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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임금의 어필인데…” 문경 부림 홍씨, 문화유산 지정 호소

고성환 기자
등록일 2025-02-17 18:01 게재일 2025-02-1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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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임경업 장군과 무공<br/>홍인걸 선천부사에 하사한 66자<br/>1903년 후손들이 어필각에 보존<br/>1999년 市 옛길박물관 위탁보관<br/>투구·식기 등도 함께 지정해 주길
선조 임금 어필
선조 임금 어필

부림홍씨 호계문중이 문경시 호계면 호계리 451번지에 있는‘어필각과 소장 유물’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 어필은 조선 14대 선조 임금이 홍인걸(洪仁傑·1581~1639) 선천부사에게 하사한 66자의 글씨다. 어필에는 선조의 여덟 번째 아들인 의창군(義昌君)의 ’발문(跋文)’이 적혀 있으며, 병풍처럼 접는 책 형식으로 돼 있다.

어필 66자는 중국 당나라 한유(韓愈)가 아들 부(符)에게 내린 ’권학문(勸學文)’인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 오언고시 270자 중 일부다. 문중에서 선천공으로 부르는 홍인걸 선생의 자는 사호이다. 그는  문광공 귀달(貴達)의 현손이며,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해 웅천 현감을 지냈고 창주진(昌州鎭) 방어사와 선천도호부사(宣川都護府使) 겸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지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사직이 강화에 들어갈 때 호종(扈從)했고, 임경업(林慶業) 장군과 힘을 합쳐 전란을 극복하는데 공을 세웠다.

선천과 창주는 중국과 접경지역이다. 국가적 통로이고 군사 요충지여서 뛰어난 장수가 부사로 임명됐기 때문에 홍인걸 같은 종2품 무장이 임명됐고, 종2품은 지금의 차관급인 육군 중장 격이다.

선천공 홍인걸 선생의 업적에 대한 자료와 유품은 호계리 사당에서 보관됐지만, 일제 강점기 초 같은 집안 큰 집 격인 문경시 영순의 밤실파에서 선천공이 고조 허백당 홍귀달과 같은 종2품 이상만 받을 수 있는 ’불천위’에 해당할까 염려해 사당과 유품을 다 태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선천공에 대한 기록이 없는 상태였으나, 근세 후손들이 작성한 행장(行壯)으로 활동 흔적을 확인하고 있다.

어필각을 설명하고 있는 홍진호 부림홍씨 호계문중 회장. /고성환 기자
어필각을 설명하고 있는 홍진호 부림홍씨 호계문중 회장. /고성환 기자

다행히 어필은 1903년 호계리 선천공 후손들이 어필각(御筆閣)을 짓고 보관해 왔으며, 1999년 문경시 옛길박물관에 위탁 보관하고 있어 안전한 상태다. 

옛길박물관에는 어필 외에도 투구, 식기(食器)도 보관하고 있다. 현재 어필각에는 2019년 6월 19일 어필각 중수 때 후손이 기증한 모형이 있다.

최근 옛길박물관이 어필의 진위 여부를 전문기관에 의뢰해 진품임을 확인했고, 곧 논문으로도 발표할 예정이다.

후손인 홍용락 전 동아방송대 교수는 “선천공에 대한 연구가 부림홍씨 문중은 물론 향토사학계와 지자체에서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진품으로 확인된 어필과 투구, 식기, 어필각 모두 공식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어필 내용이다.

兩家各生子(양가각생자) 양가에서 각기 아들이 태어나도

提孩巧相如(제해교상여) 두 세 살 어릴 때는 재주가 비슷하고

少長取嬉戱(소장취희희) 조금 성장하여 함께 놀 무렵이면

不殊同隊魚(불수동대어) 떼 지어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다

年至十二三(연지십이삼) 나이가 열두세 살이 되면

頭角秒相疎(두각초상소) 두각을 조금 드러내기도 한다

二十漸乖張(이십점괴장) 스무 살이 되면 점점 더 거리가 생겨

淸溝映汚渠(청구영오거) 맑은 도랑이 흐린 도랑에 비치듯이 된다

三十骨觡成(삼십골격성) 서른 살이 되면 골격이 형성되어

乃一龍一豬(내일룡일저) 하나는 용, 하나는 돼지처럼 된다

飛黃騰踏去(비황등답거) 준마는 뛰어 달리는데

不能顧蟾蜍(불능고섬서) 학문을 못 이룬 두꺼비는 돌아볼 수도 없다

一爲馬前卒(일위마전졸) 한쪽은 말 앞의 졸병이 되어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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