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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독도 (上)

등록일 2024-07-08 18:14 게재일 2024-07-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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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2일 밤 11시 반경 한국시인협회 사람들 약 마흔 사람이 창덕궁 돈화문 옆으로 모였다. 한밤에 울릉도를 향해 떠나기로 한 것이다. 대개 2박 3일 일정이면 새벽 세 시쯤이나 출발이라는데, 이 팀은 자정녘 출발을 택한 것이다.

시인협회 살림을 맡은 이채민 시인과 김향숙, 김조민 시인들은 일찍 나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김수복 회장도, 최동호, 김추인 시인들 모습도 보이셨다. 내 발표에 토론을 맡아줄 비평가 이찬 선생은 커피숍에서 출발 시각을 기다리고 있다 했다.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한밤 출발 일정표를 보고, 몇번이고 차라리 하루 먼저 묵호에 가 다음날 새벽에 올 버스 일행들을 기다릴까 했다. 실제로 박덕규 선배는 그러신다고도 했다. 나나 이찬 선생이나 다 사정이 허락치 않은 게 문제였다. 새 버스였지만 45인승인 탓에 우리는 모두 빽빽히 들어앉았다. 양평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동해 휴게소에선가 한번 더 쉬고 드디어 새벽 세 시 반의 묵호항. 출발부터 나는, 우리는 기진맥진 상태였다.

새벽의 묵호에서 밤의 산책으로 겨우겨우 졸음을 쫓고, 청솔식당에서 황태국으로 아침을 때우고, 우리는 드디어 씨스타 1호 울릉도행 배에 올랐다. 멀미약 키미테를 왼쪽 귀밑에 붙이기는 했지만 나는 은은히 겁에 질려 있었다. 십여 년 전 백령도행 배를 탄 게 마지막 연안 여행이었고, 그때 배멀미를 심하게 한 끝에 위 속의 모든 것을 다 토해 놓았었다. 한밤 서울 출발 덕분이라고나 할까. 좌석도 불편했지만 출항 이삼십 분을 못 가 나는 잠에 떨어졌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도동항에 얼추 도착할 즈음이었다. 그래도 그 마지막 삼십 분 동안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큰 다행이었다. 넘치는 바다를, 한량없는 크기, 부피를 가진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라 해도 나는 동해 바닷물에 내 지친 영혼을 깊이 적셔 씻어낼 수 있었다.

배는 울릉도 입도의 관문 도동항에 가 닿았다. 비 내리는 도동항은 첫눈에도 한반도의 산하와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겨우 항구에 발을 붙이기는 했지만 섬은 바로 앞에서 급한 경사의 언덕들에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로 무척이나 낯선 풍경을 연출했다. 우리는 점심식사가 준비된 울릉호텔로 향했는데, 이 호텔 쪽 언덕에 군청이며 경찰서며 농협 같은 모든 중요 기관들이 밀집해 있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우리는 다시 도동항으로 나갔는데, 당장 오늘 독도 가는 배를 타지 않으면 내일은 배가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제 정말로 독도에 가보는 것이었다.

울릉도에서도 독도는 87킬로미터, 배로 한 시간 반 가량 걸리는 곳이었다. 파고가 높아 섬에 접안할 수 없으리라는 안내방송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어찌됐든 배가 뜰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다행이었다.

섬이 가까워 오자 우리들 얼굴에는 모두 긴장이 서렸다. 안내방송과 함께 비내리는 일렁이는 바다 바로 저편에 섬이 보였다. 독도였다. 외로운 섬, 애원의 섬, 너와 나를 우리들로 연결해 주는 사랑의 섬이었다.

“비바람 속에서 너를 보았다. 비바람 속에서 너를 만났다.”

나는 뱃전으로, 이물 쪽으로 나가 비바람 속의 독도를 바라보며 독도, ‘나의 너’를 소리없이 애타게 불러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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