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문인데, 뭘 사가야 할까?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었다니, 옛날 같으면 크리넥스 티슈를 한 박스 가져가야겠지만 첫 만남에 영 어울리지 않는다.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결국 과일이다. 하필 과일 금이 엄청 올랐다는 때였다. 사과가 ‘금과’가 되었다던 때였다. 그러고 보니 이날의 만남도 벌써 석 주는 지났다.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과일은 백화점 과일이 제일 맛있다는데, 들를 시간이 없다. 큰 슈퍼마켓에 들어가 사과, 딸기, 바나나, 천혜향 같은 것을 한 바구니씩 사니 값이 꽤 나간다. 무게도 제법이다.
이제 들고, 선화동, 대전에서 가장 전통적인 동네, 하지만 시가지 중심이 둔산 지구로 옮아간 후 30년 동안 내리막길만 걸어온 동네로 간다. 거기에 그는 살고 있다고 했다. 전화로 그런 얘기를 듣고 자신만만했다. 선화동이라면, 광천식당이나 청양칼국수다 해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나다니던 곳, 커서도 때만 되면 동창 친구와 만나는 약속을 정하는 곳이다.
역사를 연구한다는 그는 나보다 대학 학번이 두 학번이 위로, 외교학과를 나왔고 법학박사였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 모든 일과 멀어져서 역사를 연구하고 책을 쓰면서 내 옛날 동네 선화동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나는 그가 사는 원룸 빌딩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고, 초인종을 누르고 밖으로 나온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어수선해서 맞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했다.
내게는 서울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 잠깐 하고 자췻집, 하숙집을 이리저리 전전하며 스무 집 정도를 옮겨 다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전화 통화를 통해서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실제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나는 발 디딜 틈 없는 현관 바닥과 정리도 되어 있지 않은 주방과 각종 원서들이 어지럽게 꽂혀 있는 거실의 책장을, 서서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이 원룸의 풍경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자고 먹고 책을 꽂아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색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를 태연하게 자신의 거처로 맞아들인 그 사람. 무거운 과일 봉지는 베란다 쪽 바깥에 다른 짐 쌓인 곳에 팽개치듯 얹어 놓고 곧바로 그가 열중하고 있는 고구려, 발해, 몽골 이야기로 들어간다.
나는 귀로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구사하는 러시아어, 몽골어, 만주어, 중국어, 아랍어는 몇 개도 알아들을 수 없다. 부지런히 듣고 있는 시늉을 하며 나는 속으로 나의 생각을 이어간다.
참 희귀한 사람이군. 경륜을 감추고 책만 읽었더라는 허생이라기보다, 먼 이국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역사를 밝히신 단재 신채호 같은 사람…. 이 사람의 공부 길을 계속해서 함께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그런 것 같다. 세상을 사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돈을 따라가는 길, 지위를 구하는 길, 이름을 높이는 길…. 그런데 희한하게도 다른 길을 가는 분들이 있다. 없지 않다. 이들이야말로 사회의 빛이다. 소금이다. 이 글을 쓰는 때가 하필 선거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