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펠리컨

등록일 2024-04-29 20:13 게재일 2024-04-30 19면
스크랩버튼
방민호 서울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펠리컨 이야기를 한다 해놓고 하이에나 이야기부터 시작하게 된다. 하이에나는 오해를 많이 산다. 남이 일껏 잡아놓은 먹이를 가로챈다거나 썩은 고기를 즐긴다는 등 말이다.

주로 야간에 사냥하는 탓에, 사람들이 낮에 남의 먹잇감 뺏는 그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들씌워 놓았다던가, 심지어 오히려 사자들이 하이에나 것을 빼앗는 경우가 많다던가.

펠리컨은 우리 말로 사다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 적 있다고 한다. 주머니처럼 생긴 큰 부리를 가졌다. 이 부리 아래쪽이 피부로 되어 있어 주머니처럼 부풀어 오른다. 여기에 먹잇감을 저장하기도 하고, 새끼들 먹이는 그릇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뜨거워진 체온을 식히는데 이 주머니의 넓은 표면적이 좋은 역할을 한단다.

오래전 어떤 작가가 이 펠리컨을 소재 삼아 알레고리 소설을 썼다. 알레고리는 텍스트 내의 기호가 그 바깥의 어떤 의미를 가리키게 되어 있다. ‘개미와 베짱이’ 같은 우화에서. 개미는 부지런한 자를, 베짱이는 게으른 자를 가리킨다. 베짱이도 자기 할 일은 하고 살 텐데, 이솝은 자기의 우화에서 베짱이를 게으른 짐승으로 ‘불쌍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작가도 펠리컨을 좀 불쌍하게 만들었다. 작중에서 펠리컨은 입이 큰 ‘놈’이다. 우리는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은 사람을 ‘라우드 스피커’(loud speaker)라고 한다. 비유적으로 시끄러운 사람, 제 주장이 센 사람을 가리킨다. 작중에서 펠리컨은 목소리가 큰 자, 나아가 목소리만 큰 자 같은 의미를 띈다. 이 소설에서 이 목소리만 큰 자는 민중주의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중에 출현하는 펠리컨은 민중을 위한다고 큰 소리를 치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힐난하는 뜻으로 이 소설의 펠리컨을 기호화했다. 나는 이 작가를 아주 능력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솜씨를 이렇게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쓴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로부터, 한정된 사람의 삶의 감각으로 보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사람은 옛날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힘들다. 특히 정치적 견해 같은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변하기가 쉽다.

이렇게 말하면 애꿎은 펠리컨이 화를 낼 것 같다. 요즘 왜 이렇게 펠리컨들이 많은가? 바야흐로 펠리컨들 시대가 아니냐 말이다. 펠리컨들은 자신들이 정의를 위하고 정치적으로 옳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라고 한다. 이 펠리컨 무리를 들여다보면 그네들 발갈퀴 밑에 정말 고립되어 있고 약하고 상처 입은 물고기들이 짓밟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무서운 펠리컨들은 부지런히 제 먹잇감을, 그러니까 자신들의 정의를 위한 희생양을 찾아 그 큰 부리로 우악스럽게 물고 찍는다. 이 펠리컨들의 정의는 저보다 약해 보이는 자들을 사납게 물어뜯는 정의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는 이 무서운 펠리컨들이 즐겨 사는 곳이다.

부디 힘 약한 사람들, 모질지 못한 사람들은 그곳들 출입을 조심하기 바란다. 자기 귀가 얇다고, 그래서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가는 수가 많다고 늘 불안해 하는 분들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나는 이 펠리컨들이 정치적 파당의 어느 쪽에만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펠리컨은 지구상에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아주 넓은 곳에 분포한다.

방민호의 생각의 빛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