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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꽃은 우리나라 순수 특산종

박귀상 시민기자
등록일 2024-04-18 19:51 게재일 2024-04-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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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효자 영일대 왕벚꽃. 유치원 어린이들이 벚꽃체험을 나왔다.
봄은 벚꽃의 계절이다. 4월이 시작되면 왕벚꽃은 살랑대는 봄바람에도 하얀 꽃잎을 눈처럼 흩날린다. 꽃비 내리는 그 황홀한 풍경이 온 세상을 들썩이게 하면 봄은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탄성을 자아내는 황홀함의 기간은 잔혹하리만치 짧다. 꽃잎 진자리 붉은 꽃받침 뒤로 연두 잎이 돋아날 때 흩날린 봄을 다시 부여잡은 겹벚꽃이 기다렸다는 듯 바통을 이어받아 화려하게 피기 시작하면 벚꽃축제는 4월 말까지 이어진다. 이렇듯 벚꽃으로 봄을 향유하며 축제를 즐긴 역사는 그러나 그리 오래지 않다.

조선시대까지도 봄날 꽃구경으로는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최고였다. 고전작품에도 봄꽃으로는 쉽게 지는 벚꽃보다 매화 또는 복숭아꽃, 살구꽃 등을 더 선호했으며 진달래꽃은 조선의 풍속인 화전놀이에, 오얏꽃(자두꽃)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데 쓰였다. 벚나무는 나무껍질이 매우 단단하고 결이 아름다워 꽃보다 목재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팔만대장경 목판의 절반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주력 무기인 각궁을 만들 때 벚나무 껍질로 겉면을 감아 마무리를 했다. 벚꽃이 봄꽃 축제의 상징이 된 건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들여온 왕벚나무를 가로수로 심기 시작하면서였다.


1901년 동경대 식물학 교수 마쓰무라 진조가 왕벚꽃을 세계 학계에 등재한 학명이 ‘푸르노스 에도엔시스 마쓰무라’로 이름에서 드러나듯 일본의 꽃으로 알려진다. 매년 100만 명이 찾는다는 워싱턴D.C. 포토맥 강변의 국립 벚꽃 축제도 일본이 1912년 제주도 왕벚나무를 자국 꽃이라고 선물하면서 시작되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벚나무가 제거될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이승만, 서재필 박사가 벚꽃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알려 건재했다. 벚꽃 하면 일본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여 국화(國花)로 불리기도 하지만 정식 일본 국화(國花)는 없다.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도 국화(菊花)이다.


식물학자였던 프랑스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도 한라산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발견한 것은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8년이었다. 그가 당시 세계적인 식물학자였던 독일 베를린 대학 괴테 교수에게 이를 알려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로 학계에 보고된다. 반세기가 지난 1962년 식물학자인 박만규 국립과학관장이 우리나라 연구자로서는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확인했지만 2018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 사이에 유전적 뒤섞임이 없다는 것을 밝혀내고서야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생하는 우리나라 고유종임이 증명된다. 야생식물의 유전체 해독과 정보 분석 능력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로써 왕벚꽃의 자생지가 제주도라는 것을 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에서도 일본산 왕벚나무의 야생 원종을 찾아 일본 전역을 뒤졌지만 끝내 자생지를 찾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왕벚꽃은 우리나라 순수 특산종이며 4월 중순경 불국사를 장식할 겹벚꽃은 일본이 산벚나무를 육종(育種)해 만든 품종이다. 80년대만 해도 벚꽃을 즐기기 위해 진해 장복산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 어디서든 벚꽃을 즐길 수 있다. 왕벚꽃의 짧은 절정기간이 그저 아쉬울 뿐.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라는 무명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벚꽃 잎이 흩날린 건 바람 탓이 아니라 세월 탓이런가.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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