여행을 구차한 핑계를 대면서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다가 일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 움직일 수 있을 때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올해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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