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푸르름을 짙게 하는 비가 하루 건너씩 내리고 있다. 새소리나 빗소리에 기분이 맑게 깨이는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면 왠지 설레는 하루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계절은 어김없이 초목을 무성하게 하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를 지나면서 바야흐로 본격적인 무더위와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날을 열어가고 있다.
때이른 무더위가 벌써부터 시작되고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올여름의 기온이 전례 없이 높을 것이라고 예보하지만, 날씨와 기상은 변수가 있으니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때이른 무더위도, 줄기찬 빗줄기도 무색하게 하며 뜨겁고 거침없는 마음으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인연과 유대가 있었기에 친소여부에 상관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어울리며 친근한 동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이른바 전국을 캠퍼스로 여기고 있는 한국방송대학의 졸업생이거나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젊은 시절에 배움의 기회를 놓쳤거나 주경야독(晝耕夜讀) 또는 새로운 배움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만학도의 꿈을 다시 펼치면서 동문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이색적이고 독특한 방송대 동문문화를 조성해가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일반적인 동문회의 인적구성과는 달리 나이와 성별, 직급 등 배경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그들은 언제 어느 때 만나고 어울리더라도 한결같으며, 친화력과 포용성이 큰 동문사회를 이루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동문회의 일원이 모처럼 만나 강원도 동해안으로 소풍 가듯이 문학기행을 떠난 것이다. 잔뜩 찌푸리던 날씨가 오전부터 비를 뿌렸지만, 오히려 빗소리의 낭만과 운치가 여행의 맛을 더하는 듯했다. 그렇게 설레는(?) 가슴으로 다다른 곳은 삼척시 신기면에 위치한 강원종합박물관.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2만 여 점의 자연사 및 도자기·금속공예·민속·종교·목공예·석공예 등의 다양한 유물과 예술품들은 기존 박물관의 개념을 깬 듯한 엄청난 규모로 ‘평생문화교육의 배움터’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빗길을 한참 치닫아 강릉시 운정동 한 켠의 고가(古家)로 국가민속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선교장(船橋莊)에 이르러서는,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정취 속에 조선시대의 숨결이 빗소리의 여운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이어 인근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저자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 기념관엘 들러 매월당(梅月堂)의 고매한 얼을 기리기도 했다. 또한 초당동의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을 찾아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개혁정신을 짐작해보고, 그의 누이인 유명 여류시인 난설헌의 문학적 업적과 생가터 유적을 둘러볼 때는 낙숫물 소리가 더없이 정겹게 들리는 듯했다.
비오는 날의 문학기행은 또다른 묘미를 안겨준 것 같았다. 아담한 정원의 나무와 연못, 고즈넉한 정자며 고택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수천수만의 음률처럼 들리기도 하고, 먼 옛날의 자취가 아련한 속삭임으로 여울지는 것 같았다. 길 떠나고 주변을 살펴보면 미처 몰랐거나 색다른 느낌을 주는 명소가 많다. 옛적의 학우들과 교유하며 소통과 교감하는 시간 속에는 새로운 추억과 감흥이 몽글몽글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