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체증 특효약 ‘등 밟기’

김상영 시민기자
등록일 2024-01-04 18:21 게재일 2024-01-05 12면
스크랩버튼
할머니가 체증으로 힘들어 하는 이웃 아주머니를 따고 있다.
이웃 마을에 체증을 잘 내리는 할머니가 살았다. 풍년초 봉지 담배를 수고비 삼아 손수건에 싸든 엄마 손에 이끌려 사립문을 들어서면 싫은 내색 없이 반겨주시던 분이었다. 나를 바르게 앉히고 등뼈 마디를 하나하나 엄지손가락으로 눌러보며 아픈가 하문하였다. “아이고 거기요.” 하면 옳다구나 싶은 듯 그 부위를 집요하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으로 원을 그리듯 돌리다가 주먹으로 두드리기도 해서 얼얼할 정도가 되면 당신이 연신 “꺼르륵”대며 트림을 유도하셨다. 그런 다음 어깻죽지로부터 툭툭 때리듯 피를 내리훑어 엄지로 몬 후 손톱 위 부위를 바늘로 톡 따는 거였다. 되게 체할수록 피가 진홍으로 탁해져 콩알처럼 솟기 마련이었다. 힘들여 주무르는 할머니나 걱정스레 지켜보는 엄마도 그제야 ‘후유’하며 화색이 돌았다. 답답했던 분위기가 헤실헤실 풀릴 즈음이면 내 여자 동창이 참기름병과 숟가락을 슬쩍 들여놓곤 했다. 그 애가 쌕 웃으며 곁눈질하고 섰으면 참기름이 미끈거릴 뿐 도통 무슨 맛인지 몰랐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체했다 하면 따고 살았다. 찔러댄 부위 살집이 도톰해져 설컹댈 지경이었다. 독하달지 모르겠지만 내 손 내가 찔렀다. 아내에게 맡겨봤으나 오히려 내가 벌벌 떨렸다. 피를 훑어 모은 엄지손가락을 거머쥐면 될 텐데 실로 탱탱 감으려 드는 통에 헛수고이기 일쑤였다. 그런데 체하면 바늘이라는 사연 깊은 등식이 깨지는 날이 올 줄이야.


“사돈요, 뻗쳐 누우소.”


체기로 멍멍한 내게 안사돈이 말했다. 안사돈이 절친 몇 분을 동석시켜 한턱 거하게 쏜 술자리에서 채신머리없이 들떠버린 후과(後果)였다. 면구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사돈집 안방에 차렷 자세로 엎드렸다.


“사도온, 턱도 똑바로 고이소.”


근엄한 어투로 더욱 경직된 등에 솥뚜껑 같은 여장부 발바닥이 묵직하게 올라섰다.


‘우두둑’


뻣뻣한 등뼈가 누그러졌는지 금세 속이 편해지자 사돈 한번 잘 봤네 싶었다. 그렇게 전수한 비법이 진가를 발휘한 날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놓이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강구항을 들락거렸다. 회를 너무 바삐 드셨을까, 아랫마을 아주머니가 속이 더부룩하다며 하얗게 질렸다. 휴게소는 멀었다. 도로변에 차를 세워 내리자 엎드려 뻗치시라 했다. 맨땅에 넙죽 엎드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속이 치받는 형국이었다. 턱을 지면에 밀착시키고, 팔은 차려 자세를 지탱토록 했다. 아내가 얼른 수건을 턱밑에 받쳤다. 아주머니 두툼한 등에 맨발을 가로로 올리며 주문했다.


“아줌마, 좋게 말할 때 힘 빼소.”


시험 삼아 가볍게 몇 번 밟자니 점차 누그러지는 느낌이 왔다. 순간 내 몸무게를 묵직하게 실어 밟았다. 어긋난 등뼈가 정렬되는 툭박진 소리가 났다. 그러면 그렇지, 오지게 체했구나 싶었다. 아주머니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박수가 터지고, 차는 노래방을 향하여 경쾌하게 달렸다. 그러고 보면 밟기가 따기보다 훨씬 낫다. 주무를 수고가 필요 없고 피를 볼 일도 없으며 참기름 축낼 까닭도 없다.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12쌍이 골고루 받치는 뼈가 의외로 강하다. 척추가 탈골되지 않을까 싶은 이도 있을 거다. 허리와는 달리 등뼈는 튼실하다. 보리밭 밟아 겨울나듯 등 밟혀 속 편한 나날을 만끽해 보자. /김상영 시민기자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