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기에 도전한 신념의 영화감독 문신구 <2> 연극 ‘미란다’로 법정에 서다
문신구 감독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줄기는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도전이다. 문 감독은 1990년대 중반 연극 ‘미란다’로 외설 시비에 휘말리며 법정에 서게 된다. 이 사건은 언론의 문화면보다 사회면에 더 자주 등장했다. 이후 연극 ‘미란다’는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연극보다 영화가 더 충격적이라는 세간의 평을 들었다. 문 감독이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어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던 충무로 시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0대 중반 상경 후 글도 쓰고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고 록밴드 보컬까지 장르도 역할도 가리지 않고 경력을 쌓았습니다.
초기에는 노동과 정치에 관심이 많아 독재의 부당함을 알리는 무대를 만들다 경찰에 쫓겨다니기도 했죠.
199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극 ‘미란다’는 울산에서 시작했습니다. 전위적인 스타일의 연극이다보니 외설 시비에 휩싸이며 국내 공연예술물로는 처음으로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죠. 이후엔 영화로도 각색해 만들기도 했어요.
늘 당대의 문제를 주제로 다뤘습니다. 저에게 ‘예술’은 논쟁의 도마 위에 이슈를 올려 그 영향으로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꾀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은정(이하 배) : 10대 중반에 상경한 후 이만희 감독의 연출부에서 일하면서 영화계 경력을 쌓으셨습니다. 주로 어떤 작품을 했나요?
문신구(이하 문) : 닥치는 대로 했죠. 장르도 역할도 가리지 않았어요. 글도 쓰고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고 잠깐 록밴드에서 보컬도 했지요. 초기에는 주로 노동과 정치에 관심이 많았어요. 김지하의 민중극처럼 독재의 부당함을 알리는 무대를 만들었지요. 공연하다가 경찰에 쫓겨 도망 다니기도 했습니다.
배 : 199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극 ‘미란다’는 울산에서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문 : 군대에서 제대하고 울산에 간 적이 있어요. 울산 지역 방송국에서 영화음악을 소개하고 울산 지역 신문사와 왕가위 감독을 주제로 한 영화제도 개최했지요. ‘포스트 극단’을 창단해 공연하고, 포항과 경주의 연극인들과 교류했습니다. 경주의 이수일 선생은 연극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으로 중앙 무대에서도 인정하는 연극인입니다. 당시 나는 이 선생의 제안으로 연극 ‘무녀도’에 출연했고, 경주시립극단 창단에도 참여했습니다. 포항의 김삼일 선생도 그때 뵈었죠.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도전 의식이 생겼고,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문제작을 하기도 했지요.
배 : 제작하신 작품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문 :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 출연까지 한 첫 연극 ‘섹스’가 기억납니다. 남녀의 성에 관한 이야기로 공연이라기보다 해프닝에 가까웠어요.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공연했는데, 조명기를 담당하던 공무원이 공연 도중에 도망가는 일이 벌어졌어요. 상상도 못 한 일이 무대에서 펼쳐지니 너무 놀랐던 거죠. 결국 4회차로 기획된 공연이 무대 인사도 없이 종료됐어요. 공연장을 대관해 준 공무원은 좌천되고 난리가 났죠. 그리고 울산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1인극으로 각색한 ‘햄릿’을 올렸습니다. 오필리어 같은 등장인물은 인형을 만들어 무대에 세워놓은 전위적인 스타일의 작품이었죠.
배 : 정말 실험적인 작품이군요. 세간의 화제가 된 연극 ‘미란다’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문 : ‘미란다’의 원작인 ‘콜렉터(The Collector)’는 납치범의 이상심리를 다룬 영국 소설이지요. 사랑을 얻기 위해 여자를 납치해서 감금하고 구애하는 내용입니다. 서울에서 연극 ‘콜렉터’가 무대에 올랐을 때 나도 그 작품을 봤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원작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원작은 납치범인 ‘콜렉터’와 피랍자인 ‘미란다’의 두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내가 본 연극은 ‘콜렉터’의 관점에서 만든 것이지요. 하나의 사건이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끌고 온 동기입니다.
배 : 연극 ‘미란다’는 외설 시비에 휩싸이며 국내 공연 예술물로는 처음으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도 법정 다툼을 벌이던 때여서 ‘문학계의 마광수, 영화계의 문신구’는 예술계 에로티시즘 논란의 쌍두마차로 회자되었지요.
문 : ‘성(性)’은 덕과 윤리, 제도와 종교로부터 죄악으로 취급당하던 시절이었죠. 많은 예술인이 그것은 부당하다며 문제를 제기했고요. 마광수 교수와 내가 세운 기록이 있어요. 대법원까지 변호사 없이 재판에 임한 겁니다. 당당하게 작품으로 스스로를 변호하겠다는 각오였습니다.
1990년대 문화계의 화두는 ‘성(性)’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작품이 끊임없이 생산되면서 외설이냐 예술이냐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성’은 한 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 문화계를 뜨겁게 달구었고, 문신구 감독은 그 중심에 있었다. 당시 언론의 반응을 다음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급문화가 옷을 벗는다. 연극, 무용, 문학, 미술 등 대중문화와 거리를 두었던 분야에서도 누드와 에로티시즘, 섹스를 다룬 작품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성을 포함한 모든 규제에 대해 너그러워진 우리 사회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몸에 대한 관심’이라는 90년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반영하고 있다. 정신은 고상하고 육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체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예술 양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연극의 경우 현재 서울 대학로에서는 ‘벗기기 연극’으로 이름난 존 파울즈 원작의 ‘콜렉터’가 ‘어떤 고백’ ‘콜렉터’ ‘미란다’ 등의 이름으로 네 군데 극단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 중 공연음란 혐의로 고발됐던 최명효씨(문신구 감독의 본명) 제작의 ‘미란다’는 11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앞으로 벗기기 연극은 예술적 당위성이 없는 한 처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고급문화 누드-에로티시즘 홍수’, ‘동아일보’ 1996년 6월 12일.
배 : 언론에 노출된 횟수도 그렇고 화제성으로 보면 전성기였군요.
문 : ‘미란다’로 서울에서 장기 공연할 때는 대기업 영상사업단에서 돈다발을 들고 나를 찾아왔어요. 세금도 많이 냈죠. 현금 장사인 연극으로 돈을 가마니로 끌어왔으니까요. 미국 공연도 잡혔는데 재판이 오래가다 보니 공연이 무산되고 계약금을 돌려주는 일이 생겼어요.
배 : 연극 ‘미란다’를 각색해 영화를 제작하셨지요.
문 : 예술의 테마와 장르를 고려하지 않고 음란성만을 전제로 한 사법 판결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투자 제안이 있었지만 마다하고 자비로 ‘미란다’를 영화로 만들었지요. 그런데 상영하기도 전에 기독교윤리실천위에서 고발을 하더군요. 간이 더 커져서 김종학 피디가 소개한 일본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콜렉터’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주인공 할 배우가 없어서 내가 출연했어요. 변태적 성향의 남자를 그린 영화인데 센세이션을 일으켜 지금도 회자됩니다. 대사는 한 마디도 없어요. 1시간 50분이 흐르고 마지막에 “물 좀 주세요” 한 마디가 전부죠. 전위적이고 획기적이긴 한데 아무래도….
배 : 전위적이고 획기적인 이야기에 끌리게 된 계기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문 : 전위예술 그룹인 ‘제4 집단’ 선배들을 쫓아다니다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이 그룹은 한국 전위예술의 시초라 할 수 있지요. 광화문 광장에서 ‘기성 문화예술의 장례식’을 치르고, 희곡과 무대, 조명 등의 인위적 구조와 형태를 부정하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많이 했어요. 내가 구상한 걸 누가 듣고 괜찮다는 반응이 나오면 덮어버려요. 다른 사람이 괜찮다고 인정하면 굳이 해야 할 이유가 뭘까 싶어요. 반대로 말도 안 된다거나 미쳤냐는 반응이 나오면 이거 건드려볼 만하겠구나 싶은 거예요. 구상부터 그렇게 출발하니까…. 시나리오로 투자받기는 애초에 글러 먹은 거죠.
배 : 사회풍속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아쉬움은 없습니까.
문 : 나는 늘 당대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아름다워야 할 성을 죄악으로 여기던 시대에 예술가는 그릇된 통념을 고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에게 예술은 논쟁의 도마 위에 이슈를 올려 그 영향으로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작업에 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때문에 욕을 먹고 손가락질도 당했지만 영광의 상처인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담·정리 : 배은정(소설가) /사진 : 김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