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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가짜 신분증’ 으로 술, 여전한 ‘사각지대’ 자영업자 고통

구경모기자
등록일 2024-04-08 19:43 게재일 2024-04-0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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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사진으로 신분증 확인했다가 영업정지 처분 ‘억울’<br/>속인 청소년은 처벌 없는 반면 모든 피해는 점주들이 감당<br/>고령의 업자들은 법 규정 잘 몰라 “이해 쉬운 사례집 절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5일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식당 등 자영업자들의 “미성년자들이 나이를 속이고 술을 마신 후 이를 신고, 적발돼 고통을 받고 있다”는 민원을 들은 후 “정부가 구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제도가 일부 보완되면서 그동안 많은 매장 점주들의 억울함이 풀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개선된 부분은 일부에 그칠뿐, 사각지대는 대부분 그대로다.


여전히 억울함을 토로하는 소상공인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포항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65세 여성 A씨. 그는 지난 1월 중순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했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A씨는 앞서 1월10일 오후 8시쯤 가게로 들어온 손님 4명이 술을 주문하자, 나이가 어려 보여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들은 모두 휴대전화에 저장된 2003년생 주민등록증 사진을 제시했다.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 술을 내줬다.


그로부터 한 시간여 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경찰 5명이 A씨의 가게에 들이닥쳤다. 당시 가게에는 A씨와 4명의 손님 외엔 아무도 없었다.


가게로 들어온 경찰관들이 A씨에게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왔다”고 밝혔다.


가게 안에서 술을 마시던 4명이 “우리들은 고등학교 2학년인데, 사장님에게 신분증을 보여준 적이 없다”며 “사장님이 주문하지도 않은 술을 줬다”면서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출동한 경찰관들이 술을 마시던 일당 4명에게 신분증을 요구하자 모두 “신분증이 없다”고 대답했다.


A씨와 손님들 사이 고성이 오가던 도중, A씨는 휴대폰으로 10대 일행들의 신분증을 확인한 사실을 기억해 내 이를 경찰에게 말했다.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경찰관들이 4명의 휴대폰을 보여 달라고 했다.


하지만 4명 중 3명의 휴대폰에서는 신분증을 확인하지 못했고, 나머지 1명에게만 A씨가 봤다던 신분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관들은 이를 촬영한 후 돌아갔다. 일주일 뒤, A씨는 해당 내용으로 조사를 받아야했다. A씨는 조사과정에서 더욱 황당한 일을 겪었다.


경찰서 조사관으로부터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촬영했던 신분증은 위조된 것이었다”면서 “그 사진도 지워버려,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결국 A씨는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해본 채 지난 3월 26일 포항시 남구청으로부터 2개월 동안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야 했다.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나온 벌금 100만원은 별도였다.


구청과 경찰의 처분은 주민등록증을 통한 실물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근거가 됐다.


실물이나 공인된 인증서·앱이 아닌 사진·휴대폰 등을 통한 신분증 확인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재 행정심판을 청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A씨는 생계도 막막하지만 억울해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호프 통닭집을 30여 년 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업주를 속이고 술을 마신 미성년자들은 아무런 처벌이 없는 반면 업주만 모든 처벌을 받는 법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난달 윤 대통령의 지시 후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식품위생법 시행령과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 등 두 법령 개정안을 의결했고, 3월 29일자로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안에는 영업점주가 청소년에게 주류와 물품을 판매했을 때 행정처분 면제 사유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영업점에 설치된 폐쇄회로 TV(CCTV)로 ‘신분증 확인 여부 혹은 미성년 손님으로부터 폭행이나 협박을 당했다’는 사실을 증빙하면 입건 없이 행정처분을 면제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영업점주 입장에선 미성년자 신분증 확인 때 반드시 영상 증거가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A씨 경우 아무런 증거도 남아 있지 않아 꼼짝없이 당국의 처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보완 조치를 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소상공인들을 괴롭힌다’는 지적이다.


업주가 억울하게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 하더라도, 그 억울함을 본인이 입증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모르는 업주는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


A씨는 “고령이 되면 법 규정을 들어도 잘 모를뿐 아니라 법개정이 되면 더더욱 이해가 어렵다”면서 “차라리 행정기관이 이해가 쉬운 사례집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청소년 술 판매는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입건은 물론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영업정지 행정처분 등 가중 처벌된다.


1차 위반 시 영업정지 2개월이고 2차 영업정지 3개월, 3차는 영업소 폐쇄가 이뤄진다.


영업정지는 매장 운영에 큰 타격으로, 자칫 폐업에 이를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2010∼2012년 미성년자 술 판매로 적발된 업소 3천339개 가운데 무려 78.4%, 2천619곳에서 청소년이 위조신분증으로 성인이라고 속여 술을 마신 뒤 업소를 신고한 것으로 집계됐다.


/구경모기자 gk090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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