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받은 한강의 열풍은 침체기의 늪에 빠진 우리 독서계를 순식간에 휘저었다. 서점가엔 그의 소설이 동이 나고 인쇄소에선 밤을 새워 그의 책들을 찍어내는데도 예약 없인 사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광풍 같은 열정은 정말 못말리겠다 싶은 생각도 하면서도 나 역시 그 대열에 끼지 않으면 왠지 애국자가 아닐 것 같았다. 바쁠 거 없어, 이 바람이 어지간히 숙지막하면 사야지 하면서도 괜히 조바심이 났다. 은퇴 후엔 책을 사지 않으리라는 강한 결심을 하고 주로 집 가까운 공공도서관에서 대출카드를 만들어 두고 책을 빌려보던 나였다. 도서관 검색을 해 봤더니 역시나 한강의 책들은 모조리 대출되었다. 예전 ‘채식주의자’를 미국의 지인에게 주고 온 것을 살짝 후회했다. 이정희 교수께서 세 권의 그의 책을 가지고 있다시길래 나중에 빌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남편이 종종 가기를 즐기는 경주 라한호텔에 있는 경주산책이라는 서점에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한강의 소설 없죠? 라고 물었다. 있다며 그가 가리키는 곳, 서점 입구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한강의 작품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워낙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서점이라 아직도 팔리지 않은 책이 있구나 생각하면서, 혹시나 다른 사람이 눈치챌까 괜스레 좌우를 살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얼른 집어들었다. 나온 지 며칠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새 책이었다. 무려 128쇄, 28쇄나 되었다. 하여튼 책을 들고 집으로 오면서 마침내 나도 애국자(?)가 된 듯 설레며 책 읽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이 책들은 ‘채식주의자’와 같이 불편해하지 말고 잘 읽어야지 결심을 곱씹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밝힌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들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쓰인 그의 소설은 잘 읽혀지지 않았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서사로 읽는 보통 소설과 달리 술술 읽혀지지 않은데다가 시 감상하듯 읽어도 만만치 않고 하염없이 더뎠다. 책 뒷면의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동시에 감행하는 거의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에 동의하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위안을 받을 정도였다. 그래도 두 권을 머리맡에 두고, 마치 어려운 숙제하듯이 번갈아 읽고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소설의 주된 테마로 삼은 소설가로 박완서가 떠올랐다. 박완서는 자전적인 체험을 소설로 쓴 ‘나목’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설이 작가의 인생과 가족사를 바꿀 정도로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던 6·25를 바탕으로 했다. 뿐만 아니라, 분단국가로서의 현실, 가부장적 가정 구도, 전후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반공주의, 여성, 중산층 등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아래 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날카롭고 예리하게 관찰한 작품들이 많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한 ‘그 남자의 집’을 책장에서 꺼내와서는 단숨에 다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