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노량해전서 왜군 괴멸시킨<br/>한국사의 대표적인 구국의 영웅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는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많은 이에게 4월을 잔인한 달로 인식시켰다.
가장 잔인한 달 4월의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탄신일이다.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라면 정유재란은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한 이순신이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에서 왜군을 괴멸시키며 7년 전쟁을 끝낸,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후손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과 함께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한국사의 대표적인 구국(救國)영웅으로, 영웅이라는 호칭으로도 부족해 성웅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유일한 위인이다. 세종대왕과 함께 한국사 최고의 위인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에 대형 동상이 세워져 있다.
포항 출신 사학자 서상문 박사가 국방부 연구원 시절 국방일보에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활쏘기’,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술’을 주제로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충무공이순신 제독은 활을 잘 쏜 명궁이었다. 서서 활을 쏘는 보사(步射)와 말을 타고 쏘는 기사(騎射)에 모두 능해 명중률이 대략 84% 정도였던 그는 무과 전시(殿試)에 급제했다. 공이 활에 능했던 것은 타고난 생득적 감각에다 활쏘기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후천적 획득형질이 가미된 것이다. ‘열녀전(烈女傳)’에서는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화살을 날려선 안 된다고 했는데, 공의 높은 명중률은 고도의 정신통일 및 집중력이 발휘된 결과로 그만큼 마음이 안정돼 있었다는 증거다.
공의 활쏘기는 전투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빛을 발했다. 임진전쟁에서도 여러 해전에서 몸소 함선갑판 위에서 병사들과 같이 활을 쏘았으며 사천해전에선 사부(射夫)들과 함께 활을 쏘다가 일본군 조총에 왼쪽 어깨를 맞기도 했다. 먼 섬에서 포를 쏘는 왜군을 활로 쏘아 목을 맞힐 정도로 적중률이 높아 왜군들이 공의 활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충무공에게 활쏘기는 단순히 무기를 다루거나 체력을 단련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신집중과 마음수양이라는 정신영역에까지 확장돼 있었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은 길흉 양면의 기능을 지닌 술을 군 지휘통솔과 병사의 사기 진작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활용했다. 공은 술 자체를 즐기지 않아, 병든 팔순 노모 걱정으로 밤을 지새울 때도 시를 지을 때도 술에 의지하지 않았다. 술을 마실 경우는 상관이나 명나라 장수들을 대접할 때뿐이었다. 병사들에게는 전투 중에는 일절 음주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포상과 사기진작을 위한 단체 회식 때에는 음주를 허여했다. 공에게 술은 평소 엄한 신상필벌로 조성된 부하들의 긴장을 녹여주는 윤활유였다.”(이상 서상문 박사의 칼럼 요약)
임진왜란 발발 430여 년이 지났다. 여전히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같은 위인이 필요한 사회를 살고 있다. 깊이 잠든 뿌리를 깨우는 봄비가 잔인하다 했던가. 봄비는 만물의 보약이다. 조선의 봄비 같았던 충무공 이순신이 탄생하신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축복받은 달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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