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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한 종이가 주는 ‘울림’ 속으로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4-01-29 18:10 게재일 2024-01-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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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 초대 개인전, 31일까지 경주 라우갤러리
박종태作

파쇄한 종이를 이용한 다양한 입체작업으로 잘 알려진 박종태 작가의 초대 개인전이 경주 라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청년 작가 시절부터 남다른 시선으로 사물들을 관찰해온 박종태 작가는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사물들의 구조를 해체해 또 다른 조형적 요소를 드러내는 일에 천착해왔다. 푸른색 양주 유리병을 수건에 싸서 파쇄한 다음 파쇄된 모양을 그대로 패널에 부착해 또 다른 의미연관(意味聯關)을 보여준 작품이라든가, 철망을 잘게 부수어 그 조각들을 다시 응집해서 만든 원통형 입체 작품을 통해 조형의 새로운 깊이와 의미를 추구해왔다.

그의 종이 파쇄 행위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기존의 종이라는 물질을 인위적으로 파쇄함으로써 종이가 가지는 기능과 형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에게 있어서 ‘만든다’는 행위는 ‘부수는’ 행위 이후의 재창조라는 문맥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도 일련의 파쇄 작업의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다양한 책들과 문서들을 파쇄기에 넣어 잘게 부순다. 그중에는 온갖 서적들과 다수의 관공서 서류들 및 일간지와 광고지들도 포함된다. 이처럼 파쇄된 종이들을 먹과 수성 물감, 수성 접착제를 이용해 패널 위에 일일이 쌓아 올린다. 손자국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 두께와 요철이 고르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이 또한 손의 사유(思惟)를 통한 마음의 흔적들을 그대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감상자들로 하여금 종이의 지층(地層)에 쌓인 작가의 노동과 정신의 질량을 음미케 함으로써 선적(禪的) 평정심(平靜心)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도 내재해 있다.

박종태 작가의 작품은 얼핏 보면 단색조의 미니멀한 작품들처럼 보이지만, 실은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고, 그 의미 연관도 깊어진다. 평면에 가까운 색면의 톤과 요철의 질량감, 조형적인 변용을 넘어 파쇄 종이들의 집적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숫자나 기호와 글씨의 파편들이 텍스트의 일부를 암시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장 한 벽면은 회색 톤의 세로 30센티 가로 22센티의 작품 30점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치돼 있다. 다른 벽면에는 30호, 10호 사이즈의 검정색, 회색, 흰색, 붉은색의 입체 그리드 작품들이 톤을 달리하면서 설치돼 있다. 기하학적인 그리드는 본래 1960년대 초 추상적이고 비 관계적인 예술을 하는 화가와 조각가들이 논리와 조화, 통일성을 위해 선택했던 중성적인 구조 혹은 도구였었다. 그러나 박 작가의 작품에서 만나는 그리드는 마음의 상태와 색채감정을 표현하는 악보와 같은 것으로, 촉각적인 손맛의 층 차와 잡다한 텍스트 해체 이후의 또 다른 텍스트를 대면케 하는 장치로 읽힌다.

박종태 작가는 영남대 조소과와 동 대학 교육대학원(미술교육 전공)을 졸업했으며 동 대학 미술대학원에서 박사를 수료했다. 경상남도 미술대전 조각 부문 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대전 조각 부문 심사위원, 영남대 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빈조형 대표, 청도군미술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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