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떠나는 식물원 여행
아픔과 고통의 갑진년이 지고 있다. 많은 이들의 마음에 슬픔과 상실의 깊은 주름이 생겼다. 그 어느때보다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식물원을 가보면 어떨까? ‘국립공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무어는 “숲에 가서 그 기운을 흠뻑 마셔라. 햇빛이 나무 사이로 흘러 들어 오는 것과 같이 자연의 평화가 우리에게 흘러들어 올 것”이라고 했다. 자연이 주는 소박한 위로와 평화를 가슴에 담고 2025년 희망찬 을사년을 맞이하길 기원해본다.
사계절 푸르름 자랑하는 온실부터
하얀 눈 속 붉은 애기동백 장관까지
꽁꽁 언 마음 녹여주는 풍경 속으로
◇ 사계절 초록으로 물든, 서울식물원
서울식물원은 서울지하철 9호선·공항철도 마곡나루역과 맞닿아 있는, 지하철역에서 가장 가까운 도심 속 식물원이다. 서울의 마지막 농경지였던 강서 마곡지구에 빌딩들이 세워지고, 그 빌딩 숲 한가운데 축구장 70개 넓이의 서울식물원이 들어섰다. 서울식물원은 넓은 잔디가 깔린 열린숲과 둥그런 산책로 호수원, 조류의 보금자리 습지원, 그리고 주제정원과 온실로 이뤄진 주제원 등 4개 구역으로 나뉜다. 특히 온실은 문 하나만 열고 들어서면 항상 여름처럼 따뜻한 온도 속에서 초록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열대 지역과 지중해 지역 도시로 이어진 코스를 따라 걸으면 마치 세계여행을 하듯 다채로운 식물을 관람할 수 있다. 온실 최대 높이 25m를 향해 쭉쭉 뻗어가는 야자수와 따사로운 볕에 반짝이는 올리브나무, 2000년 넘도록 굳건한 바오바브나무를 비롯해 1000여 종의 식물이 자란다. 약 8m 높이의 스카이워크에서는 키 큰 열대 식물과 같은 눈높이에서 인사할 수 있다. 2025년 2월까지 희귀 난초와 나뭇가지로 만든 겨울요정을 만날 수 있는 ‘윈터페스티벌’도 놓치지 말자. 씨앗을 대출받아 키운 후 다시 씨앗으로 반납하는 씨앗도서관과 식물 키우기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정원지원실, 작은 화분에 담긴 식물들을 구입할 수 있는 기프트숍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 한 목민관의 애민 정신이 깃든 숲, 하동송림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하동송림은 조선 영조21년(1745년), 하동도호부사 전천상이 만든 인공 숲이다. 해풍과 섬진강에서 날아오는 모래바람으로부터 마을과 농장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후계목(천연기념물과 유전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개체)과 군민이 기증한 소나무 등을 포함해 9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하동송림을 중심으로 송림공원이 조성돼 있다. 사시사철 푸른 침엽수인 소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를 언제든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하동송림공원 옆으로 흐르는 섬진강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모래사장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인근에는 폐선된 옛 경전선 선로를 활용해 만든 산책로가 있는데, 옛 경전철교 위에 직접 올라가 보는 것도 가능하다.
소설 ‘토지’의 드라마화를 위한 세트장으로 지어졌던 최참판댁은 악양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로 인기가 많다. 평야와 섬진강, 소백산맥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스타웨이하동에서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다. 사시사철 초록 잎을 자랑하는 차밭이 화개면 구석구석 자리한다. 하동야생차문화센터에서 하동의 야생차 문화를 경험해 보자.
◇ 붉은 애기동백 가득한 신안 1004섬분재정원
1004섬분재정원은 압해도의 지형이 서쪽으로 뻗어 나가는 곳에 자리한다. 분재원과 작은수목원, 초화원, 쇼나조각원, 애기동백숲길 등이 갖춰져 있다. 1004섬분재정원의 애기동백은 현재 약 2만 그루 이상에 달한다. 한 그루에 애기동백이 2000여 송이 개화하는데, 날씨가 따듯한 해에는 1004섬분재정원 전체에 최대 4000만 송이의 동백꽃이 핀다. 1004섬분재정원에는 애기동백숲길 외에도 즐길 장소가 많다. 쇼나조각원은 쇼나 부족이 만든 약 120점의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는 야외 전시장이다. 햇살연못 주변과 애기동백카페는 1004섬분재정원을 걷다 잠시 쉴 수 있는 장소다. 암석원은 마치 작은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배롱나무 정원은 약 200년 전 나주시 덕림리 마을에 심었던 배롱나무들을 기증받아 조성했다. 1004섬분재정원이라는 이름답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역시 분재원이다. 저녁노을미술관에는 우암 박용규 화백이 기증한 ‘금강산만물상’, ‘유곡’, ‘출가’ 등 여러 작품이 전시돼 있다.
◇ 토종 희귀 자생식물의 요람, 국립한국자생식물원
오대산 숲속에 자리한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외래종을 배제하고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로만 구성한 식물원이다. 1999년 김창열 원장이 사립 식물원으로 조성해 가꾸다가 2021년 최소 100년간 이곳을 식물원으로 운영할 것을 조건으로 산림청에 기부했고 2024년 7월 지금의 모습을 갖춰 문을 열었다.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식물 서식지 외 보전기관이며 산림청에서 지정한 국가희귀·특산물 보전 기관이라는 것이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 지닌 가치를 바로 말해준다. 이곳은 희귀식물원, 특산식물원, 모둠정원 등 다채로운 7개의 야외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가을에는 단양쑥부쟁이와 벌개미취 같은 야생화 군락지가 장관을 이룬다. 특히 겨울에는 설경과 함께하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방문자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도자기 공예를 체험하거나 숲속 책장에 소장된 2만여 권의 책을 읽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폐목재로 꾸민 로비와 아늑한 카페 공간은 겨울철에만 무료로 제공하는 따뜻한 음료와 함께 방문객에게 평온한 시간을 선사한다.
자료협조=한국관광공사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