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교토국제고가 제106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일명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이 일은 엄청난 ‘사건’이 되어 며칠 동안 한국과 일본의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는데요. 한 고등학교가 고교야구대회에 나가 우승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시엔 대회’와 ‘교토국제고’에 대해 알게 된다면, 한국과 일본이 뜨겁게 반응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효고현의 니시노미야에 있는 고시엔 구장은 갑자년에 완공되어 ‘고시엔(甲子園)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약 80개의 고교야구팀이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약 4000개의 고교야구팀이 있다는데요. 그럼에도 전국대회는 고시엔에서 봄과 여름에 열리는 두 차례의 대회밖에 없다고 합니다.
역사나 위상 등에서 모두 ’봄의 고시엔 대회‘보다는 ’여름의 고시엔 대회‘를 더 쳐주는데, 이번에 교토국제고가 우승한 대회가 바로 ’여름 고시엔 대회‘입니다.
‘여름 고시엔 대회‘에 나가는 팀은 4000여 개의 학교에서 선발된 49개 팀뿐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770C>)에서 도쿄와 홋카이도만 두 팀이 출전하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한 팀만 출전하는데요. 교토국제고도 총 73개 팀이 참석한 교토 예선에서 다른 팀을 모두 이기고 출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고시엔에 나가는 거야말로 어린 선수들의 꿈이며, 그렇기에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도 적지 않은 야구대국 일본이건만, 일본 야구 만화의 대부분은 여전히 고시엔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고시엔은 일본인에게 ‘야구 성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 대상입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처음 이 대회를 만들 당시 일본인들은 고시엔을 통해 무사도의 현대적 변용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과거 새파란 젊은이들이 자기 지역을 위해 칼 한자루에 목숨을 걸었듯이, 근대의 젊은이들은 배트와 글러브에 모든 것을 걸고 모교와 지역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연출하고자 했다는 거지요.
그렇기에 고시엔에서는 매너나 스포츠맨십과 같은 태도를 무엇보다 중요시합니다. 평소의 생활태도에까지 엄격한 규율을 부여하는데요. 일례로 2006년에는 홋카이도를 대표하여 고시엔에 나가기로 되어 있던 선수들이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출전을 포기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고시엔은 ‘감동 포르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회에 참여하는 모두가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멋진 경기를 하면 기뻐서 울고, 졸전을 펼치면 아쉬워서 울고, 이기면 이겨서 울고, 지면 져서 우는 고시엔은 그야말로 순심으로 가득한 청춘의 눈물바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무대에서 한국계 고교가 우승을 했으니, 그것은 ‘사건’이 될 수밖에 없을 테지요.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고시엔에서 재일한인이 커다란 주목을 받은 일이 한번 있었습니다. 1981년 8월 21일 치러진 제63회 고시엔 대회의 결승에 나선 팀은 교토쇼교와 호토쿠가쿠엔이었는데요, 교토쇼교가 공격에 나섰을 때 전광판에는 ‘한유’와 ‘정소성’이라는 한국어 이름이 당당히 올라 있었던 겁니다.
이후 한 인터뷰에서 한유는 “본명으로 나와서 결승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편지를 세 박스 정도나 받았어요.”(오시마 히로시·‘재일코리안 스포츠 영웅 열전’·유임하 조은애 공역, 연립서가·2023)라고 증언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신이 1947년 재일한인들이 만든 교토조선중학교이며, 여전히 한국어 수업이 이루어지며 교가도 한국어인 학교가 아예 우승을 했으니 그 충격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더군다나 고시엔 대회는 공영방송 NHK가 일본 전역에 모든 경기를 중계하는 전통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교토국제고가 우승까지 하는 바람에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되는 한국어 교가가 자막과 함께 일본 열도에 여러 번 울려 퍼졌습니다. 수천 명에 이르는 응원단이 눈물범벅인 채 일어나 교토국제교 교가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마도 한국인으로서 감동을 받지 않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2021년 교토국제고가 처음 고시엔에 진출하여 한국어 교가가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방송되었을 때는 일본 극우단체들이 협박을 하기도 했다는데요.
이번에도 일본의 야구 전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교토국제고의 한 선수는 “교가를 부를 때 ‘우리 저격당하는 거 아니야’라며 모두 걱정했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전광판에 한국어 이름이 올랐다는 것만으로 화제를 불러모으던 시대로부터, 한국계 학교가 아예 우승을 차지하게 된 시대로의 변모는 일본 사회 역시 적지 않게 변했다는 증거의 하나겠죠. 1999년 야구부를 창단한 교토국제고는 야구 특성화 학교라 할만한데요. 고교생 수는 138명인 이 학교에서 야구 선수는 무려 61명이라고 하네요. 한국계 학교에서 재일한인과 일본인이 함께 야구팀의 일원이 되어 고시엔에서 뛰는 모습은, 다가올 미래의 한 가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