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을 할 때면 별 다른 걱정이 들지 않는다. 실을 구멍에 넣고 또다른 실을 가져와 한 바퀴를 돌린 후 그저 실 밖을 통과하는 단순 작업의 반복일 뿐인데, 뜨개를 뜨다 보면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뜨개는 대바늘과 코바늘로 나뉜다. 같은 실을 사용할 수 있지만 바늘과 뜨는 기법에 따라 엄연히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대바늘은 조금 더 훌렁훌렁하고 부드럽게 떠지기 때문에 주로 스웨터나 목도리를 뜰 때 사용하고, 코바늘은 조금 더 딱딱하고 편편하게 떠지기에 컵 받침대나 수세미 등 작은 소품을 뜰 때 좋다.
나는 주로 두 바늘로 편물을 뜨는 대바늘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두 손으로 두 가지 바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움직임이 매끄러운데다, 코 수가 틀리면 바로 수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두 손에 일정한 힘이 고르게 들어가서 더욱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대바늘 뜨개질의 매력은 쭈욱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잡생각이 들지 않다는 점이다. 요즘 사소한 일에도 잘 집중하기 어려운데, 뜨개질을 할 때면 신기하게도 쇼파에 몸이 파묻힐 정도로 앉아 뜨개를 뜨고 있다.
두 바늘을 교차하여 실을 이어 나가는 동안은 떠오르는 걱정이 잠시 물러 난다. 바늘이 나아가는 것만큼 뜨고 있는 편물이 실시간으로 손에 잡히기에 노력 대비 실적이 크게 느껴진다. 그렇게 가방에 달고 다니는 장식품도 만들고 작은 물건을 넣어 다니는 파우치도 만들고, 얇은 원사를 사용해서 여름에 착용하기 좋은 하늘거리는 스카프도 만든다.
바구니에 안온하게 들어가 있는 저 평온한 자세. 엎드린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는 듯 실뭉치를 만지다 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실을 만질 때면 바깥 세상의 뾰족함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느낌이랄까.
바늘을 손가락으로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뜨는 기법도 다양하다. 잉글리시 니팅은 보통 많이들 사용하는 기법으로, 실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잡아 뜨는 방법을 말한다. 콘티넨틸 기법은 자신이 주로 사용하지 않은 손에 실을 잡고 뜨는 방식이다. 만일 뜨는 사람이 오른손잡이라면 오른손에 바늘을 잡고 왼손에 실을 잡아 뜬다. 레버 니팅은 손을 지렛대로 사용해 속도를 높이는 기법이다. 바늘을 잡는 자세에 따라 편물의 모양이 미세하게 달라지지만 여러 가지를 해보면서 내 손에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치 손과 실이 하나가 되어 곡을 리드하는 지휘자의 손놀림과 같달까.
리듬에 맞춰 생각없이 이것도 뜨고 저것도 뜨다 보면 내 옆엔 내가 만든, 작품들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털뭉치들이 잔뜩 널려 있다. 만들고 남은 자투리 실, 옆선이 울룩불룩 제 멋대로인 편물들, 어딘가 서툴고 부족하지만 직접 만든 물건으로 채워지는 나의 삶을 더욱이 애정 어리게 보게 된다.
일반 실에 형형색색의 반짝이가 들어가 있는 실을 합사하여 더 다채로운 색상을 만들어 뜰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원하는 대로 색을 조합해 더욱 독특하게 만들어 볼 수 있고, 이는 기성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또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평소엔 눈 감고도 뜰 수 있던 컵받침 같은 쉬운 것들이 어느 날은 유독 진도가 더디게 떠질 때가 있다. 잔 실수를 계속 하다 길이 한번 잘못 든 실은 간단한 수정만으로도 복구가 되지만, 실수가 계속된다면 결국 그 줄에 있는 전체 코를 전부 다 빼내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인내심이다. 바깥 생활에서 갈고 닦은 인내심을 이 때 발휘해야 한다. 참을 인을 이마에 그린 후, 다시금 처음부터 천천히 나아가는 것. 굳세게 버티어 계속해서 나아가는 노력의 산물이 바로 뜨개인 것이다.
뜨개의 또 다른 매력은 정확한 손놀림이다.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편물을 보고 있노라면 괜시리 욕심이 나서 더욱 손놀림이 빨라진다. 실을 꽉 잡아당기며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면 어느새 뜨고 있던 편물의 모양은 이상해진다. 하나의 코가 빠져 있거나 바늘이 다른 구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잠깐의 욕심이 불러온 참사. 지나친 욕심은 늘 이렇게 괴상한 모양을 띠게 마련이다. 그럴 땐 다시 뜨개를 내려 놓고 심호흡을 하며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후우. 몇 초간 멍을 때리다 다시금 실을 팽팽히 잡아당겨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장력을 느껴본다. 그리고 또다시 실을 술렁술렁 넘기며 마음의 가벼움을 느낀다. 실을 정확히 컨트롤하며 편물을 뜨는 것. 세상 일처럼 뜨개 마저도 자꾸만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풀고 다시 나아가다보면 근사한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뜨개도, 삶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