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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 봄풍경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05-07 18:19 게재일 2024-05-0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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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청량사의 봄풍경이 등산객을 부른다.
청량사는 몇 해 전부터 가고 싶어 벼르던 곳이었다. 다녀온 지인들이 가보라고 입을 모았다. 겨울이면 겨울, 가을은 더더욱 경치가 좋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은 세상이 연둣빛일 때 가보기로 했다. 아침 물안개가 산밑에 머무를 때 가보려고 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다.

포항에서 영덕까지 7번 국도를 달려 영덕IC에서 고속도로로 갈아탔다. 조금 달리나 싶다가 영양에서 다시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물이 많은 영양은 안개가 하얗게 덮인 채 잠에서 덜 깬 산골 소녀 같다. 점점 영양 더 깊은 곳으로 가자 고추 모종을 실은 트럭이 밭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밭고랑마다 고추가 심기고 우리는 청량산도립공원으로 접어들었다. 구불구불 오르막을 올라 고개를 넘으니 곧 내리막길이다가 금방 주차장이다. 등산을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도 차를 세우고 초파일 연등이 내걸린 청량사로 올랐다.


시작부터 가파르다. 운동 부족이라 그런지 5분이 지나자 숨이 가쁘다. 그만 갈까 하는데 길옆에 손톱보다 작은 하늘빛 꽃이 방긋 웃으며 인사를 했다. 검색해보니 참꽃마리였다. 무리 지어 까르르 웃는 유치원생 같다. 잠시 들여다보며 숨을 고르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라 그런가, 곳곳에 아름드리나무가 길옆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하루 종일 시원한 그늘이라 나무에 이끼가 자라 마치 초록 옷을 입은 듯하다. 그 뒤로 아침 햇살이 조명처럼 내비쳐 봄빛이 곱다.


조금 더 오르니 주세붕의 시가 바위에 걸렸다. 송학이 졸다가 깬다는 구절에 감탄하며 무릎을 다독거렸다. 또 한 구비 오르니 미나리냉이꽃이 하얗게 폈다. 쉴 겸 사진 한 장 찍는다. 가끔 내리막이다가 오르기도 해야 하는데 청량사 가는 길은 점점 더 가파르다. 10분이 지나자 온몸이 땀이다. 나무수국이 이제 막 몇 잎 폈고, 나비가 지쳐 돌아설까 봐 힘내라며 팔랑팔랑 앞서간다. 조금 더 오르니 벌깨덩굴꽃이 꽃잎에 나비를 매단 것처럼 피었다.


청량사에 가까워질수록 물소리가 커졌다. 기와를 이어서 물길을 냈다. 그 옆에 종지나물이 작은 잎으로 물을 더 보탰다. 철쭉은 지는 중이고 작약은 이제 막 꽃대를 올렸다. 경치가 그저 그만이라는 찻집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대웅전 앞에 보살님들이 모여 제를 올릴 때 사용할 그릇을 닦고 있었다.


절 마당 한가운데 소나무 아래 숨을 고르는 등산객들이 앉았다. 경기도 동탄에서 새벽에 출발했다는 일행들이다. 자신의 몸피만 한 짐을 등에 얹은 등산객은 땀이 식자 하늘다리라는 표지판을 따라 다시 산을 오른다. 오늘 밤은 정상에서 자려고 그렇게 커다란 배낭을 꾸린 것이라 했다. 빈손으로 오르기도 힘든 길이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무릎이 아프다며 왜 이 고생을 하는지 자기 자신도 모를 노릇이라고 웃는다.


청량산도립공원 내에 자리한 청량사 법당은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히는데 청량산의 육육봉(12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절을 둘러싸고 있고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 자리이다. 이곳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있다.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물고기 모양 풍경이 산 아래 풍경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것 구경하다 해우소에서 근심까지 해결했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오를 때보다 더 조심조심 갈지자로 걸으니 산꽃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쉽게 차를 타고 올랐다면 몰랐을 향이다. 차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갔다면 청량사가 가슴에 남지 않을 것이다. 다녀온 지인들이 모두 이 길을 한 발 한 발 힘겹게 오르며 나무와 꽃과 새소리의 응원을 받아서 청량사를 손에 꼽았을 것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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