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뇌’<br/><br/> 셰인 오마라 지음<br/> 어크로스 펴냄·인문
인간은 왜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신뢰하도록 진화했을까? 왜 누구와 대화했느냐에 따라 우리의 기억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걸까? 어떤 기억은 살아남고, 어떤 기억은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이며, 인간 집단은 어떻게 대화를 통해 유지될 수 있었을까? 최근 출간된 ‘대화하는 뇌’(어크로스)는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며, 대화라는 행동에 관해 우리가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영국의 뇌과학자인 저자 셰인 오마라는 다양한 질문들에 답하며 인간이 어떻게 말하고 왜 대화하는지, 그리고 대화하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최신 뇌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철학, 인류학을 솜씨 좋게 엮어내는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공동체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기반이 바로 대화였음이 밝혀진다.
셰인 오마라에게 인간이란 ‘대화하는 인간’이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대화는 인간의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마라는 대화를 ‘우리 자신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과 상대방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뇌는 대화 상황에 상당히 기민하게 반응한다. 일반적으로 한 화자가 말을 멈추고 다음 화자가 말을 시작하기까지의 간격은 약 0.2초 정도이며, 대화를 나눌 때 우리의 반응 속도는 총알이 발사될 때의 최소 반응 시간에 가까울 정도다. 인간은 하루에 몇 시간씩, 무려 1500번이 넘게 차례를 바꾸어가며 대화한다. 라드바우드 대학교의 사라 뵈겔스 연구팀은 대화 상황에서 뇌파를 측정해 우리는 질문을 들을 때 처음 두세 단어만을 듣고 대답을 준비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질문에 최대한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끔 뇌가 준비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이토록 빠르게, 자주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대화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회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개인을 하나로 묶어줄 공통 현실 또는 공통 기억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공통 기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대화의 과정이다.
사회집단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기억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해석하게 하는 틀로써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억할 것이냐가 집단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면, 내가 무엇을 기억할 것이냐는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흔히 기억을 과거에 관련된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기억이 없다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전망도 잃게 된다. 기억이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기능까지 담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억은 내가 누구였으며, 지금 누구인지, 그리고 앞으로는 누구일지까지 결정한다.
저자는 국가 또한 대화를 통해 구성된 정체성이라고 본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일랜드 더블린 공항에 있는 미국 CBP(관세국경보호청)다. 더블린 공항에서 CBP 직원들의 출입국 심사를 통과한다는 것은 미국에서 새롭게 국경을 넘을 필요 없이, 미리 국경을 넘었다는 말이 된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국가주의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까지 나아갈 수 있다. 국가주의는 특정한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이게 우리나라다. 우리는 나라에 충성하고 헌신하며 자결권을 가진다’라는 의식이다. 즉, 국가주의는 대화의 뇌과학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강력한 심리적 힘이다.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이 1983년 ‘상상된 공동체’라는 책을 통해 국가가 상상의 공동체라는 인문학적 설명을 해냈다면, ‘대화하는 뇌’에서 저자 셰인 오마라는 심리학적이고 뇌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국가가 상상의 공동체이며, 그 상상의 도구가 바로 대화임을 밝혀낸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