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우리는 간월암 거쳐 수덕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마지막 회의를 그쪽에서 갖기로 한 것이다. 합정동에서 셋이 만나고, 다른 세 사람은 간월암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내려가면서 나는 계속 프란츠 파농을 생각했다. 마침 그의 평전 ‘나는 내가 아니다’를 읽고 있던 참이다. 파농은 1925년생인데 1961년에 세상을 떠났다. 길지 않은 일생이었다. 백혈병이었지만, 그 전에 프랑스 정보당국에서 이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몇 번씩이나 일종의 ‘공작’을 벌였다고 한다.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령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 섬 출신이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온 흑인 노예의 후예였다. 비록 어머니는 흑백 혼혈이었다지만 그는 형제들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검은 피부를 타고났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철학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평전은 말한다. 파농은 프랑스 정규 군대 군인이 되었다가 의대를 거쳐 정신과 의사가 되지만 결국 철학적인 저서를 쓰게 된다.
‘검은 피부, 흰 가면’은 전체를 읽어보면 흑인의 ‘정신적’ 해방에 관해 쓴 책이다. 그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알제리 사람들의 해방운동에 깊이 참여하지만 그의 저서는 흑인들의 진정한 자기의식의 회복을 위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이 책을 처음 번역한 사람은 김남주였다. 이 시인은 ‘남민전’ 준비위 사건으로 15년형을 받고 9년여를 살다 석방되었다. 그가 이 책을 번역, 출간한 때는 1978년이다. 그는 영감어린 시인의 문체로 이 책을 완역했다.
김남주에 관한 회상들은 그가 전대 영문과 시절부터 이 책을 읽었음을 보여준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었던 그에게 한국 농민의 상황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상황과도 같은 것으로 느껴졌던 게 아닐까?
김남주가 감옥에 갇혀 있던 1980년대에 상당수 지식인들은 한국이 ‘제3세계’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제3세계’라면 한국은 그 정태적 패러다임이 계시하는 탈식민지 해방 혁명이 아니고서는 구원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한 의미의 혁명이 없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계로 변모했다. 한국은 식민지의 유제라 할 분단을 청산치 못한 가운데에도 제1세계와 같은 ‘형상’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아주 까다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 끝에 내가 찾아낸 해법은 제3세계론, 종속이론, 올드 마르크시즘 등 1970~1980년대를 풍미한 해방의 이론들은, 그 정태적 패러다임, 즉 어떤 불변의 구조를 상정하고 이 구조는 진정한 혁명 없이는 타파될 수 없다는 신념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프란츠 파농, 김남주, 남민전, 제3세계, 혁명, 해방…. 혹시, 그 해, 1987년, 6월부터 7~8월에 이르는 시기에 우리는 ‘전형적인’ 제3세계 혁명과는 다른 의미의 ‘진짜’ 혁명을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진짜 혁명이 있어야 한다고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간월암이라는 이름은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간월암 저편으로 아름다운 핏빛 석양이 졌다. 사람이 진실을 안다는 것은 단연코 쉽지 않은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