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br/>J.M.버거 지음<br/>필로소픽 펴냄·인문
신간 ‘극단주의’(필로소픽)는 극단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형성되고 폭력적으로 극단화돼 사회를 위협하는 운동으로 발전하는지를 분석한 극단주의 개념 입문서다.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테러·극단주의·대테러 센터 CETC’ 선임 연구원인 저자 J.M.버거는 극단주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MIT 필수 지식 시리즈’로서 간결하고 흥미진진하게 쓰인 이 책은 ‘최초의 제노사이드’인 고대 로마의 카르타고 파괴에서 현대의 지하디즘과 백인 우월주의까지, 역사적으로 다양한 사례를 사회 정체성 이론으로 분석해 설명한다. 극단주의 운동들이 세계 도처에서 기세등등하게 준동하는 상황에서 극단주의에 대한 올바른 정의의 실패가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극단주의 운동 및 테러리즘 전문가인 버거는 극단주의가 특정 종교, 인종,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이래 인류를 괴롭혀 온 문제로 인간 본성에 뿌리박힌 ‘우리 대 그들(내집단과 외집단)’이라는 정체성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저자는 극단주의의 파멸적 결과를 막기 위해 극단주의를 있는 그대로, 인간 사회의 영속적 부분으로 이해하고 대응할 것을 촉구한다.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극단주의가 존재하며 그 수단은 폭력 외에도 언어적 공격과 폄훼, 차별 행위, 더 심하게 나가면 집단학살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극단주의가 존재함에도 우리는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 극단주의에만 주목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문제는 이런 접근 방법이 극단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방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극단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정의조차 못 한 채 수억 달러를 쏟아붓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이런 현실을 개탄하면서, 체계적이고 간결한 정의를 통해 극단주의의 본질을 규명하려고 시도한다.
저자는 사회 정체성 이론을 빌려와 극단주의를 정의한다. ‘내집단’의 성공이나 생존이 외집단을 겨냥한 적대 행위의 요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신념이 극단주의라는 것이다.
저자는 내집단과 외집단이라는 틀을 기반으로 내집단의 정체성을 정당화하는 행위가 어떻게 외집단에게 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까지 전개되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태생부터 폭력을 표방하는 극단주의는 드물며, 극단주의는 고정적인 정착점이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고 말한다. 다만 적대 행위 중 폭력이 가장 극적인 표출방식이기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분석 중 단연 돋보이는 점은 극단주의 위기 서사와 극단화 과정의 방정식을 밝혀낸 것이다. 우등한 내집단이 열등한 외집단에 의해 오염돼 타락하고 있다는 불순함, 우등이 열등에 밀리는 현상은 모종의 세력 때문이라는 음모론, 부패한 권력이 외집단을 옹호하고 내집단을 억압한다는 디스토피아, 내집단의 존속이 위태롭다는 실존적 위협, 내집단을 모함한 이 세계가 모두 파멸하거나 혹은 최후의 전쟁을 통해 유토피아가 완성된다는 종말론으로 이어지는 내집단의 위기 서사는 이를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된 외집단에 대해 해법, 즉 적대 행위를 정당화한다.
작가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리는 극단주의를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러 집단을 가로질러 나타나는, 인간 사회의 영속적 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