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18세기 영·정조와 함께 개혁을 이끌었던 재상 번암 채제공(1720∼1799)의 한글 행장 ‘번상행록’에 주석을 달고 현대어로 번역한 책을 출간했다.
현재 남아 있는 ‘번상행록’은 19세기 한글 필사본으로, 풍산 류씨 하회 마을 화경당(북촌)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자료다. 이 한글 필사본은 채제공의 한문 행장을 번역한 것이며, 아쉽게도 한문 저본(底本)은 전하지 않는다. 한글 필사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책이 집안 여성들을 위해 선조의 행적을 학습할 수 있도록 특별히 작성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번암 채제공은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격화된 시기, 임금의 정치적 비호를 받으며 남인으로서 재상에까지 올랐다. 채제공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정치가로서 정조의 개혁 정치를 설계하고 실행한 핵심 인물이다.
번암(樊巖)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으며 충청도 홍주(홍성) 출생이다. 15세에 향시에 합격하고, 1743년에 문과 정시에 급제한 후 출사해 도승지, 대사헌,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 다양한 벼슬을 지냈다. 1758년 도승지 재직 당시 영조가 사도세자를 폐위하는 비망기를 내리려고 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이를 막아 훗날 영조가 정조에게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고 너의 충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이후 정조 즉위 후 홍국영이 실각하면서 반대파의 공격을 받아 8년간 은거 생활을 했으나 1788년 국왕의 특명으로 우의정에 올랐다. 이후 좌의정, 영의정에 임명됐으며, 수원 화성 축성을 담당했고, 신해통공을 단행해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번상행록’은 영·정조 시대 정치적 탄압 속에서 재상으로 성장하는 채제공의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다. 채제공은 1755년(영조 31) 겸필선에 제수돼 사도세자를 가르치게 된다. 1758년(영조 34) 8월 도승지에 제수된다
‘번상행록’은 한글로 적혀 있지만 흘림체로 돼 있고 난해한 문구와 어휘가 많아 읽기가 쉽지 않다. 이에 ‘번상행록’을 교주하고 현대어로 번역해 일반 독자들이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번역 작업에는 채제공의 한시를 전공한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 전문 위원 이도현 박사와 국문 장편소설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국학진흥원의 홍현성 박사가 함께 참여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