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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탐험가’ ‘세계 속 한국인’으로서의 혜초 재조명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4-12-12 18:46 게재일 2024-12-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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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의 기행문과 철학’ 출간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세계 4대 여행기 중 가장 오래된 여행기인 혜초의 기행문 ‘왕오천축국전’을 서양의 철학적 지평 위에서 더욱 깊이 이해하고 해석한 ‘혜초의 기행문과 철학’(소명출판)이 출간됐다. 저자는 서양의 하이데거 철학을 전공한 윤병렬 홍익대 교수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현사실성의 해석학’과 ‘존재 사유’에 입각해 혜초의 구법 여행과 기행문을 재조명한다.

‘왕오천축국전’은 승려이자 구도자인 혜초(704~787)가 인도를 비롯한 40여 개국을 4년(723~727) 동안 여행하면서, 즉 2만㎞가 넘는 길을 도보로 걸으면서 경험한 것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무려 1200년 동안 중국 돈황의 천불동에 잠자고 있었는데, 1908년에 프랑스인 동양학자인 펠리오에 의해 최초로 발견된 혜초의 기행문에는 그가 여행한 곳의 지리, 정치, 종교. 경제적 상황, 생활양식(식생활, 복식 등), 문화, 언어 등 다양한 정보들을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혜초 당대의 역사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교역로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다. 말하자면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정치·국제정세·지리적 상황·사회·문화·종교·경제적 상황 등을 담고 있는 유일한 사료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기행문에는 인도뿐만 아니라, 아랍과 페르시아의 사회적 정황들을 관찰하여 기록한 내용들도 있다.

혜초는 승려의 관점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문명탐험가의 모습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역사, 지리, 국민이 처한 상황을 기록했으며, 나아가 종교적 관점을 벗어나 서정적인 5편의 오언시도 남겼다. 결국 혜초는 8세기의 인도, 중앙아시아, 아랍, 페르시아, 히말라야 산맥 주변의 부족들의 삶의 양식과 당대의 세계의 다양한 정신을 탐험하고 기록한 한국인이었다.

혜초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 원본에 대한 고증과 주석 및 번역 작업에 집중했다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서는 혜초의 여행기를 독해함에 있어 문헌학과 서지학의 차원을 넘어 철학적 사유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텍스트에만 얽매여서는 안 된다”라며 “보통 사람이 결코 따를 수 없는 수고와 고통이 수반된 구법 여행은 텍스트 밖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혜초의 깨달음을 향한 구법 여행에 동반된 철학적 사유를 강조하며, 그의 여행이 단순한 답사나 의례적인 순례가 아닌, 차안의 세계와 신화적 작별을 하고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혜초의 인생과 철학, 역사와 지리, 문화와 문학 등을 포괄하며, 그의 순례 여행이 깨달음을 주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철학과 결부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러한 상호문화적 비교 철학의 시도는 독보적이고 창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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