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으로 한국을 떠나기까지 무척이나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겨울이 되자 밀린 일들을 어떻게든 소화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2월까지도 정말 복잡하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 했는데, 1월이 되어서도 2023년 13월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학술대회를 하나 치러내야 했다. 탈북작가들 연구에 관한 것인데, 나는 몇 년 동안 이 일에 어떻게든 매달려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이지명, 도명학, 김정애, 설송아, 김유경 같은 작가며 시인들이 그렇게 귀해 보일 수 없었다. 한반도 같은 현실에서는 이 작가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도모한다는 느낌만으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K 학술 사업’이라는 게 있어, ‘개설 한국현대소설사’라는 것을, 동영상을 여덟개를 찍어야 하는데, 겨우 두 개를 준비해 놓고는 여행 이후로 일정들을 다 미뤄 놓아야 했다. 한국현대소설사라는 것도, ‘개설’밖에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식사, 모방사와는 다른 종류의 것을 써야겠다고 마음은 먹었던 것이, 이번에도 과연 내실은 없이 시간만 채우는 것은 아닌지 무척 걱정을 해야 했다.
13월 초에는 나 말고 세상도 어지럽기만 했다. ‘아포유’나 ‘아메리카고조선’ 같은 유튜버들은 텔레비전 방송사들이나 여타 유튜브 방송이 송출한 동영상들을 정밀 분석하며 과연 사태의 진상은 어떠냐를 두고 보름이 넘도록 화제를 이어갔다. 여행을 준비하는 틈틈에도 사태의 진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것은 시간적으로도 여행 기간에 절대 불가능하다고 느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정말 잠시라도 한국에서의 모든 것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직항으로는 비행기삯도 비싸기는 비싸지만 차라리 경유해서 가는 편이 떠나는 절차로서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도 같다.
다행히 미국 비자는 지지난 해인가 ESTA 비자를 받아놓은 것이 있어 큰 수고는 덜었다.
늘 그렇듯 촉급하게 서두르는 것도 싫어 이번에는 세 시간쯤 여유를 두고 김포공항으로 향했건만, 아니나 다를까 전철역에 다 가서야 여권을 빠뜨린 것을 깨달았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을, 몇 번을 이곳저곳 뒤진 끝에 드디어 찾기는 찾았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여행가방에는 허영자 선생의 시선집 한 권만 달랑 들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중국의 문학이론서의 한국어 번역본 감수할 것 복사본뿐. 그렇게 태평양을 건너서 나흘째. 생각한다. 여기서는 거기서와 많은 것이 다르다. 풍경도, 사람들 살아가는 것도, 사고방식도, 주제도. ABC마트 옆에 딸린 카페에서 아이스카라멜 마키아토를 하나 시켜놓고 앉았다. 커피 맛만은 다르지 않은 것 같은 것은 다만 착각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곳에서 살 수도 있었을 것을, 다만 우연으로 바다 건너에서 모든 문제들 속에서 살아온 것이었을 뿐인지도. 돌아가서, 그냥 매이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시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갓 먼지처럼 바람 속으로 와서 머물다 가는 것이다. 지금 이곳의 내 생각과 느낌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다시 한 번 ‘상대성’의 진리를 가슴에 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