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허석 지사 5대손 유도 개인 銀·혼성단체 銅 국위 선양
“미미가 한국 국가대표로 시합을 나갔으면 좋겠구나.”
처음부터 한국인이었다. 한국과 일본, 두 개의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였지만, 한국을 택했다. 할머니의 유언이었다.
언어도 모르고 낯선 땅이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대한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허미미(21·경북체육회) 유도 선수는 독립운동가 허석 지사의 후손(5대손)이다. 할아버지 허무부씨는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증손자이다.
허 선수는 할머니의 바람대로 2021년 국가대표선발전을 거쳐 2022년 태극마크를 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유도 여자 -57㎏급 은메달 및 혼성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해 국위를 선양했다.
귀국 후 한국에서의 첫 일정으로 지난 6일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있는 허석 선생의 기적비를 참배했다. 4년 뒤엔 반드시 금메달을 가지고 이곳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허 선수에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이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허미미 선수와의 일문일답.
- 허미미의 5대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놀랐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최로 열린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오찬에 참가했다. 어떤 대화를 나눴나.
△윤 대통령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메달을 따서 감사하다, 축하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 유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유도 선수였다. 유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유도를 시작하게 됐다.
- 기억에 남는 올림픽 경기 순간은.
△몽골 선수인 엥흐릴렌 라그바토구와 시합을 한 것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작년과 재작년 모두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결정전에서 만나 패배했다. 올해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도 졌다. 3승 무패의 상대이다보니 8강전에서 대결하게 됐을 때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고 너무 부담감이 있었는데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이겨서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 슬럼프 극복은 어떻게.
△나는 나를 믿고 있다. 자신감이 별로 없는 편인데도, 언제든지 ‘내가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매일 운동도 하니 나를 믿는다.
- 유도를 시작하려는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이번 올림픽을 보고 유도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생각을 한다. 유도를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고 유도를 하면서도 재밌게 해주면 좋겠다.
- 한국과 일본 유도의 다른 점은.
△한국에만 있는 게 있다. 유도에 집중할 수 있는게 좋다. 제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 경북에서 좋아하는 관광지는.
△아직 안 가봐서 모르겠다. 나중에 다녀오면 말씀드리겠다. 찾아보겠다.
- 허미미 선수에게 유도란.
△유도는 재미, 행복 같다. 유도를 하면 고민이나 힘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집중할 수 있으니까 유도가 정말 좋다.
- 유도의 매력은.
△사실 매력을 모르겠다(웃음). 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너무 재밌다.
- 앞으로의 계획은.
△파리올림픽에서 아쉽에 은메달을 받았는데 금메달을 따고 싶은 마음이 크게 생겼다. 2028 LA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번에 올림픽 응원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앞으로도 유도를 사랑해주면 좋겠다.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은
“하늘에는 두 태양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 충(忠)은 곧 생명을 다하는 것이요, 마땅히 힘을 다하는 것이다. 어버이를 섬기는 도(道)와 임금을 섬기는 마음은 우리와 더불어 다를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임금이 다른가. (중략) 너희들은 일시에 진멸(盡滅)코자 하노라.”
1910년 7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겪은 후 망국의 한을 품고 있던 허석(許碩·1857~1920).
그는 일본인들의 조선 침탈에 분개해 동포들에게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고자 계획했다.
1918년 8월경 군위군 의흥면(義興面)으로 통하는 도로 부근의 눈에 잘 띄는 암벽에 항일 격문을 작성해 동포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이로 인해 일경에 붙잡혀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만기출옥 후 3일 만에 옥중 여독(餘毒)으로 순국했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각각 추서됐다.
고향 마을인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에 ‘효의공 허석 의사 순국 기적비(孝義公許碩義士殉國紀蹟碑)’가 세워져 있다.
인터뷰 / 김정훈 경북체육회 유도팀 감독
2024 올림픽에서 유도 메달리스트를 키워낸 경북체육회 유도팀 김정훈(43·사진) 감독.
허미미(21)는 유도 여자 57㎏급에서 은메달과 혼성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김지수(23)는 혼성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제자는 모두 재일교포. 한국의 뿌리를 찾아 조국을 빛나게 해 준 김 감독을 1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 허미미 선수와의 인연은.
△고등학생 전국 체전 때부터 지켜봐 왔다. 재일교포인 김지수 선수를 통해 허 선수가 우리 팀에 오고 싶어 하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전달받았다. 김 선수가 한국에서 잘 적응하면서 지내고 있으니 허 선수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거다. 또 김 선수의 할아버지가 경북 상주 출신이고, 허 선수의 허석 할아버지 기적비도 군위에 있다. 이게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도 허 선수를 원했고, 자기도 오고 싶어 했고, 서로 같은 마음이었다.
- 허 선수를 한국에 데려오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허 선수는 재일교포 3세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데 2021년 코로나19 여파로 ‘한국·일본 입국시 2주 격리’ 등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좋은 성적을 내고 유도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
- 허 선수가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 과정을 알고 싶다.
△허 선수가 2021년에 왔을 때 혼자 자가 격리를 여러번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한국에 와서 선수 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한국에 가족도 없이 혼자 외롭게 있는 모습이 많이 안쓰러웠다. 옛날 본적지를 찾아가면 혹시 친척이나 가족이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수소문을 했다. 우연찮게 마을 주민한테 독립운동가의 후손일 수도 있다는 그 얘기를 듣고, 관공서를 찾아다니면서 직계 가족인 것을 알게 됐다.
- 경북체육회 소속의 허미미, 김지수 선수가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파리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재일 교포 출신이다 보니 두 선수 모두 어찌보면 특별한 케이스다. 우리나라 선수 자격 유무 등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두 선수가 유도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 분들의 도움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행정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이철우 경북지사를 비롯해 경북도청 관계자, 체육회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부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