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포항시향 차웅 예술감독 취임 연주회 <br/>절제와 격정 사이 선율의 미학<br/>550명 감성 아우른 ‘성공 무대’<br/>조성현 협연 ‘플루트 협주곡’은<br/>균형 무너진 연주에 아쉬움도
지난달 27일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스케르초 악장의 E♭장조 주제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며 위로 솟구쳤다. 지휘자의 양손은 정확한 비팅을 유지하며 파도치는 악단을 거머쥐었다. 그건 새파랗게 출렁이는 바다를 힘차게 가르며 노 젓는 선원과 선장의 모습이었다.
귓병이 급속도로 악화돼 거의 들을 수 없게 돼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던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의 고전주의 모방에서 벗어나 극적인 양식의 변화를 이뤘다. 길이는 두 배로 길어지고 역동성과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게 된 것이다. 지휘자는 이러한 작곡가의 의중을 꿰뚫어 시련을 딛고 영웅적 자질로써 승리를 거머쥔 영웅의 숭고한 삶을 가감 없이 노래했다.
포항시립교향악단의 신임 제6대 예술감독 취임연주회에서 차웅<사진> 감독은 무작정 내달리기만 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는 ‘교향곡 3번 영웅’의 3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과도한 에너지를 자제하면서 베토벤이 설정한 어두운 계곡을 거친 후 새로운 세계의 열림을 갈망하는 환희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트리오에서 호른이 연주하는 위풍당당한 선율이 더욱 도드라지게 이끌었다. 이어지는 4악장에서 차웅과 포항시향은 마음껏 폭발했다. 예술가로서의 투쟁과 불굴의 의지가 막바지에 다다른 장대한 정점, 압도적인 스케일을 향해 치달으며 작품을 힘차게 마무리했다. 베토벤의 고유한 특징을 쏟아붓듯 4악장은 활활 타올랐다. 차웅은 취임을 자축하듯 온몸으로 요구했고 포항시향 단원들은 최대한 이에 반응했다. 청중의 박수는 뜨거웠다.
첫 곡으로 연주한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서곡은 사실 난곡이었다. 차웅은 아름답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치료하는 예술작품을 쓰겠다는 바그너의 예술정신에 집중해 완성도 높은 무대를 연출했다.
조성현이 협연한 라이네케의 ‘플루트 협주곡’은 절반의 성공이다. 협연자의 소리와 비슷하거나 작아야 하는데 포항시향은 너무 큰 소리를 냈다. 협연에서는 조금이라도 균형을 못 맞추거나 하나라도 음을 잘못 연주하면 음악 전체가 망가진다. 1·2악장 이후 집중하지 못한 일부 청중은 3악장 시작 전에 박수를 치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한 음 한 음에 정성을 다해 맑고 청명한 음색으로 생기 넘치는 연주를 선보여 관람객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은 조성현은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 가단조’ 2악장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지휘 경연으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동양인 유일, 한국인 최초로 우승, 세계무대에서 이미 검증된 차웅의 550명 관객과의 공식적인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일단 동호회까지 구성됐던 2대 박성완 지휘자의 연주회만큼 일반인의 관심을 끌어들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향후 포항을 아끼며 시민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열린 마음을 보여준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앙코르 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들려주기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1년에 두 번 정도는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무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던 대로 차웅 예술감독이 오케스트라 예술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펼쳐 보이면 어떨까.
포항시도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먼저 열악하기 그지없는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의 음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예술의전당 건립을 서둘러야 한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극장 대신 대구콘서트하우스를 건립한 대구시의 예를 본받아야 한다. 전용 홀이 어렵다면 기존 대공연장의 음향 개선이라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포항의 청중은 이미 선진 콘서트홀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클래식 마니아들이 포항시향의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포항을 찾아올 그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