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성 능력 향상에 있어 그 출발인 ‘경험’ 또는 ‘사실 관찰’을 뜻하는 ‘격물(格物)이 있습니다. 격물이 넓어지기 위해서는 네가지 단계로 인식이 넓어져야 합니다. 먼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사물)가 필요하고 ‘어떻게 잘 알 수 있는가?’(태도) 이성은 왜 윤리와 지식이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이름을 이해하라(정명)고 고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안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 ‘사람의 이치’를 아는 것입니다.
주희는 ‘주자어류’ 〈대학이경하〉 편에서 “격물에서의 물(物)은 사물(事物)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사물’의 사전적 의미는 ‘일과 물건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사’는 ‘일 사(事)’라는 한자 의미 그대로 능동적 작용인 ‘인간의 행위’를 말하고, ‘물’은 한자 의미 그대로 수동적 대상인 ‘자연적 물질’을 말합니다.
율곡 이이는 ‘성학집요’ 〈궁리〉 편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치는 당연히 모두 파고들어야 한다. 다만 자연은 그 범위가 매우 넓어 간략히 말하고, 사람에게 있는 이치는 긴요하고 절실해 상세히 말한다 - 중략- 가까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유추해 끝까지 확장해 나가면 ‘한 자연의 세밀한 부분’이나 ‘한 사람의 작은 행위’까지 그 이치를 통찰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물에 다가가 그 사물의 이치를 파고드는 ‘격물’은 다름 아닌 ‘사람에 대한 이치’와 ‘자연에 대한 이치’, 즉 학문의 범주로 말하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대상을 그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할 때, 그 앎은 흔히 단순한 앎, 지식, 과학, 지혜 차원으로 단계를 나눠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앎’은 ‘어떤 사실이나 존재, 상태에 대해 의식이나 감각으로 깨닫거나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은 간접적인 배움이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갖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말합니다. 이런 지식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보편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체계를 갖추면 ‘과학’이 됩니다. 지혜는 ‘이치에 맞게 적절하게 일을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을 의미하며, 때로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지식이나 과학의 범주를 넘어선 질문에 대한 해법 제시 능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학은 대상에 따라 크게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자연과학’만을, ‘넓은 의미’로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모두를, 또 때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만을 ‘과학’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과학의 범주가 들쑥날쑥한 것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라는 ‘과학’의 정의에 사실은 ‘자연과학’만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둘은, 둘 중에서도 특히 ‘인문과학’은 이 정의와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사실의 관찰과 실험에 의한 합리성과 실증성 확보에 ‘자연과학’은 전형적으로 충실하지만, 뒤의 ‘인문과학’ 쪽으로 갈수록 그 충실도는 크게 떨어집니다.
세 분야 사이에 그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자연과학’의 대상인 ‘자연’은 물질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인과관계에 있어 기계적인 반면, ‘인문과학’의 주요 대상인 ‘인간’은 의지적이고 심지어 때로는 창조적이기까지 해 규칙화할 수 없고 객관화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문과학’을 보통 ‘인문과학’이라 하지 않고 흔히 그냥 ‘인문학’이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집단인 사회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중간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 대상인 사람들의 사회적 행위가 반드시 사람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자연인 물질도 함께 개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경제학’과 같은 경우, 사람들의 행위가 연구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그 행위가 재화와 관계되는 만큼 당연히 물질인 재화도 함께 연구 대상이 됩니다.
학문 범주 설정에 있어서의 모호함은 ‘자연’의 속성을 바탕으로 한 ‘과학’ 측면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인문학’ 입장에서도 발생합니다. ‘인간’의 속성과 문화 등에 대한 지식을 다룰 때 직접적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문화만이 그 대상이지만 넓게 보면 사실 인간이 만들어가는 ‘사회’ 역시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들의 의지와 창조의 대상으로 삼는 ‘자연’도 관련이 전혀 없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문학’의 영역을 따질 때 좁은 의미로는 그 범주가 ‘인문과학’에 한정되지만, 넓은 의미로는 ‘사회과학’, 심지어 ‘자연과학’까지 포함되기도 합니다.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살피는 ‘격물’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치’, 즉 ‘인문과학’과 ‘자연에 대한 이치’, 즉 ‘자연과학’의 기본 지식들입니다. 그리고 둘의 혼합이라 할 수 있는 ‘사회과학’의 기본 지식 역시 격물의 대상입니다.
그러면 ‘사물에 다가가 그 이치를 살피는’ 격물에서 구체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먼저 민주 국가의 주인 된 자로서 ‘시민 역할을 올바로 하기 위한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민주주의, 자유,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 핵심 가치들에 대한 개념적·역사적 명확한 지식, ‘권리와 의무의 균형’에 대한 체화된 지식과 같은 것들이 그것들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와 같은, 남북 간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는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정확한 개념 구분 및 각각의 장단점, 경제체제(자본주의 vs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와 정치체제(민주주의 vs 전체주의)의 구별에 대한 내용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정치는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환경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그 정치 환경은 결국 주권자인 시민들 스스로가 정합니다. 따라서 21세기 우리나라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관련된 핵심 개념들과 남북 간 대치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이 땅에서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 그 무엇보다 우선되는 일들입니다.
정치와 관련된 지식들은 주로 ‘사회과학’에 해당되고, 그 원리나 역사적 배경은 철학, 역사 등의 ‘인문학’이 담당합니다.
두 번째로 ‘자신과 가족 부양을 위한 경제 능력 확보에 필요한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21c 보편적 경제 환경은 시장경제(Market economy)입니다. 시장경제에서는 누구나 모두 상인입니다.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시장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팔아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영위합니다.
재능은 그것이 기술이든 지식이든 경쟁력 또는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을 때 비로소 시장에서 거래됩니다. 따라서 현대인은 모두 생계를 위해 자신의 재능과 관련된 전문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전문가로서의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포기해야 하거나 심한 경우 생계 자체를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전문지식은 생계와 관련된 재능의 분야에 따라 그 주요 영역이 ‘자연과학’이거나 ‘사회과학’ 또는 ‘인문학’일 수 있습니다. 한 사회 속 사람들의 욕구와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또 삶의 수준이 생존 지향에서 가치·의미 지향적으로 바뀌어 가면서 생계 관련 전문지식의 영역은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으로, 그리고 또 ‘인문학’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세 번째로 문화 또는 인간의 근원과 관련된 지식 또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습니다. 오로지 황금만을 향해 달리지도 않습니다. 아름다움, 공감, 염치, 자존감, 인정, 공존, 명예, 자기희생, 자기만의 삶의 의미와 같은, 다른 동물들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기도 합니다.
정신적 가치 추구는 그 가치 추구 자체로 본인 스스로 행복해지고 또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때로는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거나 인간 합리성의 한계를 보완함으로써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정신적 가치와 관련된 지식 또는 지혜는 주로 인문학이 제공합니다. 인문학은 존재하는 것들의 원리와 근본을 돌아보게 하고, 자연과학·사회과학에 새로운 관점, 긴 호흡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동물 아닌 인간답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두루 건강할 때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각자 자신만의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적 시민’이 되어야 하고, ‘자립 능력을 갖춘 경제인’이 되어야 하고,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교양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성’과 ‘자립 능력’, ‘교양’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 ‘격물格物’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