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순, 첫 디카시집 ‘푸른 악보’<br/>포항서 활동하는 사진작가·시인 <br/>4부로 구성된 디카시 60편 담겨
“녹슨 이빨 사이/낡은 혀가/누군가를 기다린다/한 때/여인숙이란 여자가 살았다”- 김철순 시 ‘송도에서’
포항 지역을 중심으로 사진작가, 시인으로 활동하는 김철순(70) 시인이 첫 디카시집 ‘푸른 악보’를 펴냈다.
도서출판 작가의 한국 디카시 대표시선 22번으로 출간된 이번 시집은 ‘쓸쓸함이 내 뒤로 숨었다’, ‘마음에 오래 머물던 사람이 있다’,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았다’, ‘채우지 못하고 멈췄다’ 등 모두 4부로 구성돼 있으며, 총 60편의 디카시가 담겨있다.
디카시란 디지털 카메라(Digital Camera)와 시(詩)를 합친 말로, 디지털 카메라로 자연과 풍경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해 찍은 이미지와 시를 결합한 장르다
김철순 시인의 디카시는 ‘사진 한 장만으로도 수백 마디의 언술을 제어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디카시 창작의 원천적인 힘이자 시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표제시부터 심상치 않은 그의 사진과 언술의 포착은 이 한 권의 디카시집을 단숨에 읽게 만든다. 김철순 시인은 사진이 글로 옮겨지고 글이 사진으로 남았다며, 글과 사진은 자신의 오랜 벗이기에 지금도 자신의 ‘삶의 바탕’이라고 전했다.
김 시인은 우리의 삶은 속절없이 솟구쳐 오를 때도 흔들릴 때도 많았지만, 천천히 멈추어야 했고, 그곳이 바로 우리의 자리였음을 안다고 말한다. 드라마 같은 우리의 인생을 단 한 편의 짧은 디카시로 녹여내고자 했다고 전했다.
골목마다 흔하디흔하게 피어나는 명자꽃을 보며, 가난했던 유년의 뜰에서 마주했던 명자를 떠올리기도 한다. 환하게 피어나는 명자꽃 꽃망울을 바라보며, “나 대신” 장독 뒤에서, 담벼락에서 숨어서 울고 있었을 ‘명자’를 만나다니,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슬프고도 아름답다.
그의 디카시집을 펼치면 “한 때 여인숙이란 여자가 살았던”(‘송도에서’) 포항의 옛 명사십리 송도와 “흙벽에 빗금 친 외상장부/술값”(‘까막눈 주모-삼강주막’)을 만난다. 흙벽에 빗금 친 외상장부 술값을 다 받았을지 궁금했던 까막눈 주모가 운영했던 삼강주막과 별을 퍼 올렸던 두레박, 마음에 오래 머물던 사람과 닫힌 문을 두드리던 제비꽃 등의 모습이 펼쳐진다.
경북 청도 출생인 김 시인은 1979년 포항에 정착해 1996년 사진과 문학에 입문했으며, 2010년 개인 사진전 ‘한옥’을 열었고, 2020년 산문집 ‘소리를 갈아타다’를 펴냈다. /윤희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